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술잔에 채워진 눈물
아버지는 손수레에 연탄을 가득 싣고 가파른 언덕길도 쉬지 않고 오른다.
나를 키워 힘센 사람 만들고 싶은 아버지.
"아버지가 끌고 가는 높다란 산 위에 아침 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이렇게 연탄 배달해서 시인을 키워냈던 아버지.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 상(像)이 아닌가 싶다.
경기가 안 좋아질수록 아버지의 등에 얹힌 삶의 무게는 무겁다.
연탄 배달을 해서 자식을 키운 아버지도 계시고 운전을 해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도 계시고 매일 쳇 바퀴 돌듯 직장 생활을 하는 아버지도 계신다.
아버지! 언제나 강한 존재일 것만 같던 그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강하지도 않고 더 이상 힘세지도 않고
더 이상 용기 있지도 않은 비굴과 연약함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아버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고 싶다.
그건 바로 가족 때문이겠지.
가족을 위해서는 자식을 위해서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리는
우리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기성세대라고 비웃고 싶어했던
적은 없었을까 속물이라고 마음에서 밀어냈던 적은 없었을까.
어느 시인은 우리들의 아버지를 이렇게 노래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 - 송정림의 마음 풍경 중에서 -
헤아릴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첩첩산중에
상당히 가난한 곳이다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도시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나는 대구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에서 나의 석차는 68/68, 68명 중에 꼴찌를 했다
지독하게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 자신이 없었다
무학의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고자 했는데,
맨 꼴찌라니...!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부모님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 지우개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못다닌 무학이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말했다
. "찬석이가 공부 잘했더나?" 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로 두고 봐야제, 이번에는 우짜다가 1등을 했는가 배..!
"아들 하나는 잘 뒀구먼, 1등을 했으면 잔치를 해야지!"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우리 집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
모아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제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버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서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다
.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찾아 뵈었다.
"어머니, 저 옛날 중학교 1학년 때 1등 한 것은요..
"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손으로 내 입을 가로막았다.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아시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우리 부모님의
그 깊으신 마음을 박사요 교수요 대학 총장인
나는 지금까지도 감히 헤아릴 수가 없으니....
- 前 경북대 총장 박찬석 -
♡ 오늘의 명언 아버지 한 사람이 스승 백 명보다 낫다!
- 에드워드 허버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