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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믿음의 인물탐방

최초의 여성 의사, 초고의 여성 의사(김점동‘박 에스더)

작성자김요한목사|작성시간19.05.03|조회수153 목록 댓글 3


최초의 여성 의사, 초고의 여성 의사(김점동‘박 에스더)

1977년 서울 정동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버지 김홍택이 선교사들을 도와주는 일을 한 덕분에 스크렌턴이 창설한 이화학당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어깨 넘어로 배운 영어 실력이 상당한 그녀는 평양에서 로제타를 통역해 주고, 병원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도왔습니다.

특히 로제타가 병원 일로 바빠 아이들을 돌볼 수 없을 때에 김점동은 셔우드 홀과 에디스를 돌봐주었습니다. 그래서 셔우드 홀은 늘 그녀를 ‘이모이모’하며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로제타는 김점동을 유학 보내 의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소년 혼자 가는 것보다는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교회에서 성실하고 착하기로 소문난 박유산이란 총각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유산의 신분이 김점동보다 낮았지만, 김점동은 로제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지체가 높거나 낮거나 개의치 않습니다. 제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선교사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둘은 1893년 5월 24일 정동교회에서 치른 첫 번째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꿈에 그리던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 리버티에서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그해 9월부터 1년 동안 간호학교를 다닙니다.  그리고 1896년 10월 1일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현재는 존스홈킨스의과대학)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00년 5월 15일 조선인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가 탄생합니다. 영어 이름인 에스더와 남편의 박유산 성을 따라 박에스더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편 박유산 은 리버티 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아내의 의과대학 공부를 뒷바라지하다가 1899년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의사가 드디어 조선에 돌아온 박에스더는 평양 기홀병원에서 로제타와 함께 사역을 시작합니다. 박에스더는 로제타를 도와 맹아학교와 간호학교 설립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를 순회하며 무료진료를 했습니다.

그녀의 살신성인의 노력을 고종 황제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은메달을 받기고 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았으면 귀국해서 10년 동안 돌본 환자의 수가 3천여 명이 넘을 정도였습니다. 환자들을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바쁘게 뛰어다니던 그녀는 1910년 4월 13일 남편과 마찬가지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선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그녀는 그 당시 사회에서 여자로서 할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해냈고, 명예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자랑거리가 아닌 하나님의 자랑거리로 생각했습니다. 부와 명예를 좇지 않고 한 사람의 목숨을 더 귀하게 여겼던 그녀는 최초의 여자 의자였을 뿐 아니라 최고의 여자 의사였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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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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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신빛나 목사 | 작성시간 19.05.03 아멘아멘
    할렐루야 주님께영광 ~♡
  • 답댓글 작성자김요한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5.03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안혜자 사모 | 작성시간 19.05.07 할렐루야 ! 아멘. 아멘 !
    주님 안에서.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
    박에스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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