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저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는 2011년 5월에 출간된 책이다. 여기서 나는 "교과서 자율발행제"를 6번째 중요한 정책으로 제시했었다. 이 정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루어지기는켜녕 한국사 교과서의 경우는 국정으로 후퇴하려 하고 있다. 이 책이 아직도 시대에 뒤진 책이 아니라니!! 오히려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책이라니!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제법 길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제1절 : 개요
일반 국민들은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학교를 살리는 BIG 6에 들어가는 중요한 처방이 될 수 있나? 너무 작은 정책을 대선이라는 거대한 무대에 올려놓은 것은 아닌가? 어쩌면 상당수 교사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를 자유롭게 발행하고, 교사 개개인이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도가 정착하면 학교 수업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현재 학교의 교과서는 국가 기관의 검정을 거쳐 인정된 것만이 교사서로 인정된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수십 가지의 다양한 교과서가 존재하기도 한다. 국어교과서의 경우는 20 종류가 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많은 교과서가 사실은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교과서는 모두 1.5종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교사 개개인에겐 교과서를 선택할 자유가 없다. 학교 단위에서의 선택은 자유롭지만 교사 개개인에겐 선택 자유가 없는 것이다. 어떤 교사가 자신의 수업에 가장 효과가 큰 교과서를 A라 생각했어도 다른 교사들이 B 교과서를 더 원하면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사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교과서가 아니라면 학교 차원에서 결정된 교과서나 국가 차원에서 결정된 교과서나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학교 수업의 획일성은 상당부분 교과서의 획일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다양한 수업이 존재하려면 다양한 교과서가 존재해야 한다. 지금처럼 그 나물에 그 밥인 다양성이 아니라 실질적 다양성이 보장된 교과서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교사들이 교과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 개개인은 마음에 드는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제2절. 현실적 제안 : 교과서 신고제 또는 등록제
위의 개요는 원칙적인 차원의 완전한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교과서자유발행제는 많은 사람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 사실 이 제도에서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는 괴상한 교과서가 사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교과서가 등장하면 교과서자유발행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준동할 것이다.
현실적 타협이 필요하다. 물론 타협은 최대한 자유발행의 취지를 지키면서 국민들의 상식과 크게 유리된 책만을 걸러내는 수준의 타협이어야 할 것이다.
완전한 ‘교과서자유발행제’가 곤란하다면 ‘교과서신고제’ 또는 ‘교과서등록제’를 시행하면 된다. 즉 교과서로서의 자격 획득을 원하는 책은 반드시 국가기관(교육과정평가원 등)에 등록하게 하고, 국가기관에 거부권을 부여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 책을 걸러내는 제도를 시행하는 하는 것이다.
이때 거부권의 행사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기준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은 거부권을 주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참신한 교과서들이 거부당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합리적인 교과서 심사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심사위원회는 초등학교 국어 심사위원회, 중학교 영어 심사위원회, 고등학교 수학 심사위원회… 이런 식으로 구성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심사위원회가 등록된 교과서에 대한 거부권을 갖게 하면 될 것이다. 심사위원회의 위원은 국가기관이 재량껏 위촉하게 하면 될 것이다. 심사위원이 누가 되는 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교사도 좋고, 교수도 좋고, 일정한 자격을 가진 시민이어도 좋다.
여기서 주의할 게 있다. 그것은 거부권의 기준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사위원 전체의 만장일치제가 도입되는 것이 가장 좋다. 만장일치가 어렵다면 심사위원 전체의 80~90% 이상이 동의할 경우에만 거부권이 행사되도록 해야 한다. 과반수로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교과서들이 많이 탈락할 수 있다. 거부권 행사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보통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이상한 책만을 걸러내는 것이다. 거부권이 기존의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책을 걸러내는 데에 악용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상당수 국민들이 이상하게 느끼는 책을 걸러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심사위원 전원의 80~90%의 동의가 있는 경우로 거부권 행사를 제한해도 충분하다. 이 정도 안전 장치면 대다수 국민들은 별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를 강하게 통제하고 싶은 보수주의자나, 현 교과서제도의 기득권자를 빼고는 대체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절. 12권짜리 교과서는 존재할 수 없는가?
국어교사로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국어수업은 한편으론 입시를 넘어서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입시에도 도움이 되는 수업이다. 입시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수능시험과 논술시험에 도움이 되는 수업이랄까?
그런데 내가 이런 수업을 하고자 할 때 나에겐 12권짜리 교과서가 필요하다. 한 달에 한 권씩 모두 열두 권. 내가 지향하는 국어수업을 제대로 하려면 나에겐 이 정도 분량의 교과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교과서검인정제도에서 12권짜리 국어교과서가 존재할 수 있을까? 없다. 불가하다. 그런데 왜 12권짜리 교과서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아무런 합당한 이유가 없다. 그냥 지금의 제도에선 그게 불가능할 뿐이다. 나는 지금의 교과서제도가 유지되는 한 교과서가 수업의 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는 지금의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주당 국어 수업 시간과 교과서 수는 다음과 같다. 편의상 인문계열을 예로 든다.
1학년 : 국어 4시간 (교과서 2권)
2학년 : 문학 4시간 (교과서 2권) 국어생활 2시간 (교과서 1권)
3학년 : 독서 4시간 (교과서 1권) 작문 3시간 (교과서1권)
3년 동안 공부하는 국어교과서가 겨우 7권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수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교과서는 국어 12권(한 달에 한 권), 문학 12권(한 달에 한 권), 국어생활 6권(두 달에 한 권), 독서 12권(한 달에 한 권), 작문 4권(분기별로 한 권)이다.
7권의 교과서가 아니라 46권의 교과서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교과서보다 6~7배가 많은 분량이다. 그리고 지금의 교과서에는 학생들이 실제로는 읽지 않고 넘어가는 형식적인 글들이 많은데 내가 원하는 교과서는 학생이 실제로 읽을 글만으로 채워진 교과서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실제로 읽는 글만을 가지고 따졌을 때 내가 원하는 교과서는 지금보다 10배 정도 되는 분량의 교과서인 것이다.
그 많은 교과서를 어떻게 수업 시간에 다 공부하느냐고? 가능하다. 아니 그렇게 해야 입시를 넘어서면서도 입시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는 2010년에 국어생활 수업을 나 혼자 담당했다. 동료 교사들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9개 반 수업 전부를 나 혼자 했다. 출제와 수업에서 상당부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국어생활 교과서를 8시간에 해치웠다. 국어생활 교과서는 단원이 모두 8개였다. 한 단원에 한 시간씩 모두 8시간을 할애했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교과서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수업 패러다임을 벗어나면 가능하다. 무학년학점제가 도입되고 교사별 평가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해보자. 그래서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도입되고 교사 개개인이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나와 같은 패러다임의 수업을 하는 교사라면 국어생활 교과서가 적어도 6권은 필요할 것이다. 주당 4시간 수업이었다면 12권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입시의 측면에서도 학생들에게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이익이다. 1권의 책만을 읽은 학생과 6권의 책을 읽은 학생 중 어느 학생이 수능시험과 논술시험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교과서자유발행제가 도입되면 다양한 교과서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지금의 교과서도 종류는 많다. 하지만 지금의 교과서는 종류만 많지 모두 대동소이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슷비슷한 교과서 수십 종류가 아니다. 단 몇 종류에 불과하더라도 실질적 다양성을 가진 교과서다.
교사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자신의 수업 패러다임에 맞는 교과서를 선택하여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 능력이 없는 교사도 창의적인 수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교과서를 따라 가기만 해도 수업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창의적 교과서를 채택하면 될 테니 말이다.
사실 수업을 스스로 구성하는 것은 어렵다. 모든 교사들이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교사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교사들이 특별히 무능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원래 그런 것이다. 그 정도의 어려운 일은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소수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큰 일이 날 일도 아니다. 수업을 스스로 구성할 수 없는 교사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교과서를 선택하면 그만이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자신이 가장 잘 따라할 수 있는 교과서를 채택하여 수업을 하면 된다.
실제로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실행되면 책을 그대로 추종하기만 해도 웬만큼 수업이 될 수 있는 교과서가 등장할 것이다.
다음은 내가 어느 젊은 수학교사와 나눈 얘기이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다른 선생님이 천재교사라고 추켜세우는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 앞에서 나는 교과서 자유발행제의 장점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감히 수학 교사 앞에서 수학을 예로 들었었다.
“ 샘, 이런 수학 교과서도 나와야 하는 것 아냐? 교사가 교과서를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수업이 되는 교과서 말이야. 한 시간 단위로 수업이 딱딱 끊어져 있어서 그 교과서의 매뉴얼을 따라 수업을 하다보면 종이 울릴 무렵에 딱 한 챕터가 끝나는 거야. 그러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날 수업한 부분을 뜯어서 제출하라고 하는 거지. 아예 교과서가 뜯어내기 쉽게 만드는 게 좋겠네. 한 시간 수업하고 나면 학생들이 그 시간에 공부한 부분을 분리해서 제출할 수 있게. 그러면 교사는 그것에 코멘트를 달아서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거지….”
이런저런 장광설을 늘어놓았는데, 나의 얘기를 다 듣고 난 그 선생님의 답변은 이랬다. “ 이미, 제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그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니 그 선생님은 학교가 채택한 교과서를 넘어서 버렸다. 그 선생님은 교과서를 완전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교과서의 내용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콘텐츠를 개발했다. 이것을 학습지로 만들었다. 교과서를 단순히 해석하고 분석하기만 하는 대부분의 학습지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 선생님은 수업을 위해 하나의 훌륭한 교과서를 새로 만든 것이다.
“ 수업이 끝날 무렵 나누어 주었던 학습지를 걷어서 간단히 코멘트를 해줘요.”
“ 그런데 제일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수업 교재를 만드는 거예요. 처음엔 한 시간짜리 수업자료를 만드는데 진짜 많은 시간이 들었어요. 학생들 학습지에 코멘트를 다는 시간도 짧지는 않지만 교재 만드는 시간에 비하면 얼마 안 돼요. 대신 수업 시간에는 훨씬 더 편해요. 제가 한 시간 동안 혼자서 떠드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의 설명하는 시간도 있지만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많이 해요. 저는 수업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거죠.”
나는 물었다.
“ 샘, 샘이 만든 학습지를 모으면 그래도 책이 될 수 있잖아? 지금 제도에서 교과서로 채택될 수 있겠어?”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선생님에게 나는 이렇게 농담을 섞어서 한 마디 해주었다.
“샘이 만든 학습지 잘 다듬으세요. 교과서 자유발행제…, 꼭 실현될 테니까. 그 때 되면 교과서로 출판하자고요. 수십 만 부 팔아서 부자 되게요.”
누구나 그 선생님처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수의 뛰어난 교사들은 그럴 능력이 있다. 그 소수의 교사들이 자유롭게 교과서를 출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수의 교사들이 그 소수의 교사들이 만든 교과서를 따라하면 될 수 있도록.
교과서자유발행제가 시행되면 12권짜리 국어교과서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나는 두말 않고 그 교과서를 채택할 것이다.
제4절. 교사의 창조적 에너지를 분출시켜라
교과서자유발행제가 시행되면 다양한 교과서가 존재할 것이다. 교사가 수업 내용을 다시 재구성해야 하는 교과서부터 별다른 노력 없이 교과서를 따라하기만 해도 되는 교과서까지 다양한 교과서가 존재할 것이다. 한권짜리 교과서부터 열권이 넘는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량의 교과서가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사들은 자신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교과서를 선택하려 할 것이다. 교과서를 재창조하고 재구성하여 수업하고 싶은 교사는 그것에 맞는 교과서를 채택할 것이고, 그럴 능력과 의지가 없는 교사들은 교과서를 추종하기만 해도 수업이 진행되는 교과서를 선택할 것이다.
교과서자유발행제가 시행되면 교사들의 창조적 에너지가 분출될 것이다. 그 동안 유능한 교사들은 주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썼다. 하지만 참고서와 문제집의 저술을 통해 자기실현에 대한 욕망이 충족되고 있다고 느끼는 교사들은 거의 없었다. 물론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는 교사들도 많았지만 교과서가 교사 자신의 진정한 창작물이 되기엔 부족했다. 교과서로 인정받으려면 국가 기관이 만든 온갖 규정을 지켜야만 했기에 교사는 자신의 수업 경험을 교과서에 충분히 녹여낼 수가 없었다. 수업은 수업이고 교과서 집필은 교과서 집필이었다.
자유발행제가 시행되면 교사는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한 교과서를 쓸 수 있다. 자신의 수업 경험을 충실히 교과서에 담아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억눌렸던, 또는 엉뚱한 곳으로 표출됐던 교사들의 거대한 에너지가 교과서 창작에 분출될 것이다.
교과서자유발행제는 무학년학점제가 실시되면 더 큰 효력이 있다. 지금의 내신제도에서는 교사 개개인이 독자적인 교과서를 선택하여 수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학년학점제가 시행된다면 교과서자유발행제에서 출판되는 새로운 교과서는 학교 수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낼 것이다.
제5절. 교과서 제도에 시장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어라.
사실 이념적으로만 따지면 ‘교과서 자유발행제’는 보수의 정책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진보 쪽에서 선호할 가능성이 큰 정책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의 다수가 여전히 보수이기 때문에 비롯되는 현상이다. 보수가 진보적 성향의 교과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교과서를 보수적 내용으로만 채우려는 욕심에서 교과서자유발행제를 반대하는 태도는 진정한 보수의 태도가 아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교과서자유발행제를 통해 교과서를 시장경쟁의 냉혹함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교과서를 쓸 수 있게 하고, 교사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학교 교육이 활력을 얻을 수 있다.
현재의 교과서제도는 형식적으로는 경쟁이 있는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위장된 경쟁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교과서 시장에는 대동소이한 교과서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의 제도에서 교사 개개인이 자신의 독특한 수업 경험을 녹여낸 교과서를 출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과서자유발행제는 우파 정부인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했어야 할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는 강제보충수업과 강제자율학습에 대한 규제 등에 관한 규제를 풀게 아니라 교과서 발행에 관한 모든 규제를 풀었어야 했다. 그래서 학교 교육에 시장의 활력을 불어 넣었어야 했다.
교육에 시장경제의 활력을 도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우파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우파 정부가 등장했을 때 해줘야 하는 일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을 때 이런 기대를 적잖이 가졌었다. 다음 글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썼던 글인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나의 이러한 기대를 담아 쓴 글이다.
나는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한편으로는 시대정신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 우리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친한 지인들은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심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을 때 내 지인들의 실망은 적지 않았다. 곧바로 이어진 국회의원 총선에서 사실상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진영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진보진영이 크게 패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 선거 때나 총선 때나 나는 별로 실망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총선 다음 날 실망감을 토로하는 지인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괜찮아. 대운하 빼고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해. 좋아 지는 것 많을 거야. 우파 정권 때문에 나빠지는 것은 좌파 정권 들어서서 고치면 되고. 다만 대운하는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다시 고치기 어렵잖아? 그것만 안 하면 돼 ”
내가 이렇게 말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시장경제주의 정책들이 우리나라에 만연한 비효율과 경직성과 관료주의적 폐해를 치료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세상에는 우파 정권이 아니고는 하기 어려운 일도 있는 것이다. 나는 우파정권은 우파 정권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좌파 정권은 좌파 정권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파와 좌파가 서로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하면서 서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폐해는 반대쪽이 집권했을 때 고치거나 보완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이명박 정부가 교육부분에서도 자신들만이 잘 할 수 있는 정책을 강하게 밀고 나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즉 내가 교육 분야에서 이명박 정부에게 바란 것은 교육에 시장경제의 논리를 적용하여 학교교육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좌파적 가치와 논리에 의한 수술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치명적인 병에 걸려있다. 관료적 획일성과 메마름 속에서 죽어가는 우리나라 교육은 우파적 논리에 의한 수술도 필요하다. 시장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을 도입하는 수술이 그것이다.
학교 붕괴니 교실의 붕괴니 하는 말이 차라리 온건하게 느껴질 정도로 처참한 상태인 학교를 살리는 데에 좌파의 논리는 너무 나약하고 온정적인 면이 있다. 이제 한 번쯤은 교육을 서비스상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시장경제의 논리를 교육에 도입하고 학교교육을 소비자로부터 환영받는 서비스 상품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요구될 때도 되었다.
교육은 절대로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교육이 상품을 뛰어 넘는 가치 있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의미로서만 인정될 수 있는 말이다. 학교교육을 시장의 서비스상품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여기에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철학을 담으려 할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라는 주장은 학교교육이 시장의 싸구려 상품만도 못하여 모든 사람이 교육의 형편없는 질에 대해 불만을 가진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교육이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변화와 변혁을 거부하는 수구적 태도일 뿐이다. 그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편안함을 누리는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형편없는 교육의 질을 그냥 그대로 놔두자고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교육을 시장화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에 따르는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가 생긴다고 장을 담지 않을 수는 없다. 장을 담그다 구더기가 생기면 걷어 내면 된다. 교육시장화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은 고치면 된다. 어쩌면 교육시장화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을 치유하는 것은 우파정권이 시대적 사명을 다하고 물러났을 때 새로 들어선 좌파 정권의 임무일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파 정권으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다 하려면 교육시장화 정책을 제대로 해야 한다. 교육을 제대로 상품화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학교에 시장의 활력을 제대로 도입하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강제적 보충수업을 하는 교장을 영웅화하는 등, 오히려 시장경제의 정신과 배치되는 엉뚱한 정책만을 폈다.
나는 지금도 학교교육에 시장경제의 요소를 도입하여 시장의 역동성과 활력으로 학교 교육을 깨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함부로 해선 안 된다. 교육은 경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 영역에는 경제 영역에 비해 시장경제의 도입이 상대적으로 적어야 한다. 무능한 기업은 망해도 되지만 무능한 학교라고 함부로 망해서 안 된다. 학교에는 학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교 간의 경쟁도 기업 간의 경쟁처럼 지나치면 안 된다. 그 경쟁으로 인해 진짜 죽어나는 것은 교장이나 교사가 아니라 학생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서제도에는 시장경제를 완전히 도입해도 된다. 누구든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교과서를 만들게 하고, 교사 개개인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교과서는 이렇게 완전 경쟁의 상황에 몰아넣어도 된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무능한 교과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상처받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기껏해야 그 책을 쓴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상처받은 교사도 경제적 파탄과 같은 큰 타격을 받는 것도 아니다. 책 출판했다가 안 팔리면 손해 보는 쪽은 출판사이지 교과서 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저 정열과 시간만을 낭비했을 뿐이다. 책을 쓰며 배우고 공부한 것을 생각하면 시간과 정열을 낭비한 것도 아니다.
이렇듯 교과서 완전 자유발행제를 도입해서 시장의 활력과 역동성을 학교 교육에 도입하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다. 천 권에 한두 권 나올 이상하고 괴이한 책들조차도 교사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시장에 맡겨서 도태시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