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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3일] 성령님과 함께하는 창세 전 이야기 “감사는 환경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선택입니다”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6.06.12|조회수56 목록 댓글 0

[2026623]

성령님과 함께하는 창세 전 이야기

감사는 환경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선택입니다

 

감사는 좋은 일이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감사에 대해 묵상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오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감사가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형편이 좋으면 감사하고,

건강하면 감사하고,

사업이 잘되면 감사하고,

문제가 해결되면 감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지금 제 상황을 아시면 감사하라는

말씀을 못 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감사가 안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성경의 감사는 환경의 결과가 아닙니다.

믿음의 선택입니다.

상황이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좋은 일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범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엔 판티라고하는데

모든 것 안에서라는 뜻으로, 성경에서는 모든 일에”,

모든 상황에서”, “어떤 형편에서든지”, “아주 사소한 일에도

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일이 다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다 행복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모든 일이 다 이해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시고,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감사는 믿음의 언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는 사람은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에게 팔렸습니다.

노예가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인생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셉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사람의 행동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상처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습니다.

환경보다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원망 대신 감사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주님, 이해는 안 되지만 감사합니다.”

주님, 아직 보이지 않지만 감사합니다.”

주님, 지금은 아프지만 감사합니다.”

주님, 반드시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감사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사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육체는 언제나 불평합니다.

육체는 언제나 부족한 것만 봅니다.

육체는 언제나 문제를 확대합니다.

육체는 언제나 자기 억울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다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과거의 은혜를 떠올리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미래의 소망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감사할 이유를 찾는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성령님의 다스림에서 멀어질수록

불평할 이유만 찾게 됩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감사하고,

어떤 사람은 원망합니다.

차이는 환경이 아닙니다.

시선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의 차이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와 갈렙의 차이를 보십시오.

 

모두 같은 광야를 걸었습니다.

모두 같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모두 같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었습니다.

 

민수기 14:8~9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문제보다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거인보다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장벽보다 약속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사와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경륜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감사의 근거입니다.

모든 것이 다 선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사용하여

결국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절망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눈물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장면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감정이 아닙니다.

감사는 믿음입니다.

감사는 상황이 아니라 시선입니다.

감사는 환경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이루어 가시는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를

원망하는 사람에서 감사하는 사람으로,

불신하는 사람에서 신뢰하는 사람으로,

환경을 보는 사람에서 하나님을 보는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것은

불평하는 백성이 아니라,

감사하는 백성이며,

원망하는 종이 아니라,

어린양을 사랑하는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신부는

환경 때문에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양 때문에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우리의 눈을 들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원망 대신 감사를 선택하게 하시며,

감사로 어린양을 기다리는 신부가 되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 안에서

김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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