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제 주 예수님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당신은 믿음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냥 주 예수님을 인정하고 교회 다니면서 성경만 잘 읽으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이것이 믿음이라면 구원 못 받을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주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에 끝난다면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면서 주 예수님 인정 안 하는 분들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주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은 마귀도 합니다. 마귀도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왔다는 걸 더 잘 압니다. 또한, 이방인 중에서도 주 예수님을 인정하는 분들이 의외로 있습니다. 그럼 이런 이방인들도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접이란 의미를 내가 관념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영접이라고 압니다. 그런 것은 영접이 아닙니다. 영접이라 하면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내가 십자가에 완전히 죽고 성령님으로 인하여 다시 사는 것을 영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걸 곧 믿음이라고 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셨으니 성령님의 역사로 인하여 당연히 주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법적인 것에 대하여 관심 보이며 판검사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는 것과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실제 판검사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과 같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교회에서 주 예수님을 관념적으로 인정한 것을 가지고 주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가르치는 선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정녕 성령으로 거듭난 선생들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막연하게 가르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주 예수님을 믿기 참 너무나도 쉽습니다.
이런 식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니 구원받기도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천국을 볼 자가 너무 적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7장 14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우리가 생각하는 바램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면 주님의 주장과 우리의 주장 중에 분명 한 쪽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무오하신 주님께서 틀리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고, 우리가 틀린 것입니다. 잘못된 교리에 세뇌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탄마귀는 믿음이라는 것을 너무 편리하고 쉽도록 세뇌시켰습니다. 구원되는 것을 아주 쉽게 만들어서 교회만 다니면 다 구원을 확신합니다. 확신 안 하면 믿음이 없는 자라며 정죄 받을 정도로 세뇌시켰습니다. 뜬구름 잡듯 밑도 끝도 없이 그냥 확신만 합니다.
큰일입니다. 다 지옥가게 생겼습니다. 이런 허탄한 의지를 믿음의 경지로 안다면 발에 흔히 채는 돌들도 구원받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이것은 믿음이 전혀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성령님께서 내게 오셨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올바른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신 것이 진정한 영접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관념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절대 영접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관념일 뿐입니다.
내가 나를 보아 진정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상한 심령이 되어 애통한 마음으로, 내 죄가 주님께 용서함 받기를 원하며 주님을 만나고 싶다고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그게 진심(평소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하는지)인지 그 마음의 동기와 중심을 보시고 그게 진실일 때 주님의 능력으로 강력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성령님으로 나에게 오시는 것이 성령으로 거듭남입니다. 이것이 진정 주님을 영접한 역사적인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경은 언제나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열매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는 열매는 그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구나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진짜 주님을 영접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삶에서 배어 나오는 열매로 반드시 확인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계시므로 당연하게 그런 삶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계시는데 세상 모습으로 살겠습니까?
단지, 갓 거듭난 경우 아직 젖먹이기에 세상 모습이 계속적이 아닌, 가끔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광야로 내몰아 연단과정을 통해 매우 성숙한 그리스도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다듬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안에 주님의 영이 계신다면 그의 전체적인 삶은 근본적으로 주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억울하게 채찍을 맞으며, 뺨을 맞으며,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그 가해자들을 원망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이르시되 누가복음 23장 34절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스데반은 주님께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라고까지 합니다. 사도행전 7장 59~60절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평소 인간의 모습으로 주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힘듭니다. 아니, 오히려 정신이 나가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고까지 합니다. 저는 처음에 손양원 목사님이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으며 조건 없이 용서하고 그를 양자로 삼았을 때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손양원 목사님이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도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도저히 용서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리스도의 영과 함께하는 분이라면 분명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마태복음 19장 26절 “주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그분의 그런 삶을 이해하고도 남았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아무 변명도 저항도 없이 그들의 죄를 사해주길 바라셨듯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았던 스데반 집사님이 그러하셨듯이 손양원 목사님도 똑같이 그리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개인 인성으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 목사님 안에 계신 주님께서 그런 삶을 살도록 인도하신 겁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어떤 모습의 열매로 나오는지 손양원 목사님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저는 아직 그 정도의 분량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가기를 소망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분들은 거듭나길 간절히 소망하시며, 거듭난 분들은 아직 많이 부족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으로 성장시켜달라고 더더욱 주님께 매달리시길 권면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열매를 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열매가 없으면 찍어(지옥에 보냄)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장 9절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교리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열매는 상급에 불과하다는 악한 이론이 위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무참히 깨집니다. 거듭나면 열매를 당연할 정도로 맺게 되는데 어찌 열매가 상급에 불과합니까?
열매가 없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다는 의미이고, 거듭나지 못하면 당연히 열매가 없는데 어찌 구원받겠습니까? 열매가 없다면 턱걸이 구원이 아니라, 지옥에 버려질 걱정부터 해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살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기에 당연할 정도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듯 내 이웃을 사랑하는데 어찌 불쌍한 이웃을 그냥 지켜만 보겠으며,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는데 어찌 내 이웃을 향해 용서의 열매가 없겠으며, 주 예수님께서 온유한 모습을 보이셨는데 어찌 온유한 열매가 없겠으며, 주 예수님께서 늘 자비를 베푸셨는데 어찌 자비의 열매가 없겠으며, 또한, 어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이는 내가 억지로 열매 맺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내가 그분의 이끄심에 순종만 하면, 육신의 악한 속성은 서서히 사라지고 성령님의 열매가 열릴 수밖에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5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위의 말씀에서 보면 성령님의 열매를 금지할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성령님으로 거듭나면 당연히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모습이 열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참된 믿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도 거듭남도 없이 관념적 이론으로, 교리로, 지식으로, 입술로 아무리 믿음을 외치고, 아무리 거룩과 경건을 외치고 가르친들 아무 소용없습니다. 믿노라 하면서 거룩하고 경건한 모양을 흉내는 내지만 실제 삶에서는 이론으로만 그치고 열매가 없습니다.
이런 선생이 내 앞에 있다면 바로 돌아서십시오. 디모데후서 3장 5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것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머리만 뜨거운 허상의 믿음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머리가 아닌 마음이 뜨거워야 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예수님의 모습으로 사는 삶. 내 안에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매 맺으며 사시는 삶. 내가 진정으로 회개하여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나의 육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주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사시는 삶.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삶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위 말씀을 이론으로 혹은 지식으로만 숙지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의 삶이 없다면 나는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여전히 내가 나을 장악하고 내가 사는 것입니다. 위 말씀은 이론이 아닙니다. 내가 완전히 그리스도로 장악되어 그 증거가 삶으로 쏟아져 나와야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