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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후기 방

독일의 문학과 교육 강연을 듣고

작성자유세아|작성시간14.08.03|조회수76 목록 댓글 5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글재주가 짧아 좋은 강의를 듣고도 이렇게밖에 못 써서 죄송합니다 ㅠㅜㅠㅜ


 이화여대에서 [독일의 문학과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열린다는 걸 알게 된 건, 학교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 덕분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각 층 복도마다 거대한 게시판이 하나씩 있고 대회나 강연 포스터들이 줄지어 붙어 있는데, 그 사이에 [독일의 문학과 교육]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때마침 시험도 끝나고 시간도 남아돌아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그 전까지는 독일 문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파우스트>는 어렸을 적 각색본으로 읽어본 게 전부였다. 독일 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서, 한국 교육만 아니면 다 좋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간을 좀더 유익하게 사용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버스를 타고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을 찾아 떠났다.

 첫 강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들으러 간 것은 옆 반 친구와 함께였다. 우리 학교가 이대와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도착했던 시간은 8:00 경이었다. 우리는 강의실 맨 끝에 딸려 있는 작은 방의 소파에 앉아서 강연을 들어야 했다. 소파에 앉은 채로는 강의실의 스크린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안경을 끼고 중요한 부분마다 일어서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워낙 뒷자리인지라 교수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상당히 집중해야 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교수님은 막 이런 말씀을 하고 계셨다: 행복은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는가. 로테를 만나고 1년여의 짧은 시간만 살 것인가, 아니면 만나지 않고 오래 살 것인가. 교수님은 나폴레옹과 괴테의 일화에서 대해서도 소개해주셨는데, 나폴레옹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물었고 괴테가 어떻게 대답했는지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해 온갖 논문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폴레옹의 질문이 베르터가 관자놀이에 총을 대는 게 부자연스럽다는 내용이라는 논문을 말씀하실 때는 우습지만 나도 모르게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이마에 겨누어보았다. 교수님께서는 농담조로 학자들이란 사람이 참 할일 없죠?”라고 말씀하셨다. 그 부분에서는 나도 실소를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학자들이 내 생각만큼 딱딱한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어 교수님께서는 <베르터>가 괴테의 실화에 바탕을 두었음을 알려주셨다. 이 부분은 과거 어린이용 각색본을 읽었을 때 알게 되었던 터라 옛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반면, 교수님께서 그 다음에 설명하셨던 내용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고 읽어보지도 못했던 내용이라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바로 베르터라는 캐릭터가 사회 제도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자연적이며 당시로서는 개혁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베르터라는 캐릭터가 그저 지나치게 감수성이 풍부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해왔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 경험상 중 주변 환경이나 사회 제도를 맹렬히 비난하는 사람들치고 사실은 거기에 깊이 빠져 있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맨 처음 <베르터>를 읽었을 때 그가 불평분자, 위선자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새로운 관점에서 베르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베르터란 캐릭터는 위선자나 불평덩어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가장 감정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상징하는 자연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나니 베르터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었고, 조금은 베르터를 응원하게 되었다.

 두 번째 강의는 조금 더 먼 곳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 전날 학교가 방학을 한지라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집은 이대에서부터 학교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강의실로 향했으나 이번에도 앞자리는 다 차 있었고, 어김없이 끝자리행이었다. 다만 혼자 온 덕에 테이블 위에 앉아서 강의를 듣는 조신하지 못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더 편하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파우스트> 하면 생각나는 것은 어렵다라는 이미지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지인분과 대화하다 잠깐 <베르터> <파우스트>에 대한 주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 지인 분께서는 <파우스트>는 대작이라 칭송 받지만 지나치게 난해하다면서, 오히려 <베르터>를 선호하신다고 하셨다. 그건 내 친구도 다르지 않아서, 두 번째 강의를 들으러 가기 전 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는 강의 내용이 <파우스트>라는 것을 알고 곧바로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보다는 PC방에서 나오기 싫었던 것 같지만.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내가 세 번째 강의를 같이 들으러 가자고 할 때도 거절해 좋은 기회를 놓쳤다.) <파우스트>에 대해서는 나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파우스트>에 대한 가장 마지막 기억은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란 책에서의 <파우스트>에 대한 해설이 전부였다. 그 책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그레트헨은, 쇠렌 키르케고르의 철학에 의하면, 무한한 자기체념을 통해 종교적 구원을 이루어냈다라는 것이었다. 딱 그만큼이 내가 알고 있는 <파우스트>의 전부였다.

 이번 강의에서 교수님께서는 괴테와 함께 고전주의의 양대 거장으로 꼽히는 쉴러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쉴러는 이성의 영역인 형식 충동과 감정의 영역인 감각 충동 양쪽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그 둘의 조화를 이루는 사람을 미적 인간으로 꼽았다. 나 혼자 책을 읽었으면 절대 몰랐을 지식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형식 충동과 감각 충동 중 어느 쪽에 더 강하게 영향받는 사람인가 혼자서 고민해보았다.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제도나 규범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정하며 절제보다는 그때그때 감정에 강하게 집착하는 사람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형식 충동이 필요할 때는 감각 충동에 의지하고, 감각 충동이 필요할 때는 형식 충동에 의지하는 완전히 뒤집힌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 나는 미적 인간의 정반대되는 인간인가, 하고 혼자 속으로 웃었다. 교수님께서 책 내용을 설명해주신 강의 내용 중에서는 그레트헨이 구원 받는 부분의 대사가 가장 멋지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메피스토가 심판받았다라고 외치자 하늘에서 구원받았다라는 음성이 들려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비되면서도 짧은 두 문장이 일으킨 멋 이외에도 당시 그레트헨의 상황 때문에 그 대사들이 특별히 멋져 보였던 것 같다. 사람은 그레트헨이 마르가레테였던 시절처럼 누구나 순진했던 어린 시절, 착했다고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있다. 그러나 자라고 사회인으로서 살게 되면서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어느 순간인가 불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이정도 쯤이야”, “어쩔 수 없잖아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되면 스스로의 마르가레테 시절을 떠올리고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힘들 때는 나약함에 휘둘리면서 차라리 메피스토의 말대로 심판받았으면좋겠다 또는 심판받을 것이다라는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구원받았으면 하는 게 인간의 심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갖거나 기부를 하거나 혹은 내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그레트헨과 내 처지에 유사함을 느끼고 그녀의 상황에 공감했으며, 그녀처럼 구원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마지막의 구원받았다라는 말이 그렇게 간절해 보이고 멋있어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보다 전에 교수님께서는 진리는 구속이라는 말도 하셨다. 성경에 진리를 얻을 때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을 언급하시며 진리는 구속이며, 그를 통해 자유를 얻는다고 하셨다. 학교 철학 수업 시간에 비슷한 주장을 한 철학자를 배운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때도 지금도 그의 주장 완전한 자유는 무질서이며 혼란이다 에 공감하면서도 진리는 구속이라는 대에 반발감을 가졌다. 그 주장이 마치 인간에게 사육당하는 가축들이 하는 정신승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진리라는 구속이 없는 세상은 훨씬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세상이 훨씬 사랑스럽게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현재도 그렇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철학카페>에서도 그랬지만 교수님도 파우스트가 구원받을 만한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다만 메피스토의 유혹에서 살짝씩 벗어나서 그 틈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속으로 파우스트가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인물이기에 망정이지, 실제로 그렇게 구원받았다면 상당히 억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단면적인 구원이 아니긴 했지만, 착하게 살려는 수많은 사람들도 구원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단지 악마의 유혹에서 어긋난 것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조금 많이 불공평하게 보이긴 할 것 같다. 사족을 하나만 덧붙이자면,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메피스토가 그다지 세보이지 않았다. 못 하는 게 너무 많아서…….

 마지막 강의는 내게 다소 충격을 안겨주었다. 강의에 앞서서 독일 문화원장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진짜로 뭐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었다. 강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마주보고 앉아서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내 또래 질문자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데 또 독일어다. 진짜 무슨 말인지 모르겠었다. 그냥 저분들은 저렇게 외국어를 열심히 하시는데 내 제 2 외국어 성적은 바닥이지. 나 뭐하면서 살았지?’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아주 많이.

 특별히 독일의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교육이란 분야에 대해서는 강연 전부터 관심이 많았었다. 동기는 단순하게 그냥 한국 교육이 싫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한국 교육에 반감을 갖고 선진국 교육을 동경하다 보니 최근에는 선진국 교육의 명성도 환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러나 강연을 듣고 보니 독일의 교육은 (물론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니 글로벌주의가 망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한국보다 덜 치열하고, 문화원장님 말씀대로 독일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보다 조금은 더 행복할 것 같았다. 우선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말하기 위주의 수업이 부러웠다. 어렸을 때 책이나 신문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을 하려고 하면 친구들은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싫어하고 더 나아가 토론을 별로 안 좋아했다.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 때까지 선생님들은 내가 발표와 질문을 많이 한다고 좋아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난감해하셨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니 만약, 정말 만약이지만 내가 독일식 교육을 받았더라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민족 입장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사회를 조명하는 수업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말을 하면 매국노로 몰아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한민족을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한쪽에서는 앞으로는 글로벌 시대, 다 같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지구 공동체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집착한다. 이런 민족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을 키운다면 학생들이 보다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교사에게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한국 교육이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느꼈다. 한국도 공문 처리 업무를 교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교사가 한층 더 홀가분하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교장선생님도 수업을 하신다는 사실도 나에게는 상당히 놀라웠다. 이 또한 탈권위주의를 위해 한국 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배워와야 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강의를 듣는 내내 독일 교육이 이렇게 한국 교육보다 덜 치열할 수 있는 이유는 독일에 직업별로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꼬리표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택시를 타서 나도 택시기사나 할까라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나 변호사거든?”했다는 일화처럼 학생들이 진출하게 되는 사회에서 직업 사이 격차가 작기 때문에 독일 교육이 지향하고자 했던 것들을 지향하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마저도 글로벌주의 때문에 이런 면들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약간이지만 씁쓸했다.

 강연의 내용은 내가 짤막짤막하게 필기해놓은 것들을 기억나는 순서대로 정리해놓은 것이다. 또한 나의 문학적 소양 부족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많이 써 놓았기 때문에 두서 없고 틀린 부분도 많을 것이다. 나는 이 강연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그것을 달달 외워서 이 후기에 적지 않았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이 강연에서 내게 특히 뜻깊었던 것은, 내게 생각할 작은 실마리를 던져주었다는 것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들께서 잠깐씩 던지셨던 주제들이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딱딱해 보였던 작품, 특히 <파우스트> 같은 책들도 강의를 들으니 보다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라도 시간이 나면 꼭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기회였던 만큼 앞으로 비슷한 강연이 있으면 꼭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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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freebird | 작성시간 14.08.04 훌륭한 글을 쓰고, 올리고 죄송하다고 하면...우리 같은 어른은 어쩌라공~~ ㅎㅎ
    글 잘 읽었어요 ^^ 제가 고딩때는 이런 문학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답니다 ㅠㅠ
    강의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금새 내용을 잊어버린듯. 다시 이 글을 보고 기억하려고 애쓰는중이요.
    더 늦기전에 파우스트를 읽는게 답인데요..아직 책만 쳐다보고 있어요^^
  • 작성자열차11 | 작성시간 14.08.04 편안하고 진솔한 글쓰기, 기분 좋게 읽었습니다. 열심히 들어주어 고맙고, 듣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것 훌룽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면 타인에게 감동 주는 명문이 되지요. 전동열
  • 작성자태은 | 작성시간 14.08.06 와우 교수님께서 직접 칭찬글도 달아 주시고^^ 학생 때문에 또 많은걸 배우고 느끼게 되었네요~~~ 즐감했습니다
  • 작성자leastory | 작성시간 14.08.13 세아 학생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을 아주 잘 쓰는군요. 독일어를 잘 하는 학생은 아마도 그 나라에 오래 살았을거에요. 그래서 너무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고.... 독후감에 대한 선물 줄 수 있도록 주소를 내게 쪽지로 보내주세요. 혹시 8월 23일 시간이 된다면 캠프에 와서 어린이 과학캠프 자원봉사도 하고 선물도 받아가면 어떨까요?
  • 작성자leastory | 작성시간 14.09.03 알려줘서 고마워요. 개인정보니 주소는 삭제해주세요. 선물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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