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머레이 회심일기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율법아래 살고 있었던 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율법적인 동기, 즉 형벌에 대한 두려움과 보상에 대한 소망을 경험했다. 그는 율법을 알았고 그것이 선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실로 원했던 선을 행하는 데에 실패한 것 뿐만 아니라, 그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정말로 피하려고 시도하였지만 더욱 악한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종을 실천하려고 진정으로 시도하지만 그들은 다만 절망과 실패 그것도 전적인 실패를 발견한다. 매우 어둡고 우울한 시간들의 경험이다. 하나님은 수백만 마일 멀리 계신 것 같고 구출해 달라는 기도는 속박만을 초래할 뿐이다. 어떤 이들은 진실된 순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포기한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혹시 다음번 모임에서 또는 새로운 사역가운데 그들에게 임하기를 언제까지고 고대한다. 만일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들은 어떤 결과가 없을지라도 기도를 한다. 그들은 해결의 열쇠가 기독인의 의무의 부족이라고 왕왕 생각한다. 분투하고 고투하지만 더욱 깊은 실망과 낙담을 경험할 뿐이다. 단지 외형적인 행동만 바뀔 뿐, 여전히 그들이 선택한 이기심의 상태에 전적으로 감금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15년 이상을 로마서 7장의 경험 속에 살았었다. 그 진정한 이유는 불신이었다. 복음에 대한 사실은 알았지만 그 사실들이 다만 나를 정죄했고 나를 더욱 나쁜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은 내가 정말로 거룩하기를 요구하셨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나의 노력들로는 단 한 순간조차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음을 나는 알았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하나님께서 분명 두 가지 교훈을 가르쳐 주셨는데, 하나는 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함에 관해서였다. 율법의 가르침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나의 죄많음(my sinfulness)과 나 자신을 구출할 힘이 절망적이게도 내게 없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해 주었다.
죄짓는 상태와 내가 선택한 이기심의 상태로부터의 구출을 위한 강렬한 열망과 소원이 없었다면, 나는 율법과 육신의 권능에 다시 빠져들어 갔을 것이다. 거룩함의 가르침은, 내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시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헌신하시며 약속하시고 보장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새 마음을 주시고 그 마음을 보존하시며 또한 그의 영을 우리의 새마음 안에 주셔서 진실로 그의 뜻을 행하고 순종하기 위한 의지와 힘을 내게 줄 모든 책임을 떠맡으신다.
율법은 생명을 주거나 어떤 사람도 결코 거룩하게 할 수 없다.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나로 하여금 죄의 책임을 그리고 무력함을 통감하게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나를 받아 주시고 나로 하여금 그의 거룩과 신성의 참여자가 되게 하심을 내게 계시하셨다.
죄인은 반드시 죄의 힘, 그리고 죄를 추방하거나 자신 안에서 선한 어떤 것을 할 힘이 절대적으로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그 자신의 경험에 의해 배울 떄에만, 하나님께서 진실로 제공하시는 축복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죄 속에 있는 사람은 그에게 절실히 필요한 참 생명을 스스로 줄 것이 자신 속에 전혀 없다.
모든 죄인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계속적이고도 영구적인 실패와 실망을 체험할 뿐이다. 그 해결책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직접 수행하신다는 놀라운 확신 속에 있다.
매일 죄짓는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그것을 확보하려는 어떤 희망도 포기한 그것이 하나님의 참되고도 유일한 구원의 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나를 준비시켰다.
이제는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모든 것을 내 안에서 실제로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내가 거듭해서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철저하게 사악한지를 실제로 알지 못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내게 없음을 나는 알았지만 그러나 어쩐 일인지 나는 내가 더 큰 열망과 노력으로써 진력하기만 한다면 나는 실제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있는 어딘가에 하나님께 복종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동안은, 나는 불신앙 가운데 있었다. 나는 복음의 사실들을 실제로 믿었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실제로 나는 믿었다. 내가 전적으로 거룩하며 내 마음과 영혼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원하신다는 것을 심지어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이기적인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나의 이기적인 삶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사실인즉 그러한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이제껏 원치 않았다. 이 극도의 이기심이 범죄라는 것을 말해주는 하나님의 지식과 내 자신의 지성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선택한 반역과 사악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사실상 범죄자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원수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비록 내가 나의 이기심의 노예라 할지라도, 이 상태는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었다! 진실로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 사는 것을 지속하지 말아야 했다. 내 자신의 자아 속에 이 내 반역을 억지로 강요할 무엇이 있지 않았다. 나의 반역과 죄를 범함은 내 자신의 자유의지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나의 자유의지의 행위에 의해, 내 자신의 선택한 죄많은 상태를 실제로 내가 창조하였다.
정말 문제는, 내가 이러한 이기적인 상태를 완강히 물리치고 끊으려고 계속해서 소원하는 것이었다.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 동안은 나는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는 일을 결코 선택하지 않았고 모든 미래의 행위들은 다만 나의 반역을 조장하였다.
그러한 사실에 관한 지식은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사실상 절대적인 죄책과 정죄를 더할 뿐이었다. 내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람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고자 하는 진실된 선택도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돌아보면, 그 문제가 무엇인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참된 해답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안다. 나는 또한 나의 참 자유로 이끌었던 것이 믿음임을 알았다.
이것이 내가 놓쳤던 부분이다. 필요한 믿음을 산출하는 일이 내게 달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과 나의 믿음을 혼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불신은 당신께서 그 일을 이루시리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지 않는데 있었다. 나는 요구되어지는 믿음을 산출하려고 은혜의 수단을 사용코자 나는 노력했다. 하나님을 믿는 대신 나의 노력으로써 그의 약속을 받고자 노력했다. 나는 실로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 두신 그의 소원을 이루시도록 나 자신을 그에게 드린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죄다! 나 자신만의 모든 자기노력이 죄였다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성취할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하나님을 나는 진실로 쉽사리 믿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인간적인 노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믿음을 내게 주실 하나님을 나는 믿었다.
내게 구원의 진정한 필요성에 대한 분명한 통찰력이 있기 전에 율법아래에서 자신이 죄에 완전히 속박되어 있음을 나는 경험해야 했다.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려고 노력했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살고자 더욱 진지하게 노력해 보았으나 나는 계속 거듭해서 실패했다. 그 실패의 이유는 제거해야할 악의 은밀한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행하시고 그가 그 일을 행하시도록 거리낌없이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겸손한 신앙(that humble faith)을 방해만 하는 인간적 노력의 영(the spirit of self effort)이 그 뿌리이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3)그것이 오직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나를 자유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법에 의한 것임을 나는 안다. 하나님은 내가 소유할 수 있었던 모든 가능한 필요를 하나님 스스로 공급하신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불신의 사람이었다.
할렐루야 ~! 주님께 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