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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

작성자발렌티나|작성시간10.07.11|조회수365 목록 댓글 0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 (James Sydney Ensor) 1860-1949


Belgian Expression‎ist Painter


벨기에 출신 화가이자 판화가. 
근대 회화의 귀재로 일컬어지는 제임스 앙소르는 
흔히 뭉크, 고호와 함께 표현주의 선구자로 꼽힌다. 
벨기에 지폐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만큼 
널리 사랑받고 있는 국민화가인 반면, 
살아 생전에는 말년이 되기 전까지 
대중과 비평가 모두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삶을 산 인물이다.
그의 우수한 예술가적 자질은 20세 즈음 젊은 시절부터 인정받았지만, 
풍자적이고 비관주의적 세계관이 담긴 작품으로 인해 
끊임없이 사회를 들썩이게했다.
특히 그는 해골과 유령, 무시무시한 가면 등 기괴한 환상의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의 허위와 도덕성 문제를 환기시키고자 애쓴 작가다. 
현대적 종교화의 대표작인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도 
더럽고 번쩍이는 색채의 축제 가면들로 가득찬 모습으로 세상에 내놓아졌고,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분개하고 사회적 논쟁 또한 불거졌다.

그는 ‘표현주의’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전에 
표현주의적 작품을 그린 선구적인 화가였으며, 
무엇보다 어두운 도상들을 활용해 
삶의 공포를 철학적으로 드러낸 작가로 평가받는다. 
또 비구상에 가까운 ‘성 앙투안의 고난’ 등에서는 
눈부신 색채기법도 선보여 눈길을 끈다. 
앙소르가 추구한 표현주의라는 것은 
쉽게 반자연주의적 경향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더 이상 자연을 모사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주관적인 표현을 추구,
참신하고 대담한 수법을 통한 예술적 변형을 드러낸다. 
또한 우리 내부 세계에 있는 가장 모순적인 것 등을 
발굴해내는 과정의 하나로도 설명되는 
일종의 ‘감정표출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임스 앙소르는 그의 긴 생애가 뭉크와 매우 유사하기는 하지만 
유럽 회화, 특히 플랑드르와 
독일 회화의 위대한 전수자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노르웨이 출신인 뭉크와는 다르다. 
성숙된 앙소르의 그림은 몇 십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충격을 줄수 있는 소지를 가졌으므로, 
우리가 그의 1880년대 작품의 경향을 살펴본 것처럼, 
그의 진보적인 동료들 사이에서조차 
어떠한 반동이 야기되었는지를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앙소르는 비정상적인 장난에 탐닉하는 기인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심각한 정신 착란의 결과라고 
보는 것은 너무 안이한 판단이다. 

1890년대 앙소르는 자신의 그림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하는데 
자신의 재능을 집중함에 따라, 때때로 압도적인 효과를 낳았다. 
이 10년 동안에 그는 가장 화려하면서 소름끼치고, 무서우며, 
그리고 때로는 음란한 그림과 애칭 몇 점을 제작했다. 
가면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면서 다시 나타나며 
그가 자신을 루벤스처럼 묘사한 그림인 
"가면에 둘러싸인 작가의 초상"은 특별히 개인적인 것이 되는데,
재미있게 생긴 콧수염과 턱수염에 화려한 깃털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관객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는 그림이다. 
또한 이상하게도 그는 가해자들 - 앙소르의 비평가들 - 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한다. 
그 모습은 선이 인격화된 것으로, 
악에 의해 고립되어 있으나 결코 압도당하지 않는 모습이다.




La aniquilación del ángel rebelde


Old Woman with Masks


Skeleton in the Studio


Skeleton Looking at Chinoiseries


Attributes of the Studio


El teatro de máscaras


Figures in Front of the Playbill of La Gamme d'Amour


The Strange Masks


Death and the Masks



Lady in Distress",1882
Ensor with Masks(Autorretrato con máscaras,1889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남겼지만, 앙소르의 자화상은 특히 눈길을 끈다. 앙소르는 특이하게도 기괴한 가면들에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화면을 가득 채운 가면들은 보기만 해도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앙소르의 자화상에 나오는 가면들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림 속 가면은 화가를 괴롭히는 인간들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앙소르는 가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비웃으며 쳐다보는 가면들에 갇힌 화가는 외로운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예술가는 고독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숙명을 타고 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면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의 한 연구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데, 가면을 쓰면 평소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서, 사람들은 가면을 좋아한다고 한다. 가면을 쓰는 순간 본래의 모습이 아닌 엉뚱한 사람으로 바뀌고, 그 같은 사실 때문에 가면을 쓰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평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면 '언제 수줍음을 탔나?' 할 정도로 익살스러운 행동을 한다. 가면은 이처럼 사람을 변화시키고,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Christ's Entry Into Brussels in 1889.

. “초라한 예수라도 괜찮습니까?” 종교적 주제를 통해 근대사회 본질적인 병폐 고발 환영받지 못한 예수님 그림 상단에 조그맣게 묘사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1888)에서 현대인을 성경의 내용에 빗대어 풍자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시민들이 들떠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하며 그를 환영하였는데 앙소르의 작품에서는 예수가 나귀를 타고 브뤼셀에 들어오시는데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자신을 감춘 채 단 한 명도 예수를 쳐다보지 않고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환영받지 못하는 예수는 성경에서 처럼 당나귀를 타고 후광을 크게 두르고 있지만 당당한 구세주라기보다 귀가하는 초라한 패전병 같이 보인다. 사실 예수는 그림의 상단에 조그맣게 묘사되어 관람자조차 그분의 존재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앙소르는 종교적 주제를 통해 근대 사회가 갖는 본질적인 병폐를 고발한다. 산업 혁명 이후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는 물질적인 풍요뿐 아니라 실증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져와 종교적인 믿음, 신앙심을 퇴색시켰다. 물질만능의 시대에 초라한 당나귀를 타고 손에 아무 것도 쥔 것 없이 들어오는 가난한 예수가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난하고 초라한 예수를 만나는 것이 조금도 반갑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시민들은 예수가 축복을 주기 위해 브뤼셀에 오셨는데 ‘예수 환영’이라는 글 대신에 ‘사회주의 만세 VIVE LA SOCIALE’라는 환영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그들은 빈부격차, 부르주아들의 도덕 불감증, 사회의 구조적 모순 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도입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종교에 철저한 냉소를 던지고 있다. 사회주의가 진정 자본주의의 물질만능적인 병폐를 치유할 수 있을까. 인간 세상의 구조상 만인이 물질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세상은 지위고하, 부의 정도를 떠나 모두가 존중받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사회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마구간에 태어나 스스로 가난했으며, 모욕과 멸시 속에서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수난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과 고통을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낮은 자세로 더 낮은 자를 섬길 것을 당부하셨다. 앙소르가 주는 메시지는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아서 비극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계심에도,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오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비극이라는 것이다. 물질에 눈이 어두워 영혼을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것이 비극이다.



음모. 웃는것과, 우는것. 기쁜것과, 슬픈것. 아름다운것과, 추한것. 거짓과 진실 어느것일까?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는 1860년 4월 13일 벨기에 오스텐트시 롱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레드릭 제임스는 브뤼쉘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었으며 어머니 마리아 카타리나는 플랑드르의 전통있는 가문의 딸인 오스텐드인이었다 이듬해 8월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 마리에트가 태어났다. 오스텐드는 어부나 항만 노동자들의 소박하고 거친 성격을 지닌 한편 여름철의 4개월은 외국에서 온 부유한 휴양객들로 흥청거리는 경박한 국제적 소도시로 변모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도시에는 손님을 끄는 진귀한 물건을 파는 토산품 상점이 많았다 앙소르의 집안도 기념품과 골동품을 파는 가게를 운영했다. 가게에서는 외국에서 건너온 희한한 물건과 갖가지 모양의 가면을 팔았는데, 내성적인 앙소르는 이상하고 기괴한 가면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야릇하고 비정상적이요 공상을 자극하는 이국정서를 자극하는 물건들은 평소 늙은 하녀가 얘기해주는 요정 귀신, 악한 거인이야기등과 어울려서 어린 앙소르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그의 백일몽을 꾸는 경향이나 능력을 기르게 되었다. 뒷날 앙소르의 그림에 늘 가면이 등장하는 것은 어릴 적에 받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인공물들 보다 더 앙소르의 감정과 마음에 침투하고, 지배하고 자신도 평생동안 애착을 느낀것은 오스텐드의 자연이었다. 바다의 사구와 한구를 그는 곧잘 산책했는데 날씨가 변하기 쉬운 바다와 하늘은 어떤 리듬을 가진 짐승처럼 빛, 색갈, 형태를 바꾸어가며 그에게 자연의 신비를 가득하게 했다. 바다는 그의 위대한 영감원이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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