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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역사일지

제183회 정기답사 (경주 독락당, 옥산서원 등) 7/27~28, 14명

작성자이사(강지영)|작성시간19.08.02|조회수178 목록 댓글 0



*** 제183회 정기답사  (경주 독락당, 옥산서원, 임고서원) ***


ㅇ 날짜 : 7월27~28일 (토~일)

ㅇ 장소 : 경주, 영천 일대, (독락당, 옥산서원, 임고서원 등등)

ㅇ 15인승 현대 솔라티


ㅇ 참석 : 14명

-  광화문(0730) : 방장님, 양미홍님, 임동호님, 정영림님, 김신묵
- 강남역(0750) : 전은영님, 오희숙님, 김현각님, 권대호님, 김은숙님, 안병애님
- 신갈(0815) : 윤화숙님, 강수도님, 한진택님



ㅇ 진행과 내용 : 임동호님 후기



2019.7.27~28 (183회 정기답사)
경주 옥산서원 + 경북지역 답사
장산서원, 정혜사지 13층 석탑, 옥산서원,
정몽주 유허비, 임고서원,함계정사,강호정,
옥간정

개인일정상 옥산서원에 대한 후기만 올립니다.

▣ 옥산서원
강수도님의 옥산서원의 편액(扁額) [額贊 포함] 을 정리하신것을 최대한 인용하였음.

이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선생을 제향하고 후진 교육을 위해 조선 14대 선조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설립하였으며, 그 이듬해 사액서원이 되었다.

하마비

1. 外三門
亦樂門(蘇齋 盧守愼 讚, 石峯 韓濩 書)
역락문의 이름은 중종때 영의정을 지낸 蘇齋 盧守愼(1515-1590)이 명명하고, 현판 글씨는 石峯 韓濩(1543-1605)가 썼다.
역락문은 『論語』「學而」편에 나오는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而自遠方來不亦樂乎)”라는 글에서 취한 것이다. 학문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 聞風則回 望道而來 不亦樂哉 邦之英才[盧守愼 書]
[편액 왼쪽애 작은 글씨로 써있는 내용으로 액찬額贊 또는 관식(款識)이라고도 함?]
* 읽기 : 문풍칙회 망도이래 불역락재 방지영재
* 의미 : 풍문을 듣고 돌아오며, 道를 바라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나라의 英才들이여!.“
(먼 곳에서 옥산서원의 명성을 듣고 돌아오며, 道를 바라고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않으랴, 나라의 영재들이여! 하고 기뻐서 감탄하는 내용임)

2. 門樓
2.1 無邊樓(盧守愼, 韓濩)
이 현판은 누마루 서쪽 벽 가운데 칸 윗부분에 걸려 있다. 韓濩의 글씨이다. 무변루의 본래 명칭은 ‘納淸樓’ 였는데, 노수신이 이언적의 유적으로서는 마땅치 않은 이름이라 하여 바꾸었다. ‘무변’이란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의 ‘風月無邊’에서 유래한 것으로, 말 그대로 서원 밖 계곡과 산이 한눈에 들어오게 하여 그 경계를 없애는 곳을 의미한다.
- 액찬 : 靡欠靡餘 罔終罔初 光歟霽歟 游于太虛
* 읽기 : 미흠미여 망종망초 광여제여 유우태허
* 의미 : 모자람도 남음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다. 빛이여! 맑음이여! 태허에 노닐도다

2.2 玉山書院記(草堂 許曄 書)
무변루 누마루 서쪽 벽 왼쪽(남쪽)칸 윗부분에 걸려 있다. 이 기문은 草堂 許曄(허엽, 허균의 아버지)이 1573년에 이언적의 문인인 龜峰(구봉) 權德麟(권덕린)의 부탁을 받고 지었다.
그 내용은 이언적 사후 경주유림들이 공의로 경주부윤과 경상감사에게 서원의 건립을 요청하게 된 本末을 적고 있다. 또한 서원건립을 계기로 경주가 鄒魯之鄕이 되어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기를 바라는 소망도 담겨 있다.

3. 講堂
3.1求仁堂(盧守愼, 韓濩)
옥산서원의 강당인 구인당의 현판으로, 강당 대청 뒷벽의 가운데 윗부분에 걸려 있다. 이 편액은 석봉 한호의 글씨이다.
구인당의 ‘求仁’은 이언적이 쓴 『求仁錄』에서 따온 것으로 성현의 학문이 오로지 仁을 求하는데 있다는 이언적의 성리학의 핵심사상을 의미한다.
- 액찬 : 心德何損 放而曰遠 一念知反 卽此是本
* 읽기 : 심덕하손 방이왈원 일념지반즉 차시본
* 의미 : 마음의 덕이 어찌 줄어들겠는가? 놓아두고서 왈, 멀다 한다. 한 번 생각하여 돌이킬 줄 알면 곧 이것이 바로 근본이다.

3.2 兩進齋(盧守愼, 韓濩)
구인당 내 남쪽방(동방)의 출입문 위에 걸려 있다. 양진재의 ‘兩進’은 ‘明(도덕을 밝힌다)’과 ‘誠(의지를 성실하게 한다)’을 갖추어 전진함을 말하는 것이다. 『중용에 ‘명은 선을 밝게 앎이요, 성은 진실하고 망령됨이 없음이니, 천리의 본연이다(誠者眞實無妄之謂 天理之本然也)’라는 뜻이다. 이는 가르치는 이가 明善을 거쳐 誠實함을 이루어야 함을 말한다.
- 액찬 : 擇善惟明 反身惟誠 孰重孰輕 聖賢同行
* 읽기 : 택선유명 반신유성 숙중숙경 성현동행
* 의미 : 선을 택함은 밝아야 하고 자신을 반성함은 성실하게 하여야 하니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가벼운가? 성인과 현인이 함께 한다.

3.3 偕立齋(盧守愼, 韓濩)
‘偕立’(해립)은 ‘敬義偕立’, 즉 ‘경건한 마음가짐과 신의로써 사물에 대처한다’는 뜻에서 취한 것이다. 敬義와 明誠은 성리학의 으뜸이 되는 뜻이다.
程子는 『주역』<전>에서 “군자는 경을 주장해 안을 곧게 하고, 의를 지켜 밖을 방정하게 해서, 경과 의를 확립하면 덕이 성해진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고 하였다.
- 액찬 : 敬直義方 內外交相 惟操弗忘 天德之光
* 읽기 : 경직의방 내외교상 유조불망 천덕지광
* 읽기 : 경은 바르고 의는 방정하니 안과 밖이 서로 교섭한다. 오직 이것을 붙잡아서 잊지 않으면 천덕이 빛나리라

3.4 玉山書院(秋史 金正喜 書)
강당 건물 앞면에 있는 ‘玉山書院’ 편액은 구인당 화재 이후 1839년(헌종 5)에 다시 받은 편액이다. 秋史 金正喜(1786-1856)가 쓴 글이다. 현판의 좌측에 “萬曆甲戌 賜額後二百六十六年 己亥失火改書 宣賜(명나라 연호 갑술년 선조 7년(1574년) 사액 후 266년이 되는 기해년 헌종 5년(1839년)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고쳐 써서 베풀어줌)”라 적혀 있다.


3.5 玉山書院(鵝溪 李山海 書)
강당 대청 앞면의 ‘玉山書院’ 편액은 1574년(선조 7) 사액 당시의 鵝溪 李山海(1539-1609)의 글씨를 모각한 것이다. 흔히 ‘舊額’이라 한다. 현판의 좌측면에 ‘舊額摹揭(옛날 편액 글씨를 베껴 써 만들어 걸었다는)’라 적혀 있다.

4. 사당
體仁廟(盧守愼, 韓濩)
구인당 뒤에는 內三門인 體仁門이 있고, 그 뒤 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사당인 體仁廟와 典祀廳이 있다.
‘體仁’은 어질고 착한 일을 실천에 옮긴다는 말로 성리학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이언적의 일생은 자기 완성인 成己를 바탕으로 백성의 완성인 成物을 이루는데 있었다. 성물의 근본이 되는 성기는 仁을 體得함으로써 얻는 것이기에 이언적을 모신 묘우의 이름을 體仁이라 하였다.
- 액찬 : 生物之春 在我爲仁 體之以身 何不長人
* 읽기 : 생물지춘 재아이인 체지이신 하불장인
* 의미 : 만물을 낳는 봄이 나에게 있어서는 仁이니 몸으로써 체득한다면 어찌 남을 자라게 하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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