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란?
마태복음 8장 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 각 사람을 복 주시고, 어두움 가운데서 생명의 자리로 이끌어 내주신 것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주님의 영광과 사랑을 드러내며 살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몸으로,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신부로 만들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과 구별되도록 계획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 닮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형상은 도성인신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디.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다. 그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단련하시고 격려하실 것이다.
1. 본문해설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주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간절히 만류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주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꾸짖으시며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 마태복음 8: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다.
2. 주 예수님 따르는 삶은
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로 ‘자기 부인’의 삶과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1) 자기 부인
자기 부인은 무언가 옳지 않은 것들이 자기 안에 생겨나게 될 때 그것이 그릇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거부하며,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비록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죄와 악의 사슬에 매어있던 그의 영혼과 마음을 성령님의 지극히 큰 능력으로 풀어 자유를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 그가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간에게는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치 않는 생각들과 욕망이 그리스도인 안에 계속 생겨날 수 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 참된 것을 분별하고 옳지 않은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 없으면 진정 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 부인의 첫 번째는 '자기 생각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일 먼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잘못된 생각들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도 그것을 잘 모를 수도 있고 혹 안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강한 편견과 고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자기의 생각과 판단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지 점검하고 말씀 앞에 그것들을 내려놓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 수가 없다. 얼마나 자주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되고 이제껏 우리가 배운 진리와 다른 생각과 판단들이 오가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생각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미혹하고 혼란케 한다. 바다를 항해하는 큰 배일수록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릇된 생각은 인생전체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은혜가 필요하다.
두 번째 자기부인은 '자기의 욕망을 부인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때 우리에게 소원도 같이 주신다. 빌립보서 2:13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쁜 뜻을 따라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기름진 밭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잘 자라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려는 소원과 자기 욕망에 대한 소원도 같이 자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욕망 모두를 인정해서도 붙잡아서도 안 된다. 자기 욕망에 따라 살았던 때를 떠올려보라. 결국 모든 미끄러짐은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했기 때문이었고, 그 결과 영혼의 큰 손해와, 관계의 깨뜨려짐을 경험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욕망을 분별하여 어떤 것이 성령님께서 심으신 것이고 부인하여야할 것인지 구별하고 말씀의 영향력과 기도의 은혜로 그릇된 것을 죽이는 일을 간구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주님을 따라갈 수도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잘못된 욕망을 깊이 깨닫고 뉘우치는 ‘회개’가 매우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한 주 예수님이 메시아일리 없다는 신학적인 편견과 이방인에게는 절대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심리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 회개한 후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주님이 원하시는 욕망과 생각만 생겨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 예수님을 본받기는 커녕 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방불하게 살아가게 된다. 덧붙여 우리는 생각과 욕망의 부인뿐만 아니라 의지 또한 굴복시켜야 한다. 강력한 욕망은 항상 의지를 동반한다. 은혜로부터 멀어지면 의지는 완고해져서 좀처럼 하나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치 주님을 거스르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아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2) 자기 십자가
또한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우리는 '자기 십자가'즉 "내 몫의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 닮은 형상을 만드시기 위해서서 지신 것으로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 시련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런 고난을 짊어지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예수님이 지신 그 십자가를 우리 또한 짊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예수님이 친히 먼저 본을 보이시고 길을 닦아 놓셨기 때문에 그 길만 따라 가면 된다.
로마서 6:11절은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했다. 십자가에서 이미 내 옛 사람이 죽었다고 "여기라"는 말씀이다. "여기는 것"이 십자가 지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다가온 모든 상황과 환경과 문제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반응"하라는 것이다. 십자가에는 두 가지가 있다.
① 절대적인 십자가
절대적인 십자가는 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와 같이 애매히 당하는 핍박과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도 없으셨다. 주 예수님의 생애는 이 세상에 오셔서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 생애였다. 하지만 그런 사랑과 섬김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님이 따르는 것이 ‘진리’였기 때문에 주 예수님의 모든 행동은 죄로 물든 인간들의 눈에 가시였다.
그래서 많은 인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박해하고 핍박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으로서 자신들이 진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진리를 미워하고,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들은 우리가 주님의 진리를 따라가려고 할 때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한다. 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십자가다.
② 상대적 십자가
상대적인 십자가는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와 허물, 결함으로 인한 십자가다. 걸어가는 그 길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지만 자신의 모난 성격과 아직 절제되지 않는 욕망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과 시련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자업자득이나 하나님의 징계라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이 십자가를 자기 성숙의 기회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런 고통을 통해서도 그는 절대적인 십자가와 똑같은 효력을 자신의 성화의 삶에서 경험하게 된다.
다윗이 그랬다. 다윗은 그의 범죄로 인하여 자식들의 끊임없는 칼부림, 갈등의 연속을 경험하였다. 심지어 자신의 후궁을 아들이 겁탈하는 부끄러운 일 또한 당하였다. 하지만 다윗은 이런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혈기를 가지고 분노하는 대신 하나님께 피하여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다. 그러자 다윗은 이 세상에는 궁극적으로 의지할 것이 없고 오직 기쁨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모든 고통을 통해 다윗은 주님 앞에 순종하는 삶에서는 도달하지 못하는 온 땅에 가득한 주의 무궁한 진리를 더 절실히 목격하고 찬송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다윗이 인생의 풍랑으로 인하여 주님께 피하였더니 주님과 오히려 가까워지는 비밀들을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게 되었다.
시편 31:19~21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여호와를 찬송할 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종류의 많은 십자가가 있다. 하지만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그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날마다 주님을 생각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오히려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연단하시는 십자가가 없고 아무런 고통이 없을 때 우리의 인생의 항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사명으로부터 이탈하게 돼버린다.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마음의 고통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죄와 씨름하며 주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는 그 고통과 비할 데 없는 놀라운 기쁨이 솟아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한다. 그 십자가가 그 사람을 그 만큼 이라도 하나님 앞에 살아있게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을 보라. 큰 능력으로 구원을 얻고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한 그에게도 이 두 가지 십자가는 늘 있어서 그의 마음에 고난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십자가를 통해 그는 자신의 소망을 철저히 하늘나라 에 둘 수 있었다.
3. 주 예수님의 죽음에 참여함
하지만 십자가는 결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즐거움이나 기쁨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는 양심의 정죄와 세상의 핍박 가운데에서도 십자가를 통해 주 예수님의 죽음과 고난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면 이 십자가가 끊임없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죄를 짓게 만들지만, 십자가를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깊이 묵상할 때 이천년 전에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의 기운이 우리를 삼키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우리의 육체가 나이가 들면 죽음의 기운에 피부와 살갗 인막과 체취 모든 것이 생명의 기운을 점점 잃어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그리스도 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은 바 될 때 우리 안에 모든 정욕과 굽은 욕망과 부패한 경향성들이 죽음에 의해 잠식되어 기운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평안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모든 좋은 것,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알고 정욕을 버리는 아름다운 자기 비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 내세에 대한 아름다움, 죄를 죽이고자 하는 의지는 고난이라는 토양 속에서 피어오르는 꽃과 향기, 열매들이다. 환란과 핍박이 가득하고 세상에 소망 둘 곳이 없던 그런 고난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찬송을 토해 놓았던 사실이 이것을 뒷받침 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그 모든 고통 속에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주 예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죽으심이 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주 예수님의 기운은 시공간을 넘은 죽음이 되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와 하나님이 심지 않는 모든 것을 죽이는 신비함을 나타낼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일평생 깨닫기 위해 노력한 것 중에 하나가 이 비밀스러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 이었던 것이다.
4. 결론
주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기까지 구원받은 자녀인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예함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를 연단하신다. 진흙과 같은 우리의 몸을 정금과 같이 만드시고 더러운 인간들을 끊임없이 진리와 성령님으로 씻으셔서 주 예수님의 형상을 충분히 담게 만들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 목적에 합당하게 쓰시기 위해서 끊임없이 갈고 닦으신다. 주 예수님을 따르고 하늘가는 길에 지름길은 없다. 쉽게 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모든 길들은 참 진리의 길이 아니었음이 이미 입증되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그 십자가 때문에 살아있는 우리가 이번에는 그 분을 따라 십자가를 질 차례라고 고백하였다. 십자가의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살 때만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보여주며 살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잘 감당해서 주 예수님의 죽음에 참예함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기까지 성장해야 할 과정이 남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