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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정의 직언직설

수능 절대평가제 - 왜 계륵(鷄肋)에 집착하는가?<국회 토론회 토론문>

작성자나비하늘|작성시간17.08.22|조회수94 목록 댓글 3

수능 절대평가제

- 왜 계륵(鷄肋)에 집착하려 하는가? -

 

이기정 (미양고등학교)

 

 

0. 계륵(鷄肋)

 

수능 절대평가제 - 교육의 당위를 생각하면 가야할 길로만 보인다. 당위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 길을 가야 우리 교육이 크게 좋아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 그 길은 생각보다 먹을 게 별로 없는 길이다. 삼국지의 조조가 말한 계륵(鷄肋)이라고나 할까? 계륵의 의미를 빌려 결론을 말하자면, 수능 절대평가는 버리기엔 아까울 수 있어도 막상 먹으려들면 별로 먹을 게 없는 제도다.

 

 

1. 고교 교육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수능 절대평가제는 고교 수업에 얼마만큼의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긍정적 영향도 있겠지만 부정적 영향과 상쇄되어 남는 게 없을 것이다. 왜 수능 절대평가로는 역부족인가? 비유적으로 얘기해보자.

 

학교수업 = 사람 / 학교시험 = 총알 / 수능시험 = 화살

 

지금의 학교수업(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은 학교시험(총알)과 수능시험(화살)이다. 다른 것도 많지만 이것에 초점을 맞춰보자. 수업이 살아나려면, 즉 수업이 정상화되고, 저차원적 모습에서 벗어나려면 총알도 피하고 화살도 피해야 된다. 어느 하나만 피하면? 어차피 죽는다.

 

수능 절대평가는 수능시험의 부정적 영향(화살)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시험의 부정적 영향(총알)이 남아있다. 총알을 막으면서 화살까지 막아낸다면 수업은 산다. 하지만 화살만 막아내고 총알은 막아내지 못하면 수업은 살지 못한다. 학교시험이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설사 수능시험을 폐지한다 할지라도 학교수업은 살아나지 못한다.

 

더 솔직하고 냉혹하게 얘기 해보자. 어쩌면 수능시험은 어쩌면 억울하다. 흔히들 주입식암기 교육이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초래한 주범은 수능시험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시험이다. 사실 학교시험은 수능시험이 없었으면 지금보다 더 암기 위주 시험으로 흘렀을 수 있다. 수능시험이 그것을 막아준 측면마저도 있다.

대학입시에는 3개의 중요한 시험이 있다.

 

학교시험(내신), 수능시험, 대학별시험(논술고사, 구술고사)

 

어떤 시험이 가장 저차원적 시험일까? 어떤 시험이 가장 저차원적 학습을 유발할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학교시험이 가장 저차원적 시험이고 가장 저차원적 학습을 유발한다. 물론 예외는 적지 않다. 적지 않은 교사들이 계속해서 그 예외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내신제도에서 그 한계는 너무나 뚜렷하다. 편의상 시험을 1차원, 2차원, 3차원적 시험으로 구분해 보면 1차원-학교시험, 2차원-수능시험, 3차원-대학별시험으로 분류해도 큰 오류는 없다.

 

학교시험이 4차원 시험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발전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을 제일 먼저 개혁해야 할까? 현재의 학교시험을 강요하는 현재의 학교내신제도다. 학교내신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학교의 시험과 수업 또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2. 얼마나 공정한 입시로 여겨질까?

 

국민이 기대하는 입시 공정성의 가치와 크게 배치된다. 물론 상대평가제에서 점수 1-2점으로 당락이 갈리는 것은 대단히 비교육적이긴 하다. 89점과 90점 사이에 어떤 실력의 차이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보자. 90점과 89점 사이엔 어떤 실력 차이가 있어 하나는 1등급이고 다른 2등급인가? 89점과 90점 사이에는 실력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89점과 80점 사이엔 상당한 실력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왜 89점과 90점은 다른 등급인데 89점과 80점은 동일 등급이란 말인가?

 

이것은 국민의 공정성 심리와 현저히 어긋난다. 물론 복불복이다. 입시는 제로섬 게임이다. 손해를 보는 학생이 있으면 그만큼 이익을 보는 학생이 생긴다. 손해는 이익으로 상쇄되고, 이익은 손해로 상쇄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익과 손해가 서로 상쇄되어 0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의 심리는 이익보다는 손해에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익을 본 학생들은 침묵할 것이다. 하지만 손해를 본 학생은 격하게 분노할 것이다. 결국 정부는 칭찬은 받지 못하고 비난만 받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교육을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한다면 우리는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다. 하지만 현재의 입시상황에서 수능 절대평가는 학교교육을 살리는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 교육적 이익은 별로 얻지 못하고 국민의 공정성 가치(심리)에만 상처를 줄 것이다.

 

3. 학생들의 부담을 얼마나 줄여줄까?

 

절대평가제로 인해 수능의 입시 비중이 축소된다면 학생들의 수능 부담도 그만큼 축소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쪽의 부담을 키우는 풍선효과에 의해 상쇄된다. 여기서는 풍선효과가 없다는 전제 하에 절대평가제가 얼마나 학생들의 수능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까 살펴보자.

 

결론을 먼저 말하면 2-9등급 학생들의 부담은 기존과 동일하다. 1등급의 아래쪽 절반 학생들의 부담도 거의 그대로 일 것이다. 수능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1등급 상위권 학생들뿐이다.

 

수능의 입시 비중이 지금과 동일하다면 절대평가제가 되어도 2-9등급과 1등급 하위권 학생들의 수능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그대로다. 점수를 올려야 하는 부담이 등급을 올리는 부담으로 바뀔 뿐이다. 점수만 올려선 이익이 안 되고, 등급을 올려야 이익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1등급 하위권 학생은 등급이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부담이 크다. 이게 한편으론 부담을 줄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부담을 키운다. 서로 상쇄하면 부담의 총량은 거의 그대로다.

 

물론 수능 모의고사에서 안정적으로 1등급이 나오는 학생들은 수능 부담을 덜 수 있다. 그 학생들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그래서 수능 준비를 덜 해도 된다. 조금 덜해도 2등급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적이니까 말이다. 결국 수능 절대평가로 인해 부담이 줄어드는 학생은 1등급 중에서도 상위권 학생들뿐이다. 따라서 절대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려면 안정적으로 1등급이 나오는 학생의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1등급 기준점을 90점이 아닌 85점이나 80점으로 낮추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선 최상위권 학생들이 앞장서 수능 절대평가를 찬성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최상위권 학생들이 절대평가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더 공부해봐야 올라갈 곳이 없다. 1등급보다 더 높은 등급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보다 점수가 낮은 학생들과 동일한 등급을 받아야 한다. 입시 경쟁의 측면에서는 이 학생들이 가장 불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다.

 

 

4. 변별력 약화 방지책(대응책)들에 대한 비판적 의견

 

무엇보다 이런 근본적 의문이 든다.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들까? 수능의 입시변별력을 약화시키려고 절대평가를 도입했는데 또 다시 그 수능의 입시변별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장치를 추가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절대평가를 도입한단 말인가?

 

절대평가를 정말로 추진하려면 변별력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별력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수능 절대평가제는 수세적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 원래 절대평가제는 변별력을 희생하는 제도이다. 변별력을 희생하지 않는 절대평가는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위장된 절대평가일 뿐이다. 절대평가를 하려면 변별력의 약화는 감수해야 한다. 온전한 절대평가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수능의 입시변별력 약화를 감수하지 못하겠으면? 절대평가는 못하는 거다. 물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안이 원래의 상대평가제보다 더 나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왜 수능 절대평가를 주장하는가? 속된 말로 학생들이 더 쉽고 단순하게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안이란 것이 상황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면? 나는 대안들이 상황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대평가제도를 유지하면 입시변별력은 획득된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절대평가를 도입하여 변별력을 약화시킨 다음에 그것이 두려워서 거기에 다른 해결책을 결합시켜서 다시 변별력을 획득한다면? 일이 아주 복잡해진다. 이 복잡한 것이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5. 내신 절대평가를 필수조건으로 하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고찰

 

교육개혁에서 바둑의 맥점, 볼링의 킹핀에 해당하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고교학점제다. 단 제대로 된 고교학점제다. 내신 절대평가를 필수조건으로 하는 제대로 된 고교학점제다. 가짜 절대평가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내신 절대평가제와 함께하는 고교학점제다. 그것이 교육개혁의 맥점이요 킹핀이다.

 

수능 절대평가제는 옳은가, 그른가? 맥점과 킹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맥점과 킹핀에 따라 수능 절대평가는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내신 절대평가제와 함께하는 고교학점제는 대학입시에 엄청난 과도기적 혼란을 초래할 제도다. 문재인 정부에게 그 혼란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 비난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 하필 문재인 정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가?

 

아래 글은 <수능 절대평가제가 불편한 이유>라는 제목의 815일자 경향신문 칼럼이다. 수능 절대평가제와 고교학점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참고로 싣는다.

 

수능 절대평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교육의 당위를 생각하면 절대평가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입시의 현실을 생각하면 상대평가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 당위와 현실의 충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논의 구도 자체가 불만스럽다. 어째서 절대평가 논의의 주된 대상이 수능시험이란 말인가?

 

대학입시에는 세 개의 중요한 시험이 있다. 학교시험, 수능시험, 대학별시험이다. 현재로선 세 개의 시험이 모두 상대평가다. 세 시험 모두 당위보다 현실을 우선시했다. 균형추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당위와 현실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절대평가제를 도입한다면 어떤 시험에 먼저 도입해야 할까? 전부 도입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 개의 시험에만 도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시험이어야 할까?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대다수 아이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시험이어야 한다.

 

입시 경쟁 중 어떤 경쟁이 가장 비교육적일까? 학교 친구들 간의 경쟁인 내신 경쟁이다. 그것이 경쟁의 범위가 좁아 가장 고통스럽다. 현재의 상대평가제에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 경쟁의 범위가 훨씬 더 좁아진다. 동일한 수업을 신청한 더 가까운 친구들이 치열한 경쟁자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교실혁명으로 교육혁명을 이루겠다고 공약했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교실을 열겠다고 했었다. 어떻게 가능할까? 고교학점제 공약을 시행하면 된다. 고등학교의 경우 학점제만이 교실혁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중에 혁명적 공약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고교학점제 공약이다. 교육선진국의 보편적 제도라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대단한 공약이다. 그런데 내신 절대평가제의 전면화 없이 고교학점제를 추진하면 어떻게 될까? 강하게 추진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해 결국은 시늉만 내다 말 것이다. 그러나 혹시 물정 모르고 강력하게 추진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교실혁명이 아닌 교실지옥을 이룬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냉혹한 줄세우기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현실이 그것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 어쨌든 현실은 현실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그 현실에 저항해야 할 자는 누구인가? 수능시험 출제자인가? 대학별시험 출제자인가? 아니다, 학교의 교사이다. 그것이 교육의 당위이고 거기에 교육의 살 길이 있다.

 

물론 입시는 현실이다. 내신 절대평가제는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무엇보다 입시불평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대학입시가 특목고, 자사고, 강남권 학교에 현저히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역시 입시의 현실은 녹녹치 않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현실에 저항하고 교육의 당위를 부여잡아야 할 시험은 다른 시험이 아닌 학교시험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것만이 학교교육을 살려 입시불평등을 완화할 올바른 길이다.

 

수능시험과 대학별시험 출제자들은 자신이 출제한 시험으로 경쟁하는 아이들과 삶을 함께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시험 출제자인 교사는 자신이 출제한 시험으로 경쟁하는 아이들과 삶을 함께하며 그 아이들을 교육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쩌면 수능시험이 했던 줄세우기 역할까지 넘겨받아 아이들을 더 강력하게 줄세워야 할지 모른다. 나에겐 이것이 현실에 가장 강력히 저항해야 할 존재를 현실에 가장 심하게 굴종하는 존재로 만드는 참혹한 일로만 여겨진다.”

 

 

6.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불신 - 불신을 넘어선 분노와 증오

 

경향신문 칼럼 <수능 절대평가제가 불편한 이유>에 달린 400개나 되는 댓글을 전부 읽어 보았다. 적잖이 놀랐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충분히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놀랐다. 수능 절대평가제에 반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좀 의외였지만 내가 놀란 건 그게 아니다. 내가 놀란 건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불신, 아니 불신을 넘어선 분노, 분노를 넘어선 증오감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수능 절대평가를 반대하는 분들의 상당수가 학종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명했다. 학종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칼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학종을 비판했다. 그분들이 수능 절대평가를 반대하는 이유는 상당부분 학종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수능 절대평가제가 학종의 비중 확대를 부를 것이라는 현실에 대한 염려와 우려 때문이었다.

 

학종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빠른 시일 내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빠른 시일 내에 입시에 반영하는 비교과 영역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전부 없앨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큰 폭으로 축소해야 한다. 아직 충분히 숙성된 생각은 아니지만,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수업활동)과 정규 동아리활동, 학생회활동 기록만 빼고는 전부 없애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동안 나는 학종의 장점과 단점 사이에서 오락가락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이런 의문이 마음을 온통 지배하고 있다. “학종이 대한민국의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를 전부 위선자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우연의 일치로 사실상 같은 날짜에 발제자인 이범 선생이 나와 같은 동일한 취지의 글을 썼다. 나는 페북에 썼고 이범 선생은 허핑턴포스트(발제문의 일부)에 썼다. 물론 이범 선생의 글이 내 글보다 훨씬 치밀하고 체계적인 글이었다.

 

수능 절대평가는 계륵이다. 하지만 학종에 대한 대책 마련은 먹을 게 많을 것이다. 이범 선생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학종 개편이 수능 개편보다 먼저다.”

 

 

7. 제안 학생부종합전형,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수능 절대평가에 대한 얘기가 학종 개혁에 대한 얘기로 흘렀다. 내친 김에 학종에 대한 개혁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불만의 핵심인 비교과 영역에 대한 개혁이 시급하다.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학생부 비교과 영역,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남겨야 하나?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자. 3개 내용만 입시에 반영해야 한다.

 

수업활동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 / 동아리활동 / 학생회활동

 

내가 여기서 말하는 수업은 정규수업만을 말한다. 보충수업은 당연히 제외한다. 동아리도 정규 동아리만을 말한다. 학생회활동은 학급 차원의 학생회활동도 포함해서 말했다.

 

3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없애야 한다. 즉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제외해야 한다. 왜 그런가?

 

첫째, 3개의 활동만이 학교교육의 핵심이다. 수업, 동아리, 학생회 - 이것들만 잘되면 학교교육은 성공하는 것이다. 다른 것을 하나도 하지 않아도 저것들만 잘되면 성공하는 것이다.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3개 활동이 잘되면 인성교육은 저절로 된다. 인성교육만 따로 떼어내서 하면 인성교육이 오히려 망가질 수 있다. 내가 인성교육진흥법을 반대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예체능 절대평가제가 도입된 후 수업 방식을 크게 바꾼 어느 어느 체육 교사가 있다. 그가 배구 수업에서 중요하게 가르치는 게 무엇인 아시는가? ‘서로 손을 모아서파이팅하고, ‘어깨동무 하면서작전회의 하는 것이다. 이것만큼 아이들의 협동심과 우정을 길러주는 수업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성교육단체가 와서 백날 인성교육해도 이런 수업의 효과를 못 따라 간다. 체육을 예로 들었지만 진짜 좋은 인성교육은 다른 모든 수업시간에서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수업이 제대로 살아나는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마찬가지다. 3개의 교육이 잘돼야 민주시민교육도 잘 될 수 있다. 민주시민교육만을 따로 떼어 내어 교육하면 그 역시 망가질 수 있다. 자칫 민주시민교육이 아닌 진보진영의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학교에는 너무나 많은 잡다한 활동이 존재한다. 정말 너무 잡다한 것들이 많다. 이것들이 오히려 교육을 망치고 있다. 물론 하나하나만 보면 그것들 나름대로의 교육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것들이 오히려 교육을 망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들을 전부 없애야 오히려 학교교육이 제대로 선다. 수업, 동아리, 학생회, 가장 중요한 것들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학생-교사-교장이 다른 것들에 시간과 에너지와 관심을 낭비하고 있는가? 다른 것들에 투여한 시간과 에너지와 관심을 모아 이 3개의 핵심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산다.

 

학종이 학교교육에 기여하려면 학생부 비교과 영역은 이 3개만을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의 핵심에 학생-교사-교장의 관심과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더 집중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요지만 말한다.

 

둘째, 3개의 비교과 기록이 그나마 덜 거짓된 기록이다.

 

셋째, 사교육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넷째, 학생 자신의 능력과 열정이 다른 것에 비해 크게 작용한다.

 

 

8. 마치는 말

 

교육혁명을 부를 근본적 교육개혁을 원하는가?

내신 절대평가제와 함께 하는 제대로 된 고교학점제가 답이다.

 

우선 시급한 입시개혁을 원하는가?

학종 개혁이 답이다.

 

수능 절대평가제는 이들의 진행 상황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수능 절대평가제는 계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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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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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앨리스원더 | 작성시간 17.08.24 1. 학종부터다
    2. 고교학점제 부터다
    완전히 동의합니다.
    질문있습니다.
    일반고, 지방 작은 학교 등에서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한 준비가 가능할까요? 교사역량, 시설, 컨텐츠 등이요.
  • 답댓글 작성자나비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9.08 내신평가제도 (절대평가제 -교사별평가제) 만 결단을 내리면 나머지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렵기 하지요. 하지만 내신평가제도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천천히 상황에 따라 전개를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규모가 작은 학교는 더 많은 지원을 하면 되고요.
    중요한 것은 내신평가제도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 작성자파란새벽 | 작성시간 17.08.28 역시 교육현장에서 고민을 거듭하며 복잡한 매듭을 풀어가는 나비하늘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문제의 본질을 먼저 생각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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