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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믿음의 인물탐방

제임스 홀 선교사’와 로제타 선교사 아들 ‘셔우드 홀’

작성자김요한목사|작성시간19.05.12|조회수233 목록 댓글 0


제임스 홀 선교사’와 로제타 선교사 아들 ‘셔우드 홀’

존 헤론 선교사는 1890년 7월 26일 우리에 온지 5년 만에 하늘나라로 떠나자, 뉴욕의 한 빈민촌에 있는 중국 선교를 꿈꾸고 있는‘제임스 홀 선교사’와 로제타 선교사’ 평양 선교를 활발하게 전개되다가 1894년 7월 서울에서 시작된‘청일 전쟁’은 1894년 9월 15일에 평양에서 대전투하며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그 전쟁 때 외국인들은 평양에서 서울로 피난을 갔지만, ‘제임스 홀 선교사’는 전쟁이 할퀴고 간 참혹한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자 평양에 남지만, 결국 본인도 병마에 쓰러져서 일본군 부상군인을 태운 배편으로 서울에 있는 ‘로제타 선교사’곁으로 돌아왔지만, 그때 첫째 아들 ‘셔우드 홀’이 아장아장 걸을 때, 그리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 그는 한국에 온지 2년 만에 합정동 선교사 묘지, 존헤론 선교사 옆에 묻혔습니다.

그 후 ‘로제타 선교사’는 다시금 조선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3년 후에 다시금 조선으로 돌아와 남편‘제임스 홀 선교사’가 하던 일을 하나하나 마무리해 나갑니다. 그러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풍토병으로 세 살 나이에 딸 ‘에디스’이 죽게 되어 자신의 손으로 쓰라린 고통을 삼키며 남편‘제임스 홀 선교사’옆에 묻어야 했습니다. 그때 남은 아들을 끌어안으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와 셔우드 홀은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사역하도록 사용하여 달라고...” ‘로제타 선교사’는 남편과 딸을 생각하며 열심히 사역하여 평양에 제임스 홀을 기념하는 가홀 병원을 세웠으며, 특별히 여성 환자들을 위하여 ‘광혜여원’‘한국 최초 맹인학교’와 ‘농아학교’를 세웠습니다. 이화여대부속병원, 현재의 인천기독병원과 인천간호전문대학을 창설하였습니다.


미국이 뽑은 200대 여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43년 동안 하나님을 사역을 통해 큰일을 이루시고 84세로 남편‘제임스 홀 선교사’과 딸 ‘에디스’이 묻혀있는 양화진에 함께 안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생전에 김점동여 청년 박유산청년을 결혼 시켜 1896년 10월 1일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현재는 존스홈킨스의과대학)에 입학 1900년 5월 15일 조선인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가 탄생합니다. 


하지만, 여의사 박에스더는 환자들을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바쁘게 뛰어다니던 그녀는 1910년 4월 13일 남편과 마찬가지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남은 자는 ‘제임스 홀 선교사’와 로제타 선교사’아들 ‘셔우드 홀’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지만,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최초 한국의 여의사 박에스더(박유산)는 폐결핵으로 전부 죽음을 보고 결핵을 이 땅에서 퇴치 할 것이라는 굳은 다짐을 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토론토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어 결핵을 집중적으로 연구합니다. 그는 의사가 되어 조선에 왔을 때 조선 땅은 온 나라가 결핵이 퍼져 있을 때 외적을 물리친 거북선을 생각하며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모금을 하며 결핵퇴치 운동을 합니다. 어느 정도 선교의 기틀이 잡힐 때 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서 1940년 일본은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을 강제로 추방합니다.


그러나 ‘셔우드 홀’은 아내와 세 아이를 데리고 조선에서 추방되어...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선교사의 삶을 이어갑니다. 은퇴 후, ‘셔우드 홀’은 아버지의 고향 캐나다에서 조국 한국을 회상하며 한국에 관한 책을 적어가며 여생을 보냅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유학을 갔던 김동열이라는 청년이 이 책을 번역하던 중 은혜를 받아 수소문하여 그가 창설했던 결핵협회와 그의 아버지‘제임스 홀 선교사’이 세운 광성고등학교에 초청을 받아 1984년 91세 나이로 아내와 함께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는 조선의 고무신과 장롱 유품을 걸어놓고 한국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결국 ‘셔우드 홀’은 98세로 하나님을 부름을 받고, 5개월 후 그 아내 메리안 선교사도 하나님께 부름을 받습니다. 그러나 두 분의 유언대로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리고 그의 아들과 여동생이 묻혀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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