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묵은 독일 유학기 (1)

작성자열차11|작성시간12.11.26|조회수177 목록 댓글 5

19858월 나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특별히 독일 문학에 대한 엄청난 매력을 느꼈거나 특정 영역에 대한 사명감이 확고해서는 아니었다.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자,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 그 정도였다. 어쩌면 무책임한 일이었다. 경제력이 뒷받침 된 것도 아닌데다 그때 막 결혼까지 했던 터였기에 더욱 그랬다. 최소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는 것은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는 적고 불안은 매우 컸다.

 

지금도 그 날이 생생하다. 새벽에 뒤쎌도르프 공항에 혼자 내리면서 느꼈던 생경함. "나무가 많구나" 그 정도의 느낌뿐 머리는 텅 비어있었다. 일주일을 내리 내리는 비때문에 친구가 미리 구해준 방에 처박혀 창 밖을 보면 가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노인들이 보일 뿐 별 관심을 줄 만한 것이라곤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었다. 집사람이 한 달이 지나 오기로 되어있어 외로움이 더했다. 한국말과 한국 사람이 그렇게 그리울 줄 예전엔 상상도 못했다. 별생각 없이 가져갔던 가요 테이프를 하루 종일 틀어놓았다. 정태춘, 해바라기... 가끔 눈물이 주르르 흐르면 공부고 뭐고 그냥 다시 내 나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산 속 같은 고요를 견디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당시로서는 어찌 상상이나 했으랴. 그 한산함과 고요함이 커다란 안정감으로 다가오게 될 줄을. 후에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소란스럽고 분주한 곳에서 살았으며, 그 속에서 얼마나 심한 경쟁의 압박으로 시달렸던가를. 독일에서 보낸 게 5년 반정도. 그것도 습관이 되나보다. 지금도 독일의 그 고요함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준다. 식사 후면 항상 걷던 산책로, 휴일이면 걸어가 쉬고 오던 가까운 공원, 그런 곳이 때때로 무척이나 그립기까지 하다. 우스운 일이다. 예전에 누가 외국 좋다고 하면 속으로 비웃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사실 독일에 있을 때 나는 독일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외국인, 특히 터어키인과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유색인에 대한 백인의 우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그것을 느끼게 하는 일들은 집을 구할 때, 관공서에서, 어쩌다 길에서, 또는 여행 중에, 심지어는 학교 기숙사에서도 일어났다. 독일에서야 알았다. 한국에서 서양은 맹목적 경애의 대상이었구나, 바로 그 정도만큼 서양에서 한국은 맹목적인 무시의 대상이구나. 하기야 한국이 어디 있는지, 한국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며, 우리가 일본어나 영어를 쓰는 것으로 아는 독일인도 적지 않았다. 우리말이 있다는 게 그렇게 당당할 수 없었다. 일본과 독일의 관계는 상상 이상으로 돈독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서울 올림픽을 알리면서도 반 정부 데모, 개 잡는 모습, 북한과 서로 싸우는 모습을 방영했다. 그 동안 내가 너무나 우물안 개구리 같은 삶을 살았구나, 다른 세상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집안싸움만 했었구나. 쓰디쓴, 그러나 값진 인식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독일에서 나는 비로소 민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북문제도 그때까지와는 다른 민족적 차원에서 보게 되었다.

 

민족주의는 위험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 강대국의 패권적 민족주의는 위험하다. 약소국의 폐쇄적, 배타적 민족주의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의 군사독재정부도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대한 적대감 유지를 위해 민족이라는 용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상하게도 민족 없는 민족주의가 발달했다. 약소국인데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패권적, 공격적 민족주의가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서양에 대한 열등감에 기반한 식민적 민족주의가 발달했다. 군사독재 자체가 기형적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상장한 민족주의 역시 기형적이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지금까지도 그 기형은 교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더 강화시키려는 세력도 있을 정도다.

 

민족적 자기애와 자긍심 없는 민족주의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진정한 자긍심은 자기 존재에 대한 객관적 성찰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진정한' 자기애와 자긍심은 '서양 백인' 만이 아닌 모든 타인과 타민족에 대한 존중과 사랑으로 확장되게 되어 있다. 괴테는 말한다. "낮은 교양의 단계에서는 낯선 것에 대한 미움이 우세하지만 높은 교양의 단계에서는 낯선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평안함이 우세하게 된다"고. 우리에게 조건 없는 보편적 자기애와 자긍심이 있는가? 우리 아이들이 열린 자기애를 가지고 세상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가? 엄격하게 보면 군사정부는 일제와 마찬가지로 민족 의식 없애기를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자기 결단과 자기 오성의 사용을 위험한 것으로 의식하게 만들었다. 북한과의 관계때문이기도 헸지만 딴은 독재를 위해서도 자기오성의 사용은 회피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 또한 지금의 교육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말 잘 듣고 암기 잘하는 학생, 그래서 생각하기를 그친 학생이 우수학생이요 모범학생이라며 칭찬을  받는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말한다. "자기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모토이다." 유태인들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선민의식에 기반한 민족의식에서 온다. 유태인의 공격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찬가지로 선민의식에 기반한 민족의식에서 온다. 선민의식은 개방적일 경우 긍적적 힘이 되지만 폐쇄적일 경우 공격적 폭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대인의 경전도 그런 폐쇄적 선민의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현재의 유대인들이 폭력적이고 폐쇄적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신 여호와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여호와의 가르침을 벗어난 유대인이 겪어야 하는 삶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는 그들의 경전에도 수없이 언급되어 있다.

 

자의식을 동반한 자긍심. 타인 존중과 타인 사랑으로 확장되는 자기 존중과 자기 사랑. 이것은 민족에 대해서 뿐 아니라 경상도, 전라도, 충정도를 따지는 향토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유대인도 앵글로 색슨도 존중받아야 한다. 한민족도 히스페닉도 존중받아야 한다. 경상도민도 전라도민도 함경도민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 남한사람, 북한사람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진정한 자기애와 자기 존중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타인에 대한 사랑, 존중과 다르지 않음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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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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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leastory | 작성시간 12.11.26 오, 전교수님 환영합니다. 좋은 글 많이 기대할께요.ㅎㅎ
  • 작성자오드리 | 작성시간 12.11.26 제가 작년에 가본 독일은 참 깨끗하고 정돈되고 살기 좋은나라 같았어요. 교수님의 독일유학기를 그냥 재미로 읽으려 했는데 여러 숙제를 안겨주시넹..ㅋㅋ
  • 작성자튼튼이 | 작성시간 13.05.07 독일 유학중이던 도련님이 자전거를 묶어두었는데 바퀴만 남고 깨끗이 훔쳐갔대요. 순간 잃어버린 자전거에 놀란것이 아니라 어찌 그걸 하나하나 분해했을까? 그들의 열정에 놀랐다는.. 저는 아직 비록 낮은교양의 단계인듯하나 낯선것에 대한 평안함을 가지려 합니다.
  • 작성자freebird | 작성시간 13.07.17 "자기애와 자기존중" 이게 핵심이네요. 요즘 드는 생각이 모든게 자존감에 의해 좌우된다는 느낌입니다.
  • 작성자윤성지기 | 작성시간 13.10.05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자기의 오성을 내는건 용기였군요...용기..그게 참 안되네요....
    이제서야 이글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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