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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나의 옛 사람

작성자김요한목사|작성시간19.08.15|조회수615 목록 댓글 0


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나의 옛사람

로마서 6장 3-4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날 세례를 설명할 때, 두가지의 오류를 범한다.『여러분은 죄를 다 씻었습니다』라고 말하거나『여러분은 이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두가지의 오류는 세례의 의미가 아니라, 세례의 결과다. 세례를 받음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의 의미를 생략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례는 로마서 3장에서 예수와 합하여 죽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로마서 6-7절에서 그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여기에서 세례는 6절에서 설명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7절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세례는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나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못박힌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시는 자가 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말하는 율법아래 매인바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이 오기 전의 옛사람들이다. 


율법을 통해서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그의 죽으심과 연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성경을 읽으면서 『내가 죄 아래 갇혀있는 자로구나』라고 깨닫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갇혀있음을 깨닫고 십자가로 나아가 그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으면, 아무리『예수님을 영접하고, 내가 믿겠습니다』라고 외쳐도 하나님은『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하신다.

모든 사람이 사탄에 붙잡혀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어, 욥과 같이 사탄에게 붙히신 것이다. 붙잡힌 것, 그것의 도구가 율법이다. 그것은 마치 그물과 같아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물 안에 갇혀있으면서, 자유로운 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갇혀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물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십자가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믿음을 통하여 율법으로부터 빠져나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연합되는 믿음은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이것이 세례다. 세례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표현이다. 그 이상을 말한다면 세례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문제는 세례의 의미보다 세례의 결과에 집중한다. 그래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죄를 지으면서 천국백성이라고 당당히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는 천국 백성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 그렇게 믿고 생각해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다 아시는 것이다. 정말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아신다.

오늘날 교회에서 수많은 교회 사람들이 자기부인의 회개부터 성결해지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뢰한다. 회개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 아래 가두어 놓으셨다는 것을 십자가를 통해서 깨닫게 도와 주신다. 다만 죄 가운데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시지만, 죄 가운데 묶여있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씨뿌리는 비유』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는 갇혀있는 죽은 자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죽음으로 다가올 때,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다가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십자가로 나갈 수 없다. 죽은 자가 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는 죄라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로부터 죽은 자라는 것을 확인받는 곳이다. 하나님은『나의 아들 예수와 함께 너 죽은 자구나, 이제 예수의 이름 때문에 나의 나라로 들어올 수 있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십자가로 들어오지 않는 자는 죄에 대해서 살아있는 자가 된다. 결국 심판 때까지 죄인이 되는 것이다. 오직 죽은 자만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 죽은 자가 되는 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깨닫고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율법적으로 생각하고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는 것인 줄로 생각하는 어리섞은 자들도 많다.

회개의 열매는 죽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어야만 열매가 맺혀진다. 이 회개없이 세상죄만 용서받으려고 예수의 피를 요구하지만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옛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피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고 예수님이 하신 피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살을 먹는 자,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된 자, 죄에 대해서 죽은 자 만이 피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로마서 6장 2절에서『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세례받았다고 하면서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회개한 적이 없는 자다. 형식적 세례의 절차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게 마음의 할례다. 세례받은 자의 삶의 자세는 악과 싸우는 자가 되는 것이지, 날마다 죄를 씻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회개하는 자,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자를 위해 단번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세상죄를 짊어지고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가셨다. 그런데, 매일 매일『죄를 다시 가져가시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는가?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안믿는 것이 죄다.

육신의 죄성, 악,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날마다 죽은 자임을 기억하며 싸우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기는 자의 삶을 살게된다. 싸우지 않는 자는 처음부터 회개하지 않은 자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옛사람이 십자가 못박히지 않은 자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싸움이라는 의미』는 날마다 죽는 것이다.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내 뜻을 내려놓는 싸움이 된다. 내 힘으로, 내 뜻대로 사는 자는 싸우지 않는 자다. 육으로부터 나오는 생각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내려놓지 않으면 주인이 자기가 된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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