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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여행기 (내용 수정 및 사진첨부)

작성자leastory|작성시간13.12.18|조회수953 목록 댓글 5

아시아여성학대회에서 발표할 논문을 모집한다는 이 메일이 들어왔다. 나중에 학회에 참여하고 나서야 알았는데 내가 이대에서 6년 전에 있었던 아시아여성학대회 창립학회의 초창기 회원이었다는 사실...ㅎㅎ

 

여성문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성으로 태어난 만큼 여성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연구를 하는 형편이라 이번 학기에 한 실험(경제학에서 하는 게임이론 실험)에서도 여성문제를 눈여겨 보게되었다. 남녀 사이에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발견되었기에 이를 어디에선가 발표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마침 이번 학회가 필리핀대학의 본캠퍼스가 있는 쾌존시티의 딜리만캠퍼스에서 개최된다는 것을 알고 주저 없이 신청했다. 참고로 쾌존시티의 부시장이 젊은 여성인데 매력적이고 똑 소리나고 시민사회와 협력해 도시를 혁신하고 있는 사람이다. 서울시가 지난 11월에 주최한 국제사회적 경제포럼에도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던 분이다.

 

그런데 이게 급조된 학회라 서울을 떠날 때까지 내가 언제 발표를 하는지 무슨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모르고 갔다. 왜 급조가 되었느냐하면 원래 베트남에서 이 대회를 하겠다고 유치해갔단다. 그런데 베트남은 이대에서 모든 비용을 다 대주는 걸로 알고 준비했었는데 올 여름에야 각 나라에서 비용을 마련해야한다는 사실을 알았단다. 그런데 아시아의 여성단체들은 대부분 가난해서 이런 대회를 유치할 비용이 없다고 한다. 결국 비교적 자원이 많은 필리핀이 부랴부랴 대회를 유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작 시간도 잘 안맞고 끝나는 시간도 마음대로... 급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학회가 목요일에 끝난다고 해서 관광지에 가서 자려고 목요일밤을 마닐라 시내 호텔을 예약했는데 갑자기 내가 가려는 곳으로 시티관광을 떠난다고 한다.ㅎㅎ

 

서양사람들이 1960년대 우리 나라를 보며 코리안타임 하면서 비웃던 생각이 났다. 계획없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공식행사의 비공식성을 보면서 우리의 과거가 떠올랐다.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지.ㅎㅎ 따라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딜리만 캠퍼스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캠퍼스라고 한다. 내 생각엔 서울대가 더 큰 것 같았는데 그렇다니까 믿어야지. 학교 박물관에는 필리핀의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을 수백점 전시하고 있었다. 그 캠퍼스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대학 때 친구가 학회가 끝나는 마지막 날 찾아와 나를 차로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줘서 쉽게 할 수 있었다.

 

 

 

 

 

학회를 했던 아시아센터에서 스콜이 내리는 모습

 

필리핀에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모든 곳에 경찰과 가드가 있다는 점이다. 학교 정문과 옆문에서 일일이 보안검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학호텔 2층에서도 방열쇠를 검사해서 안전엔 문제가 없음을 안심할 수 있었다. 부자촌을 지날 때에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심각한 빈부격차, 그리고 섬 하나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필리핀 반군 덕분에 이 도시는 일년내내 치안과 테러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먹을 게 풍부해서 그런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 그 나라 국민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리핀은 국민의 힘으로 독재자 마르코스를 축출해내고 미망인 아퀴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도 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미국 교포 중에 필리핀계는 한국계보다 평균소득이 높다고 한다.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의욕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국부의 실패경험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외국의 여러나라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눈빛과 자신감이 남 다른 학생들이 있다. 베트남과 중국 학생이다. 반드시 꼭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이들에게는 자신감과 총기가 넘쳐난다. 혁명가 호치민을 국부로 섬기는 베트남 학생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모택동을 혁명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중국 학생들은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런데 필리핀 국민에게는 그런 총기가 보이지 않았다.

 

필리핀도 스페인 식민지 당시 리잘이라는 매우 훌륭한 독립의 아버지, 국민적 영웅을 가졌다. 시인이자 철학가, 내과의사이자 어머님의 눈을 고치기 위해 안과의사가 되었던 호세리잘은 스페인 제국주의에 의해 총살을 당한다. 영국이 간디를 죽이지 못하고 살려둔 데 비해 스페인은 참으로 무식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며 분노가 치솟았다. 갑자기 스페인 여행에 대한 로망이 깨지는 걸 느꼈다.

 

이렇게 한 번 국부를 무참하게 잃어버리고 좌절한 경험이 있는 국민과 혁명을 성공시켜 본 경험이 있는 국민 사이에 열정과 자부심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김구를 잃었고 김대중은 핍박 받았고 노무현을 잃었다. 이러한 비극적 역사가 한국 국민들 마음 속에도 실패의 경험으로 각인되어 자신감을 잃고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실패를 경험 삼아 국민이 깨어나라고 몸을 던지셨지만 그로 인한 국민의 좌절감이 오히려 더 깊어지는게 아닌지 복잡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접하게 된 <안녕들 하십니까?>와 연이은 대자보 회답! 그래 우리에겐 1987년의 6월 항쟁의 경험이 있지. 국민의 손으로 민주화를 이뤄본 경험 말이야 하며 다시금 희망의 불씨가 당겨지는 걸 느꼈다. 안녕남을 응원하는 트윗을 남겼다. 요즘 학교 연구소장을 하느라 사실 발언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다. 나 하나의 문제라면 얼마든지 속시원하게 하고 싶은 발언을 하겠지만 학교 일을 하고 있고 또 정부랑 여러 가지 일을 하다보니 학교에 미칠 피해를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물꼬가 학생들로부터 터지니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리잘 박사 동상 사진은 카메라에만 있는 관계로 필리핀의 맥주 산 마구엘 사진으로 우선...)

 

내가 학회 직후 옮긴 곳은 인트라뮤로스라는 스페인 지배자들이 살던 지역이다. 이곳엔 필리핀인들이 출입하는 곳이 금지되었었다고 한다. 인트라뮤로스에는 호텔이 2개밖에 없다. 하나는 화이트나잇(백작)이라는 성당 바로 앞에 위치한 아주 아담하고 코지해 보이는 호텔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 지었다는 Bayleaf호텔인데 바로 내가 묵었던 곳이다. 비용에 비해 엄청 깨끗하고 방도 큰 편이고 최신식호텔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방에서 만에 늘어선 마천루 건물들의 경치가 좋았고 바로 옆에 위치한 아름다운 골프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아침식사는 스카이 라운지에서 주는데 음식도 괜찮았지만 정말 경치가 환상이었다.

 

 

<스카이라운지 식당 모습>

 

말똥 냄새 때문에 마차는 타보지 않았지만 forte Santiago라고 과거 요새가 있던 공원에서 한가하게 거닐기도 하고, 과거 스페인귀족의 화려한 집도 들여다보고, 리잘을 기념하는 요새 내의 리잘박물관도 방문하며 학회 이후 도심에서 한가한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필리핀 국민이 빨리 깨어나 이 엄청난 빈부격차를 줄이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누리는 때가 오기를 기도하며 잠 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많이 기대했던 보라카이로 떠난다. 날씨가 좋기만을 기도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다음 편엔 안 가보신 분을 위해 보라카이 여행기를 자세히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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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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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오드리 | 작성시간 13.12.18 교수님의 여행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네요 ㅋㅋ 세미나 참석 후기에다 그와중에 국내 안녕들 대자보까지 응원해주시고...교수님은 역시 우리의 영원한 교장쌤이세요^^ 딸랑딸랑 ^^
  • 작성자freebird | 작성시간 13.12.18 나라마다 겪은 경험에 따라, 그 국민들의 분위기 의식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네요 ㅠ 우리나라도 교수님 말씀처럼 해도 안된다는 좌절감을 많이 갖고 있는건 사실인듯 합니다..극복해야할 문제입니다.
  • 작성자튼튼이 | 작성시간 13.12.18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가 젤 불쌍해 보여요. ㅠㅠ '그래도 저나라는 적어도... ' 이런생각들이 드네요.
  • 작성자초록생각 | 작성시간 13.12.18 넘 잘 읽었오요^^
    필리핀에 대한 역사 공부까지^^
    다음편 보리카이 넘 기대되요~~^^
  • 작성자태은 | 작성시간 13.12.18 가끔은 박정희가 필리핀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 해 보곤 합니다
    글을 읽었는데 배가 불러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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