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5일] 성령님과 함께하는 창세 전 이야기 “감사는 현재의 축복보다 영원한 구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6.06.12조회수48 목록 댓글 0[2026년 6월 25일]
성령님과 함께하는 창세 전 이야기
“감사는 현재의 축복보다 영원한 구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은혜보다 축복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감사에 대한 말씀을 계속 묵상하다 보면
우리는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참된 감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감사를 잃어버리면
하나님보다 축복을 사랑하게 되고,
은혜보다 형통을 사랑하게 되고,
구원보다 성공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히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감사는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온도계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병이 낫기를 원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사업이 잘되기를 원합니다.
자녀가 잘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런 기도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감사의 중심은 점점 달라져야 합니다.
처음에는 주신 것 때문에 감사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응답 때문에 감사하지만
나중에는 함께하심 때문에 감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환경 때문에 감사하지만
나중에는 구원 때문에 감사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놀라운 감사의 사람 중 한 명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사울에게 쫓겼습니다.
배신을 당했습니다.
아들의 반역을 경험했습니다.
눈물과 아픔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의 시편은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왜일까요?
다윗은 환경보다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03:1~5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잘 보십시오.
다윗은 가장 먼저
“죄악을 사하신 은혜”를 말합니다.
“생명을 속량하신 은혜”를 말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가장 큰 감사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은
건강이 아닙니다.
물질도 아닙니다.
성공도 아닙니다.
천국 시민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너무 쉽게 이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작은 문제 하나만 생겨도
감사가 사라집니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원망합니다.
사람이 섭섭하게 하면 낙심합니다.
왜냐하면 시선이 영원에서 현재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의 시선을 다시 들어 올리십니다.
십자가를 보게 하십니다.
구원을 보게 하십니다.
영원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감사하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돌아와서 매우 흥분했습니다.
귀신들이 복종했다고 기뻐했습니다.
능력이 나타났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0:20절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합니다.
기적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양의 신부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감사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감사의 기준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은 가진 것으로 감사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구원으로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은 형통으로 감사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십자가로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은 현재만 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영원을 봅니다.
사도 바울도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쇠사슬보다 큰 은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3~5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세 전에 택하셨습니다.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구원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참된 감사는
현재의 형편을 넘어
영원한 은혜를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 돈이 없어도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몸이 아파도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눈물이 있어도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린양의 신부로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 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의 시선을 땅에서 하늘로,
현재에서 영원으로,
축복에서 하나님 자신에게로 옮기고 계십니다.
그리고 점점 우리를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
구원을 기뻐하는 사람,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
감사로 충만한 신부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감사는 단순히 받은 것을 세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영원한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아는 사람만이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사모하며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되어 갈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김요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