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토론회에서 있었던 격론, 그리고 아름다운 합의

작성자leastory|작성시간18.11.02|조회수227 목록 댓글 0

<내부 토론회에서 있었던 격론, 그리고 아름다운 합의>

기존에 진보적 교육운동을 해온 분들조차, 아니 그런 분일수록 국민통합입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과의 대화를 통해 오히려 국민에게 어떤 점을 설득해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되었고 대화와 논쟁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김진우 선생님도 유사한 질문을 하셨고, 또 여러분들이 지인을 설득할 때 맞닥뜨리게 될 일이라 우리의 대화내용을 기억이 나는대로 재구성해보겠습니다. 어떻게 서로 합일점을 찾아갔는지. 토론회 후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더 알아갔고 결국엔 대중토론회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는 대중토론회 전에 관련단체 회원대상으로 내부토론회를 한 번 더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지난 번 토론회가 저에겐 너무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문제를 좀 더 점검하기 위해서였지요.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인데 성적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제 발제가 끝나자마자 한 선생님이 발언하셨습니다.

A 선생님: 공론화위에서 제시한 진보교육단체의 대안은 많은 분들이 오랜 숙의를 거쳤고 검증된 대안이다. 그러나 국민통합입시는 그런 검증을 거치지 않아 믿을 수 없다.

나: 그 대안이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검증받았을지 몰라도 안타깝게 공론화위에서는 채택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국민통합입시가 그 중 하나이니 지금부터 내부 토론회와 대중 토론회를 통해 검증해보자는 것이다.

A 선생님: 대학이 학문하는 곳인데 성적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어떻게 성적 이외의 것을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가?

나: 우리나 미국대학은 고교졸업생의 70-80가 진학하므로 민주시민 리더를 양성하는 곳이다. 대학은 generalist를 키우는 곳이며, 전문가는 석사과정에서 학문은 박사과정에서 한다. 고교 성적은 그 동안 받았던 교육의 기회를 너무 크게 반영한다. 좋은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는 부모의 재력이나 태어난 곳, 그 동안의 교육수혜와 무관하게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A 선생님: 그래도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려면 성적이 여전히 중요하지 않나?

나: 그러면 서울대에 불합격한 학생은 서울대에서 수업 들을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 미국 대학은 다양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성적격차가 엄청 나 대학 1,2학년 때에는 수업 수준이 10단계, 적어도 4단계로 가르친다. 우리도 KAIST에서 일반고 출신은 1,2학년 성적은 영재고, 과학고 다음으로 낮지만 3학년이 되면 일반고, 과학고, 영재고 순으로 성적이 좋은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점수를 등급으로 전환하면 공정성 시비 벗어나지 못해>

A 선생님: 그래서 수능 절대평가 등급제를 도입하면 변별력도 있으면서 학생들의 문제풀이 경쟁을 막아 초중고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

나: 수능은 5지선다라 똑 떨어지는 상대평가 점수가 나오는데 이걸 임의적으로 등급제로 전환시키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막을 수 없다. 한과목은 98점으로 1등급 다른 과목은 89점으로 2등급을 받은 학생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학생은 평균 93.5로 1.5등급을 받지만, 두 과목 모두를 90점으로 1등급을 받은 다른 학생은 평균은 90점으로 더 낮지만 등급은 1등급을 받게 되서 앞의 학생보다 유리해진다. 운으로 순위가 뒤바뀌는 결과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절대평가 등급제가 필요한 곳은 내신이다. 나도 늘 성적을 내면서 느끼지만 논문을 주관적 평가할 때 A와 A- 정도는 구분을 해도 95점과 94점으로 구분하는 건 어렵다. 내신은 객관식 시험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주관식 에세이 등 다양하게 포함할 수 있다. 왜 교사가 평가권을 포기하고 상대평가로 줄세우기를 해 학우을 잠재적 적으로 만드는가? 이건 교사에 대한 평가권 침해라 다른 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내신 절대평가 등급제는 포기해선 안되는 교사의 평가권>

A 선생님: 우리도 참여정부 때 한 동안 내신 절대평가를 도입한 적 있다. 그랬더니 특목고에서는 모든 학생이 1등급을 받아 내신이 무의미했다. 그래서 상대평가를 다시 도입하게 된 것이다.

나: 우리학교도 요즘 그렇게 하는데 미국고교는 전체 학생의 성적 분포도를 대학에 보내게 되어있다. 절대평가란 마음대로 성적을 주는게 아니라 수강학생이 100명 이상이면 정상분포가 나온다. 정상분포 내에서 동점을 받은 두 학생을 인위적으로 순위를 가르지 않고 같은 등급을 줄 수는 있어도 성적 부풀리기는 못한다. 그런 학교 학생 모두가 대학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성적에도 상식이 통해야 한다.

A 선생님: 국민통합입시도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수능절대평가 등급제도 성적경쟁을 완화시킬 수 있는데 왜 또 새로운 제도로 혼란을 가중시키는가?


수능절대평가 등급제는 교육정상화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었을 뿐인데 활동가에게는 하나의 목표가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서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토론이 헛돌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한교수님이 개입해 깔끔히 정리했습니다.


B교수님: 그 제도는 이미 공론화위에서 지지받지 못했고 결론이 난 사안이다. 싱가폴대학에서 교수해본 내 경험에 비춰보면 거기도 엄청 다양한 학생을 선발해 교육하지만 정말 우수하다. 국민통합입시는 이미 각국에서 효과가 검증되었으므로 명분도 있고 우리 문제를 푸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으므로 심각하게 검토해볼만 하다.


<지역균형입시는 치열하지 않으면서도 공정한 성적 경쟁 가능>

나: 우리나라는 지역별 교육기회 불평등이 가장 심각하므로 불리한 지역의 학생에게도 수도권 학생 못지 않은 기회를 줘야 한다. 전국 체전에 각 종목별로 1위부터 10위까지 출전 시키지 않고 각 도별 선수를 뽑는 이유가 뭔가? 지금 지방분권과 자치를 명시한 헌법을 만들자는 국민여론이 조성되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는 당연히 각 지역의 학생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그 다음에 성적으로 변별해야 한다.

학종은 문제가 많으니 교과위주의 내신을 입시의 근간으로 삼으면 지역균형입시가 저절로 된다. 내신이 동점인 경우만 수능으로 변별하고 그래도 안되는 대학만 비교과를 보도록 하면 비교과 경쟁은 같은 부류의 사람끼리만 하게 되어 있다. 국립대 네트워크까지 시행되면 대다수 학생은 수능이나 비교과와 무관하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특목고 자사고 폐지도 불필요하다. 내신에 불리해서 학생들이 그런 고교에 진학하지 않을 것이다. 불리해도 외국대 진학을 원하거나 좋은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은 가도록 두면 되고 상당수 특목고 자사고는 스스로 폐교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수능은 점수가 나오기 때문에 대학에서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하지만 점수를 마사지하지 말고 표준점수 그대로 대학에 보내는 게 맞다. 그래야 지역 내에서 공정한 경쟁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자세한 내용은 제 책을 참조해주시고 이런 세세한 내용이야말로 공론화위에서 결정하면 된다. 외국에서 성공한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는 시행착오를 겪고 그 나라에서 이미 제도화를 이뤘기 때문에 우리가 불필요한 실험 비용을 치를 필요가 없다. 우리의 현재 입시는 이미 1995년도에 미국입시제도를 수입한 것이다. 그런데 핵심정신은 빼고 이상하게 들여와 지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지금 틀에서 백 날 바꿔봐야 소용없다. 원점으로 돌아가 기초를 다져야 문제가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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