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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기도(1) 영적인 고뇌”

작성자김요한목사|작성시간20.12.14|조회수80 목록 댓글 1


겟세마네 기도(1) 영적인 고뇌

마태복음 26:36-38절

『[36]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으로 우리 인생 모든 문제가 처리되고 해답을 얻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으로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의 하나님 되심과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을 마음 중심에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가진 하나님께 대한 죄의 깊이를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죄의 깊이를 이해하는 것만큼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며 살게 합니다.

존경하는 우리의 복음 동역자 전도사님이 과거에 우리교회 와서 배운 것이 죄의 깊이였고, 자신이 억만죄악의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고 한 말을 들었습니다. 과연 바르게 진리를 깨달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라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죄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면서 사역하는 자는 대부분 교만합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 교리를 멸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참된 뿌리는 바로 죄의식의 상실입니다. 유보적 칭의론자들도 인간의 심각한 죄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의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오판하여 복음을 새로운 율법으로 바꾸고, 영혼의 위로를 빼앗아가고, 구원을 인간의 공로에 의존시키는 것입니다.

신비주의자들도 교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대속의 십자가 피 흘리심의 은혜를 뛰어넘어 직접 하나님께 나가고 교제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은사주의자들도 교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그리스도의 은사, 성령의 은사들을 과시하고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 억만죄악을 사해주신 십자가 대속의 피의 사랑의 은혜를 자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교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이 하나님께 갖는 죄의 심각성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에게 “칭의” 복음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인간이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서 매일 보낸 로마서 강해 새벽기도 카톡 메시지를 받고 계십니다. 로마서 주제 1장 17절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이신칭의” 복음을 선포한 즉시 그다음에 죄와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납니다.

로마서 1장 18절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로마서 3장 20절까지 우주적 죄악론을 논하고, 이어서 로마서 3장 21-3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의, 곧 칭의를 밝혔습니다.

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인간의 무서운 타락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죄의 영적인 성격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을 때에 다만 육신적 죽음의 맛을 조금 당해볼 뿐이고, 영원한 죽음의 무서운 쓴 맛은 모르고 죽습니다. 영원한 죽음이란 것은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버림이 되고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옥의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인간은 죄로 인하여 무지해져 있기 때문에 죄의 삯인 죽음의 고통과 비참함을 바로 느낄 줄 모릅니다. 또 인간들은 죽을 때에 육신적 고통과 싸우면서 그것을 받기 때문에 죽음의 쓴 맛을 그대로 다 보지 않고 넘어 뛰어 지나갑니다.

그러나 무죄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신 죽음에 있어서 그 죽음의 쓴 맛을 그대로 다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두려운 쓴 죽음의 형벌을 가감 없이 모두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을 받으신 겟세마네 기도의 영적 고뇌를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죄인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하나님의 진노의 쓴 잔을 우리를 대신해서 받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의 영적 고뇌에 관한 말씀을 다 같이 또 한 번 합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바로 깨달아야 우리 죄성의 깊이와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 사랑의 깊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36]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러 기도하시고자 할 때에 그분이 앞으로 당하실 죽음에 대하여 슬픔과 공포에 압도되어 계신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앞으로 당하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슬픔과 공포에 압도당하신 것 같은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의로운 죽음을 담대히 죽는다는 뜻으로 독약을 마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기독교 순교자들은 그들의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순교자들이 머뭇거리지 않았던 그 순간에 만약 우리 예수님께서 그분의 죽음 앞에 머뭇거렸다면 어떻게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외에도 지금까지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의 필요성을 분명히 보고 계셨으며, 예수님 자신의 사명을 성취하기를 굳게 결심하고 계셨습니다. 또 자기의 일을 굽게 하려는 자에게 격렬하게 대항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이 갑자기 바뀌었단 말입니까? 결국 시험의 순간이 다가오니까 예수님은 물러선 것입니까?

결단코 아닙니다. 이전의 예수님의 가르침, 성격, 그리고 행위의 모든 증거는 그런 결론과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피하고자 하시는 쓴 잔은 그 성격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 이르러 8명의 제자들에게는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기도하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함에 있어서 그들과 동등으로 참여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 수행을 위하여 오직 홀로 포도주즙 틀을 밟고자 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세상 앞에 한 하나님의 아들이 계시고, 오직 한 중보자만 계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민 중에 있는 것은 그분의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고 영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셔야하는 잔은 매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육체적 고통을 상징하지 않으며, 또한 자기 백성들에 의해서까지 멸시와 버림을 받아야 한다는 정신적 고통을 상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는 고민은 어떤 성격의 것입니까? 크게 두 가지 성격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진다는 영적인 고뇌이며, 다른 하나는 성부 하나님과의 사이에 일어날 무서운 분리였습니다.

첫째,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진다는 영적인 고뇌부터 고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그 죄 위에 떨어지는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의 심판을 견뎌야 한다는 영적인 고통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로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기독교 순교자들의 순교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의 희생과 봉사를 위하여 자신이 드려질 때에 그들 모두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십자가 위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축복이 선언되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 십자가를 지고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저주가 덧붙여져 있었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슬프게 하고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그로 인한 슬픔이 십자가를 지는 성도들의 즐거움의 초석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의 성격은 전혀 영적인 고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온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다는 대속의 희생 제물로 드려지는 영적인 고뇌이며, 그 죄 위에 떨어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겟세마네에서의 고민의 성격은 성부 하나님과의 사이에 일어날 무서운 분리였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가져다 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소외의 경험에 대하여 예수님은 두려움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셨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비록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 16:3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대속의 희생 제물로 드려지는 암흑 속에서 예수님은 완전히 혼자가 되었으며,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칼빈은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만 죽으셨다면 그 죽음은 유효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의 영혼이 그 형벌을 함께 받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육신의 구속자밖에 되지 못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정죄받고 버림받은 인간의 무서운 고통을 그의 영혼으로까지 당하심으로써 더 크고 엄청난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실제적이고도 무서운 분리가 성부와 성자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끔찍하고 거대한 흑암을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한 오해하지 말 것은 “이런 하나님의 버리심은 전적으로 참된 것이지만, 동시에 복되신 하나님의 연합은 그 때에도 깨어진 것은 아니라는 파라독스”를 모두 강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신비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겟세마네에서의 예수님의 영적 고뇌에 대한 두 가지 진리, 즉 하나는 속죄의 희생 제물로서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과 영혼에 대한 심판으로써 성부 하나님과의 사이의 일어나는 무서운 분리의 사실에 대한 영적 고뇌를 바로 이해해야겠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겟세마네에서 나타내신 슬픔과 고민으로 인하여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즐거움의 초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수고히 무거운 짐진 자들을 자기에게 이렇게 초청하셨습니다.

마 11장 28-30절 보면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마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으로 우리 인생 모든 문제가 처리되고 해답을 얻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으로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의 하나님 되심과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을 마음 중심에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가진 하나님께 대한 죄의 깊이를 바르게 깨닫고 이해해야합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죄는 원죄이며,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깨는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을 떠났으며, 죽음의 형벌을 선고 받았습니다.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희생 제물로서 온 세상의 죄를 짊어져 주시고,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써 성부 하나님과의 무서운 분리가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영적 고뇌로 인하여 우리에게 기꺼이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만강의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억만죄악을 사하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사랑하기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십자가, 오직 예수보혈 신앙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즉시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분의 겟세마네 기도의 고민과 고통의 의미를 우리로 바르게 깨닫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과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로써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사이에 분리가 되어져서 이런 처참한 고난 앞에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에서 영적인 고뇌를 당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고뇌로 인하여 우리가 참된 평안을 얻고 신령한 은혜를 얻어서 죽음 앞에서도 담대히 서며 기쁨으로 영광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하옵나이다. 오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참되게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은총의 성찬식이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 주님께 영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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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숙희 | 작성시간 20.12.14 아멘아멘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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