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을 소개합니다

작성자열차11|작성시간13.05.07|조회수197 목록 댓글 13

가정의 달 5월에  권정생 선생에게 생명과 사랑을 묻는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처음 시작한 것이 나무장수였고 다음이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그리고 점원노릇. 결핵을 앓은 것은 열아홉살 때부터였다. [...] 나는 늑막염과 폐결핵에서 신장결석 방광결핵으로 온몸이 망가져갔다. 병을 앓는 나도 고통스럽지만 식구들의 고통은 더 심했을 게다. 어머니는 내가 아니었으면 좀더 오래 사셨을 텐데 자식 병구완하시느라 일찍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첫아들을 장티푸스를 앓으면서 사산하시고 셋째는 열일곱살 때 잃고, 둘째와 넷째는 해방 이듬해 헤어진 뒤 결국 다시 만나보지 못하셨다. 그런 어머니는 1964년 가을에 세상을 뜨셨다. 몸져누우시기 전날까지 병든 자식 걱정하며, 헤어진 자식 기다리며 사셨다.”

 

<강아지 똥><몽실 언니>의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그와 그의 어머니가 겪었던 고난, 그리고 그 고난의 바탕에 흐르는 가족간 사랑이 눈물겹다.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46년에 귀국해 청송으로 돌아온 선생은 이미 젊은 시절 2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지만 69세까지 사시다가  2007517일 세상을 떴다. 일제시대의 한 복판에서 태어나  해방과 동족간 전쟁, 그리고 분단과 산업화 시대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했으니, 그의 삶은 가히 “20세기의 모든 고통이 한데 집결한 것과도 같은 일생이었다 할 수 있겠다. 하기야 그 고난이 어디 권정생 선생만의 것이었을까. 크기는 다를지라도 그 시대를 지나온 우리 어버이들 대부분은 벗지 못할 등짐처럼 걸머지고 살아야 할 것이었을 터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어버이들은 그 가혹한 삶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 그리고 이웃에 대한 연민과 배려로 견뎌냈다. 그들의 그런 심성과 태도는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우리 사회를 그래도 살맛나는곳으로 만들어준 든든한 지지대였다.

 

하지만 지금, '자가용도 끌고' 모든 것이 '옛날 보다는 훨씬 나아졌다'는 지금, 그 때 그 시절의 이웃정과 연민은 그야말로 가요무대의 흘러간 옛노래 정도로 전락했고, 밤이나 낮이나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레퍼토리는 살인, 성추행, 화재, 붕괴, 전쟁의 위협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더욱 권정생 선생이 돋보인다. 선생에게는 여전히 역사는 잔인하지만 생명은 아름답다.” 세월이 변했으되 그는 우리의 오랜 미덕을 잃지 않았고, 삶이 어려울수록 오히려 더 깊고 넓게 생명을 사랑하는 성자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는 젊은 시절 16년을 교회문간방에서 지냈다.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으로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보니 그것들과 정이 들어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70년대 초중반 평범한 가정의 생활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젓갈이나 야채 등을 팔러온 여인네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던 어머니들의 모습도 기억할 듯하다. 선생은 사람들이 꺼리는 미물조차도 이웃으로 맞이하는 능력을 지녔던 듯하다. 범인으로서는 선생의 그 능력에 미치기는 어렵지만, 사람살이의 행복은 이런 오지랖 넓은 사랑과 조금이나마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누는 따뜻함에서 나올 터이다.

 

생쥐들이 들던 집을 떠나 한 삶만 누우면 딱 맞는 흙집 방으로 이사해 남은 생을 산 선생은 타계하기 2년 전에 쓴 유언장에는 이런 내용을 앞세웠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15년을 입은 누런 똥색의 나일롱 셔츠를 버리지 않고 알맞게 살아갈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한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선생의 삶은 남김없이 주는 삶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만큼 선생은 어느 것, 어느 곳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듯하다. 그래서 선생에게서는 고난조차도 유머로 승화되어 진지하면서도 밝고 경쾌한 것이 되고 만다.

 

그의 유언장에는 이런 글도 있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 요즘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선생은 결핵으로 평생을 혼자 살아야 했다. ‘환생이라도 해서 해보고 싶은 연애인데, 그마저도 전쟁하려는 폭군지도자가 있으면 그만둘 수도 있다고 한다. ‘사랑은 결코 전쟁을 견딜 수 없다.

 

20135. 잔인한 달이다. 사랑과 정을 이야기함이 마땅할 가정의 달, 들려오는 것은 흉악한 범죄와 사건이요 터져 나오는 것은 남북한 갈등과 전쟁의 위협이다. 선생은 그 원인을 인간의 지나친 이기심에서 찾는다. 과도한 이기심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욕망 충족의 도구가 되고 자연은 원래의 품성을 상실한다. “닭을 닭으로 키우지 않고 닭고기로 키우다보니 닭의 품성을 잃어버리듯이 사람도 사람으로 키우지 않고 돈벌이 물건으로 키우니까 아이들이 자살을 하고 심지어는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는 악마가 된 것이다.” 소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소를 소고기로 키우려니 소에게 소를 먹이고, 종내는 소가 사람에게 인간 광우병이라는 복수를 한다.

 

 

자연을 거스르고 천륜마저 파괴하는 인간에게 자연은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하게 될까. 눈앞의 이익을 위해 뻔한 사실을 날조하고 사람을 음해해 범죄자로 만들며, 권력을 위해 애먼 사람들 사지로 몰고, 생명을 죽이는 전쟁을 애들 놀이처럼 아는 인간들에게 하늘은 어떤 벌을 준비하고 있을까. 소를 소이게 하듯, 산도 산이게, 강도 강이게 하면 좋겠다. 조금 비겁하고 거짓을 말할 수는 있다 해도 근본까지 왜곡해 서로가 품성’ 자체를 파괴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선생은 말한다.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길러지려면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 이웃과 함께 어우러져 자라야 한다. [...] 고향과 어머니와 자연은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가졌다. 인간의 시작도 여기서부터였고 마지막도 이곳이다.” 이웃과의 어우러짐. 그것이 경계없이 가능해지는 날은 언제일까. 선입관과 이데올로기, 술수와 증오가 아니라 진실과 인간성, 연민과 이해와 이웃정이 흐드러지게 꽃피는 날은 그 언제일까.  그때가 내년 5월이라면 그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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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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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니 | 작성시간 13.05.08 글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숭고한 삶 앞에 숙연해집니다. 나는 오늘 어떤 이기심으로 하루를 살았나 되돌아보게 되네요.
  • 작성자leastory | 작성시간 13.05.08 전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동이 밀려오네요.
  • 작성자웃음소리 | 작성시간 13.05.08 글쓴이가 누군지 한참 생각하다가 전동열차가 문뜩 떠오르더군요.^^
    아침부터 좋은 글을 읽으니 눈이 맑아지고 심장 박동이 차분해지는군요. 이게 인문학의 힘인가요?
    이글을 다른 카페에도 퍼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열차11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5.08 그럼요 영광이지요
  • 작성자생각날적 | 작성시간 13.09.24 우리집 4살 꼬멩이도 권정생선생님 압니다. 강아지똥이랑 오소리네 꽃밭을 넘넘 재미있게 읽고 읽고 또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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