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들의 뜻대로 세운 언약
[출34: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요즘 필자는 희한하게도 "하나님 안다"고 자신하는 목사님이나 신학생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 중에는 신학박사가 되신 분도 있고 박사과정에 들어가신 분,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분들 모두가 하나같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3분 이상 남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자기의 수고와 열심으로 쌓아올린 세상적 지식을 뽐내고 싶어 입이 가만히 있질 못하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로 시작해서 그리스도로 마무리하겠다는 언약의 말씀인데,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듣는 게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버럭 화를 내면서 “신학교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말한다”며 매우 언짢게 생각합니다.
필자가 간신히 찬스를 잡아 몇 마디 던진 말을 듣고 있던 한 예비 목사님은 “당신과 내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나와 당신이 다르다는 거냐?”며 얼굴을 붉힙니다.
성미가 급하셔서 상대의 말을 듣고 있을 틈이 없는 분들이라 필자가 하고 싶었던 말을 글로 대신하게 됩니다. 필자가 “복음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은혜의 언약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들을 수 있는 말”이라 했던 이유를 전하고자 합니다.
은혜가 무엇인지 모른 채 하나님을 학문의 대상으로 만들어 공부하고 연구하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잘 드러내 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사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구절은 예수께서도 인용하셨던 이사야서의 기록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백성에게 이르기를”할 때 사용된 단어가 히브리어 ‘아마르’로서 인간 세상에서는 소통되지 않는, 주께서 계시를 통해 열어주셔야만 알 수 있는 묵시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성령)의 은혜에 의해 성경 말씀의 진의를 깨닫게 된 이사야 선지자는 겉말씀(다바르)과 속말씀(아마르)이 있다는 걸 보게 됩니다. 겉말씀은 육신이 인지할 수 있는 혼의 말이고 속말씀은 묵시의 말, 성령을 통해 알게 되는 영의 말입니다.
[시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은 그 말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열어주셔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여호와께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뿐만 아니라 성령이 임한 이들은 모두가 다 알게 되는, 놀랍고 기이한 현상입니다.
육의 몸이 먼저 접하는 율법, 겉말씀에서 시작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나중에 접하는 성령의 속말씀으로 인해 진리를 알게 된 이들은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적 개념의 단순히 놀람이 아니라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창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마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먼저 된 자, “처음에” “첫째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니 첫째, 처음은 당연히 먼저 오는 장자의 말, 율법, 나무에 달려 저주받아 죽어야 할 예수, 눈에 보이는 선악의 생각, 육신의 생각을 의미합니다.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출12:29)” 이 말씀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다 멸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겠다”는 여호와의 언약인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나중 된 자, “끝” “마지막”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 다음에, 나중에, 마지막에 오시는 분, 율법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분, 십자가에서 육의 몸을 벗고, 육신의 생각을 벗고 영으로, 성령으로 오시는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8)” 했습니다. 이는 나중에 온 자, 십자가에서 육의 몸을 벗고 온 그리스도에 의해 먼저 된 자, 겉말씀, 율법의 뜻을 깨달아 감춰진 의미를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접하게 되는 과정을 최대한 쉽게 나열하였지만 인간은 늘 자기 머리를 앞세워 시작하는 육적 본능으로 인해 이게 현실이 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매일 성전의 모형을 두고 모세와 함께 생활했으면서도 은혜를 구하지 않은 모습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율법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육체의 본능에서 기인합니다. 말씀대로 살다가 기진하여, 지쳐서 쓰러지는 이들이 생깁니다. 내심 육체의 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솔직한 이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경은 끝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요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성경은 혈과 육,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에서 그리스도로,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율법에서 진리로, 죄와 사망의 법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혼(프쉬케)에서 영(프뉴마)으로, 인간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에서 “말씀”은 겉으로 드러난 겉말(로고스), 가짜 신, 귀신, 마귀의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8:44)”고 하신 겁니다.
논문을 쓰고 있다는 목사님에게 “귀신 들린 상태”라 하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귀신 들린 자”였음을 아는 것은 이미 맹세의 언약인 성령에 의해 육신의 생각이라는 옷이 벗겨진 상태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파장을 일으키는 소리로 인식되거나 문자로 표현될 수 없는 묵시(계시)의 말씀입니다. 인간이 그 말씀을 굳이 눈과 귀로 보고 듣고자 한다면 육체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의 천둥과 번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이들에 의해 말씀이 통역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감춰진 언어를 상징과 비유, 모형과 그림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은혜에 의해 그것을 알아먹게 되는 이들이 생겨난다는 얘깁니다.
[출34: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본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육신의 생각으로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얼마간의 거리와 공간을 두고 대화를 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실제는 성령이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임하여 영으로 한 몸이 상태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애굽에서부터 시작하여 시내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생생하게 보고 경험한 엄청난 이적과 기사에 담긴 내용을 “글(히브리어)로 새기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언약을 언급하시면서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말들의 뜻 할 때 “뜻”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속말씀입니다.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속말씀을 이적과 기사로 펼쳐놓으셨는데, 거기에 담긴 “뜻”이라는 겁니다.
이처럼 성경은 온통 “네게 가르치는 율법의 뜻대로(신17:11)”를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모두 느혜미아 8장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느8:8)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느8:9)”와 같이 성령에 의해 깨닫게 되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깨닫는다”는 것은 스스로 아는 자각이 아니라 인간이 머리로 취득한 성경 지식이 완전히 허물어지는 겁니다. 이것을 “영의 귀, 영의 눈, 영의 미각, 영의 몸으로 알게 하겠다”는 언약임을 아셔야 합니다.
[신29: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할렐루야 ~! 주님께 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