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
3학년때부터, 현장체험학습 말고도 2박 3일간 수련회(말로만 수련회지 그냥 팽팽 놀았다.)와 회장단들만 가는 1박 2일 캠프를 쭉 다녀온 나였지만, 초등학교 6년 생활에서 딱 한번밖에 없는 수학여행은 내 반삼십 인생에 큰 기억을 남겼다. 최고참 학년들이 다녀오던, 영원히 안 올 줄만 알았던 그 순간.. 그때 당시 나에게 전자기기 따위라고는 일체 존재하지 않을 때라 여행 중 기다리는 시간에는 지루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학교 특성상, 동학년 친구들과 전부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에, 즐겁게 출발할 수 있었다.
출발하기 바로 전날, 오전 5시까지 학교로 집합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공지가 있었다. 세상에 5시까지라니. 비행기 못 탈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막 들면서 어떻게 하면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연구를 해가며 잠들었다. 다음날 난 4시에 일어나서 여유있게 학교로 갈 수 있었다. 거기서 친구들과 색다른 재회를 하면서 공항으로 가고, 우리 자율적으로 행동이 가능했던 공항에서는 우리끼리 간식도 사먹고, 비행기 기다리는 내내 놀았다. 탑승수속을 모두 마치고 비행기 좌석에 앉아 막 날아오르려는 비행기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기대감은, 나의 가슴을 터질 듯 압박시켰다.
제주도에 도착한 후, 먹기도 많이 먹고, 놀기도 많이 놀고, 돌아다니는것도 많이 돌아다녔다. 버스를 타고 제주도 전체를 누비고 다녔으니까. 점심식사는 외식을 했었는데, 오리 주물럭을 2번째 날 점심식사로 먹었었다. 한껏 배부르게 먹고, 우리 테이블만 밥을 추가해서 볶음밥을 만들었던 일은 지금도 기억이 남는다. 그때 그 볶음밥이 다른 테이블로 전파가 되었었는데, 지금 보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볶음밥 특허를 출원한 마냥 흐뭇했던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간다.
숙소는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잡았다. 호텔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너무 안락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옛날 우리 학교에 근무하시던, 수녀님 겸 선생님을 뵈어 너무 반가웠다. 그분은 지금 현재 이태리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신다. 숙소에서 했던 장기자랑은 우리반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신과 함께 패러디 연극을 잘 끝내 기분이 좋았다. 칭찬 일색이었다.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우리반만 유일하게 단체 연극을 준비했었더라. 시간이 금방 가서, 모두 씻고 자리에 누웠다. 자기보다는 숙소에서 밤을 지새우며 한 진실게임은 못 잊을 것 같다.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관광지 동안 3일 동안 많이 돌아보고 왔다. 에코랜드부터 시작하여 성산일출봉, 4.3 역사 박물관, 그리고 한라산 정상까지. 사실 글에 쓴 이 곳들 말고도 훨씬 더 많았으나, 1년 하고도 8개월 쯤 더 지난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 애써 잠을 청해보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안 갈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제주에서 김포로 올라올 때는 만감이 교차하였다. 선배들은 전부다 홍콩이나 이시국으로 가서 좋은 호텔 잡고 놀았는데 아쉽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마는, 이번 여행이 정말 즐거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김포에서 수원으로,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집으로 향할 때 3일동안 경험했던 즐거운 스토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글을 쓰며 작년까지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추억의 바다에 잠깐 잠겨본다. 어디선가 와서 같이 한솥밥을 먹었던 친구들, 이 여행을 함께 하게 된 내 친구들을 만난건 우연이 아닌 필연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