소방청장 언론접촉 자제 '당부사항' 논란… 노조 측 "함구령, 지금이 군사정권 시기냐"
▲추석인 17일 오후 강원 춘천시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를 이송, 입실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청이 일선 구급대원들에게 '응급실 뺑뺑이' 문제와 관련해 언론 접촉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언론 통제'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측은 "함구령이고 입틀막"이라고 반발했다.
김동욱 소방본부 사무처장은 19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군사정권 때 긴급조치 1호를 발령해 언론을 통제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허석곤 소방청장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뺑뺑이' 상황이 담긴 영상과 녹취, 소방관들의 인터뷰가 연이어 기사화되자, 지난 13일 일선 소방공무원들에게 당부사항을 하달했다.
허 청장은 "일부 대원들이 개인의 의견을 소방의 공식적 의견처럼 표명해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영상 유출·비밀 누설 금지, △언론 접촉 시 관서장 보고 등을 사실상 지시해 언론 통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8월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가 '응급실 뺑뺑이'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소방노조 "입틀막이 비상응급 대책이냐"
이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지난 14일 "응급의료 실상을 전하는 소방관들에 대해 통제를 넘어 탄압을 하고 있다"며 소방청을 규탄하는 입장문을 냈다.
노조는 "비상응급 대응 회의에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킬 대책은 없이 소방관들의 입을 틀어 막아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는 소방청에 깊은 분노와 유감을 표한다"고 했습니다.
소방청이 소방관들의 언론 접촉에 대해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지난달 23일 전공노 소방본부가 기자회견을 한 이후부터다.
이 기자회견에서 노조는 응급환자 이송에 나선 119구급대원과 병원 사이 실제 통화 녹취들을 공개했다. 열이 40도인데도 '이 정도로는 응급실에 올 수 없다'거나, 병상이 있는데도 무조건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기자회견 이후에도 '응급실 뺑뺑이' 상황이 담긴 영상과 녹취, 소방관들의 인터뷰가 계속 기사화 되고 있다.
노조는 소방관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을 위한 것"이라며 "소방청이 알리면 '자료 제공'이고 현장 소방관이 하면 '불법유출'이냐"고 했습니다. 또 "업무 외 시간에 언론 접촉한 것을 보고하라고 요구할 법적 근거가 있느냐"고도 했다.
김 사무처장은 "일전에 소방청장님이 추석 명절 지휘관 회의, 전국에 있는 모든 소방서장들이 참석한 회의, 여기서 비상응급대책 서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언론 통제를 언급하셨다"며 "계속 구급대원들이 기자들과 접촉을 하니까 정부 측에 반대되는 쪽의 목소리를 내니까 그렇게 (소방청장이) 통제하는 것 같다"고 했다.
▲ 8월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가 '응급실 뺑뺑이'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소방 윗선, 언론 인터뷰 응한 구급대원에게 경위서 요구"
그는 "지금이 군사정권 시기도 아니고 군사정권 때 긴급조치 1호를 발령해 언론 통제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다"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고 근무 날도 아닌 쉬는 날에 언론과 접촉하는 것까지 통제하는 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심각한 훼손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준 권력을 이용해 국민의 알권리를 훼손하고 있는 위법한 침해행위라고 저는 생각한다"며 "소방서장한테 보고하라고 말한 것은 소방서장에 보고하고 그에 따른 지시에 따라가지고 언론 통제 나가라는 것과 똑같지 않느냐"고 했다.
김 사무처장은 아울러 소방 윗선에서 '응급실 뺑뺑이' 상황과 관련해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일선 구급대원에 대해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간단한 구급 출동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도 아니고 사실 그대로 이야기했는데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했다고 한다"면서 "우리가 항의를 하니까 그런 적(경위서를 제출하라고 한 적)이 없다고 그렇게 발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 사무처장은 응급실 뺑뺑이가 구급대원들의 근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현장에서 병원 선정하느라 5분 10분, 더 이상 구급차가 출발을 못하고 있고 사고 현장에 있는 시민들은 왜 구급차가 출발하지 않느냐, 보호자는 빨리 가자고 난리고 이런 상황에서 구급대원들이 얼마나 속이 타겠나. 정말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전국에 대부분 시도 구급대원들이 잦은 출동, 그리고 장거리 이송, 지금 현 사태와 맞물려 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들어오는 길에 사비를 들여 식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아울러 보건복지부가 '병원 응급실에 의료 인력과 장비 등이 부족할 경우 응급환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선 "안 그래도 병원 선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구급대원들의 어려움이 조금 더 가중될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