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7일]
성령님과 함께하는 창세 전 이야기
“감사는 신부의 언어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6월 한 달 동안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하여 함께 묵상해 왔습니다.
성령 없이 가능한 신앙의 위험을 살펴보았고,
창세 전부터 계획된 성령님의 역사를 살펴보았고,
하갈의 길과 사라의 길을 통하여
육체의 길과 은혜의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감사가 성령 충만의 열매라는 사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감사에 대한 마지막 핵심 진리 하나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는 단순히 성도의 덕목이 아닙니다.
감사는 신부의 언어입니다.
성경의 마지막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의 마지막은 신부입니다.
성경의 마지막은 조직도 아니고,
사역도 아니고,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모든 구원의 역사는
결국 한 가지 목적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신부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5~27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목적은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신부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주님과 영원히 연합된 존재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최종 목적은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무엇일까요?
감사입니다.
신랑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랑의 사랑에 감사하게 됩니다.
신랑의 희생에 감사하게 됩니다.
신랑의 기다림에 감사하게 됩니다.
신랑의 헌신에 감사하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감사가 많아집니다.
왜냐하면, 받은 은혜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가치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면
감사는 사라지고 불평이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언제나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감사 없음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특징 가운데
“감사하지 아니함”을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보다 욕심이 커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보다 세상이 더 좋아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성품이 아닙니다.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 지표입니다.
감사는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나는 환경을 보고 있는가?”
“나는 사람을 보고 있는가?”
“나는 나 자신을 보고 있는가?”
“나는 어린양을 바라보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늘의 분위기는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요한계시록 7:11~12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하늘은 감사로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은혜였고,
십자가가 은혜였고,
인도하심이 은혜였고,
보호하심이 은혜였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감사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그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원망을 몰아내고 계십니다.
불평을 다루고 계십니다.
억울함을 다루고 계십니다.
자기중심성을 무너뜨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점점 감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사람이
신부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광야를 지나면서도 감사하는 사람,
눈물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사람,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
응답이 늦어져도 감사하는 사람,
그 사람은 이미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축복보다
주님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신부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실 감사는
현재의 축복 때문만이 아닙니다.
감사는 앞으로 완성될 약속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아직 연약합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아직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6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이끄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신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신부,
어린양만 사랑하는 신부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습관이 아닙니다.
감사는 신부의 언어입니다.
감사는 성령 충만의 열매입니다.
감사는 하나님 나라의 언어입니다.
감사는 장차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더 깊은 감사의 영을 부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원망 대신 감사가, 불평 대신 찬양이, 두려움 대신 믿음이,
환경보다 어린양을 바라보는 신부의 마음이 우리 안에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길을 걸어가며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신부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주 안에서
김요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