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제1주 - 예배가 무너진 시대 “예배는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은 만나지 못하는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6.06.12조회수15 목록 댓글 0[2026년 7월 1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제1주 - 예배가 무너진 시대
“예배는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은 만나지 못하는 시대”
요즘 제가 자주 묵상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바로 「따스한 성령님」이라는 찬양입니다.
그 후렴에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저는 이 고백이 참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히 찬양 가사가 아니라
신약의 예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복음적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이 말은 곧 “형편이 좋아도 예배하겠습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예배하겠습니다.”
“응답받아도 예배하겠습니다.”
“응답이 늦어져도 예배하겠습니다.”
“눈물 가운데서도 예배하겠습니다.”
“광야에서도 예배하겠습니다.”
“걸어가면서도 예배하겠습니다.”
“그 어떤 곳에서도 예배하겠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한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의 삶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서 “범사에”는 헬라어로
“엔 판티(ἐν παντί)”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형편 가운데서”
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정말 예배가 살아 있습니까?
교회는 많아졌습니다.
예배도 많아졌습니다.
설교도 많아졌습니다.
찬양도 많아졌습니다.
집회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회개는 사라지고,
거룩은 희미해지고,
십자가의 감격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배의 형식은 남아 있는데
예배의 본질은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위기 가운데 하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일은 지키는데
주님은 놓치고 있습니다.
찬양은 하는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헌금은 하는데
자신은 드리지 않습니다.
예배당에는 오는데
하나님의 임재 앞에는 서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시대의 비극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예배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예배는
가인과 아벨의 예배였습니다.
창세기 4:3~5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두 사람 모두 예배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제물을 드렸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예배는 받으셨고
한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은 제물보다 먼저
예배자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제물은 드렸지만
자신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행위는 있었지만
믿음은 없었습니다.
종교는 있었지만
생명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달랐습니다.
아벨은 제물만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아벨의 제사를 믿음의 제사라고 말합니다.
예배는 단순히 무엇을 드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배는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다니지만
자신은 드리지 않습니다.
시간은 드리지만
마음은 드리지 않습니다.
헌금은 드리지만
삶은 드리지 않습니다.
입술은 움직이지만
심령은 하나님에게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도 변화가 없습니다.
감동은 있지만 회개는 없습니다.
지식은 늘어나지만 생명은 자라지 않습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사야 1:13~15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배를 싫어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절기를 싫어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예배는 있는데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식은 있는데 진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있는데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같은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정말 예배하고 있는가?”
“나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나는 습관을 반복하고 있는가?”
“나는 주님께 나를 드리고 있는가?”
“나는 시간만 드리고 있는가?”
7월 한 달 동안 우리는
주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하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왜 예배가 무너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참된 예배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먼저 물으시는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너는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너 자신을 내게 드리고 있느냐?”
예배가 무너진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를
종교인이 아니라,
예배자로,
프로그램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신부로 빚어 가고 계십니다.
주 안에서
김요한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