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진실찾기

작성자이옥현|작성시간14.08.28|조회수46 목록 댓글 2

▲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4.8.25/뉴스1 © News1

 

노벨문학상을 받은 탁월한 문호 하인리히 뵐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후기에 이렇게 밝혔다.

 

'상황은 갈등으로 가득 차 있기 만한 것이 아니라, 격정적으로 폭발하게 된다. 주위에는 다이너마이트가 놓여 있고, <차이퉁>은 늘 거짓말을 해대는 파괴적인 초강력 주둥이로 경찰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거나 경찰에서 정보를 입수하면서, 헤드라인, 혐의, 비열함을 마구 휘두른다.'

 

뵐은 자신의 소설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팸플릿’으로 격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하노버 공대 심리학 교수 페터 브뤼크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그는 1972년 바더 마인호프 일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물론 해직까지 되었다가 나중에 무혐의로 복직되었지만 상당한 명예 실추를 겪고 이겨내야만 했다. 이런 언론의 폭력성에 대항해야 하는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가를,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지를 묻는다.

 

팸플릿 소설의 주인공 블룸은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가정관리사로 사건은 1974년 2월 20일 수요일 여성 카니발 전날 밤, 볼터스 부인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면서 일어난다. 빈틈없고, 지인들 사이에서 ‘수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블룸은 몇 년 만에 파티에 참석한다.

 

그날 그 곳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으며, 자연스레 그녀의 아파트에서 지낸다. 그녀는 나중에야 그에 대해 알게 된다. 그는 오랫동안 수배 중인 강도로, 살인과 그밖의 범죄 혐의로 쫓기는 신세였다.

 

괴텐을 쫓던 수사과장은 경찰과 함께 그녀의 아파트로 들이닥치나 괴텐은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기막힌 우연, 혹은 운명은 사랑하는 남자를 탈출시키도록 만든다. 그리고 경찰에 연행되어 그 후 일요일 낮 12시 15분경, 세상이 놀랄 만한 사건이 벌어진다. 블룸이 그녀의 아파트에서 <차이퉁>의 담당기자를 총으로 살해한 것이다.

 

 

 

그녀는 살인을 했다.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녀는 살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블룸이 언론에 노출된 것은 4일 이었고, 그 4일 동안 스물일곱 해 동안 그녀가 쌓아온 삶은 한순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언론의 폭력, 저널리즘의 횡포는 뉴스의 앵글을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도록 선정적인 헤드라인이 일면을 장식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비방과 비열한 방법으로 이용되어 사적인 일들을 오도하고, 사실 왜곡도 마다하지 않는다.

 

언론은 ‘진실’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그 가치가 훼손되거나 은폐를 지속적으로 해온 언론을 한국사회에서는 ‘좀비언론’이란 말로 대신한다. 저널리즘의 역할에 자신을 던진 '저널리스트'라는 이름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좀비언론’을 만든 기레기들이 넘쳐나는 한국사회이다.

 

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한 인간 '김영오'의 잃어버린 명예에 대해서 그냥 지나칠 일이 결코 아니다. 그가 되찾고자 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실종된 ‘진실’이기 때문이며, 개인의 삶을 파괴해도 처벌되지 않는 범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이 제 역할을 해 낼 때 대중은 그 정보들을 통해 사실을 접하고 자기 판단을 한다. 한국사회에서 언론을 우선으로 장악해온 역대 정권들은 권력집중을 위한 마타도어를 할 수 있는 우위의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세월호참사에서 주검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반복되어선 안 될 일이다. 물론 이런 일들 또한 어제 오늘의 사건만은 아니다.

 

국민들이 지켜내지 못했던 민주화의 시간 10년 이후, 언론의 공조와 국가가 주도면밀하게 진행하고 있는 ‘사찰’은 평범한 개인에게도 ‘자기검열’을 각인시키고 공포를 조장해 왔다. 이에 진실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언론의 횡포는 야만스럽다.

그들은 째빠르고 능력 있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무장하며 경제적으로 독자적인 힘과 배경으로 자식을 잃은 한 아버지의 명예를 향해 사실들을 왜곡 보도하며 여론을 부정적으로 이끄는데 앞장 서고 있다. 그의 단식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고 그런 용기는 근원을 찾을 수 없는 힘으로 기적 같은 일이기도 하다. 함부로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자식을 잃고 그 자식의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했던 한 인간으로서 처절한 자존감 찾기인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당당해지고 싶은 우리 모두의 모습 아니겠는가. 자식들에게 부모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다시 건강하게 일어나 함께 할 아버지에게 힘을 보낸다. 세월호참사, 오늘로 134일째이다.

 

                                             [세월호 서명] http://sign.sewolho416.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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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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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maboda | 작성시간 14.08.28 몇년 전에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라는 책을 통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알게 되어 읽었습니다.
    그 책 덕분에 언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것 같아요!
    한 번 더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작성자leastory | 작성시간 14.08.31 우리 언론만 나쁜게 아니라 독일도 저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아니 한쪽으론 위안이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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