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490강)
왜, 아버지를 만나려고 합니까?(17)
입으라는 말은 주께서 입혀 주겠다는 말입니다. 새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간섭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성도에게는 버릴 것이 있고 취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의 피를 내 죄를 씻겨주는 것으로 도용하지 마십시오. 우리 맘대로 살라고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행위’와 ‘행함’은 다릅니다.
행위는 내가 하는 것이고 행함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입니다. 행위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고 행함은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위의 끝에는 내 자랑이 남지만 행함의 끝에는 “주께서 하셨습니다!”라는 고백이 남게 됩니다. 행위는 종교생활이지만 행함은 신앙생활입니다.
전 지금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행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발 좀 구분하십시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자는 필연적으로 예수의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야고보서에 믿음과 행함이라고 합니다.
저는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받은 자들에게서는 반드시 믿음이 발생시킨 행함이 나오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일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이 복음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삶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 십자가 도를 아는 것으로만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 온전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너희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라고 합니다. 어떻게 행하라고 합니까? 서로 사랑 가운데 용납하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4:1~3절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사도 바울은 왜, 사랑으로 용납하라고 합니까?
이는 너나 나나 모두가 예수의 피 흘리심으로 용서를 받은 자이고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 안에 사람마다 각자에게 분량에 따라 은사를 주셨으니 각자 받은 은사로 섬기라고 합니다. 예수를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가 되어서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4:7절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11~14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사람의 궤술과 사람의 간사한 유혹이란 귀에 듣기 좋은 말을 듣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뱀의 독과 같아서 사람을 감각 없게 만듭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막살아도 된다!” 자기 맘대로 살아도 된다는 식의 말을 자꾸 들으면 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죄인의 속성입니다.
에베소서 4:17~23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영지주의자들의 말을 따르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너희가 신자인데 왜 이방인처럼 사느냐? 그것은 옛날에 살던 방식이고 이제는 예수쟁이답게 살아야 하는데도 너희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방인처럼 방탕과 방종하니 이를 어찌 예수 믿는 자라고 할 수 있느냐?”
“어떤 놈이 이런 말을 가르치더냐?” 그놈은 지금 뱀의 독을 먹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은 뱀의 독처럼 죄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서 급기야는 자신의 몸을 이방인들처럼 방탕과 방임에 내어두게 되므로 조심하라고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그렇게 배우지 않았느냐?”라고 합니다.
주 예수님이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제는 새사람이 되었으니 유혹에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새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이냐면,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왜, 용서하라고 합니까? 이는 우리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만들어내라는 말이 아니고 이미 받은 용서가 있으니 그 용서를 토해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토하여 내게 하십니다. 그러니 내가 용서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주 예수님의 자기 백성을 위한 용서이고 섬김이고 봉사입니다. 나타나는 것마다 주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