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소망은 부활입니다(2)
바울은 엡2:5에서 우리 성도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성도를 가리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첫째 부활은 가시적인 하늘의 풍요 속으로 입성을 하게 되는 둘째 부활로 가는 여정 속에서 내 안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영적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부활을 한 성도들에게는 아직 가시적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은혜로 이 세상 속에서 첫째 부활의 삶을 삽니다
그들은 반드시 둘째 부활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확실한 둘째 부활을 약속받은 자들이 이 땅에서 예수의 삶을 좇아 작은 십자가와 작은 지옥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배우게 되는 것이고 아울러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이라는 것을 발휘하여 둘째 부활을 확신 속에서 기다리며 살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이들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째 부활에 속한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 삶을 다른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이 땅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로서 누릴 수 있는 하늘의 풍요는 내가 부인되어가는 믿음 속에서 누려야 하는 영적 풍요여야 하는 것이지 부자가 되고 병도 안 걸리고 큰 명예를 얻어 세상의 자랑거리가 되는 그런 풍요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이들이 이 세상 속에서 영생을 사는 길은 십자가와 지옥을 경험하며 소망으로 그 삶을 이겨내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겨내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첫째 부활을 경험한 성도는 삶으로 증명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15:42~45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바울은 45절에서 첫 사람 아담을 산 영이라 부르고 마지막 아담 예수를 살려주는 영으로 부릅니다
산 영과 살려주는 영이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산 영은 살려주는 영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서 누군가에 의해 살림을 받기 전에는 절대 존재할 수도 없는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것이 아담입니다 바로 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부활 전의 자연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저 살아있는 상태였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의 첫 열매로 부활을 하셨으므로 우리도 그 첫 열매처럼 나의 생존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살려내는 다른 말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자로 지어져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육신의 삶 속에서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으로 이름 붙여진 육신을 부인하고 썩지 아니할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인 영의 싦을 추구하며 살도록 이끄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육을 부인하는 삶을 가리켜 육으로 심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씨앗으로 땅에 심는 삶이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삶을 말하며 예수님께서 겪으신 지옥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 씨앗으로 심기우는 삶, 죽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부활을 위해 이 땅에서 철저하게 옛 사람을 땅에 지옥에 심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습니다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나는 것은 회복이라 하지 부활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반드시 이 땅에서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이 땅에 심기운 씨앗이 되어 세상에 대해 죽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고전15:15: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너무 확실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형체 즉 부활의 몸을 입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씨앗으로 심겨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것으로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의 삶에 섬기는 삶 용서하는 삶 져주는 삶 당해주는 삶이 허락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성도는 그 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이 땅의 희망을 죽이며 하루하루를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야만 삽니다
여러분이 그 부활신앙을 갖고 있다고 입으로 시인하면서도 현실에서의 죽음을 수긍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부활을 소망으로 갖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신앙생활이 우울하고 고통스러우며 힘들고 외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끝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이고 무엇이고 지금 나에게 닥친 이 육신의 삶에나 신경을 먼저 써 달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부활의 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현실에 집착하여 그 상태로 머물러 계시면 안 됩니다
산 영'첫 사람 아담 즉 자연인은 소망이 없는 죽은 상태로 있다가 영원히 죽음으로 들어가게 되고 부활하신 예수 즉 살려주는 영은 소망이라는 확실한 목표지점을 향하여 현실을 딛고 일어서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영을 우리 성도가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소망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현실을 딛고 움지여야 하며 절대 절망의 상태에서 원망과 불평 불만의 노래를 부르다 죽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성도 또한 살려주는 영이 되었으므로 아직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살려주는 복음을 들고 삶으로 입으로 하늘의 존재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자꾸 눈을 떼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 자꾸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 영이 아닌 살려주는 영으로서 소망을 향하여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꾸 머물려 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가치가 여러분에게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갈 때마다 여러분은 하늘의 소망을 더 꼭 붙잡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창세기의 첫 창조 때의 그 사흘 동안에 일어났던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어그러졌던 하나님 나라의 틀을 다시 세우시기 위해 사흘을 무덤 속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흘이 회복이 되자 찬란한 부활의 아침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첫 창조는 반드시 끝이 납니다
지금 이 세상은 무서운 역창조의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죽음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 속해 있던 우리의 옛 사람은 지금 역창조의 과정을 겪으며 죽고 있는 것이고 그 역창조가 완결이 되는 날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이 세상에 대해 죽는 날 영광스러운 새 창조가 밝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 참으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죽고 있는 것은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 죽음의 삶 속에서 탄식과 절망의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됩니다
영광스러운 소망의 찬양을 부르십시오
성도에게 약속된 부활의 나라는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은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성도는 이 땅에서 망해도 감사해야 하고 병들어도 감사해야 하고 사고를 당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박국은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어도 여호와로 즐거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박국이 나열한 그 목록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저 생계를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이 다 사라져도 하박국은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기에 이 땅의 허무하고 허망한 것들이 부족해서 불편한 삶을 살아도 여호와로 감사할 수 있는 참 신앙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잘 견디시고 잘 이겨나가십시오
이 세상의 다른 가치와 함께 예수도 믿는 사람이 아니고 이 세상의 다른 가치를 모두 버리고 예수만 믿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멸망할 이 세상에서 눈을 돌리고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라보며 은혜로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참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 주님께 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