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산책(83)
추수 꾼으로 오신 주 예수님(5)
요한복음 4:35~42절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하게 고찰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인간들은 올바른 하나님을 알려주어도 시간만 지나면 거짓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알려준 그 하나님을 섬기면 될 텐데, 왜, 자꾸만 거짓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까?
구약 이스라엘을 보고 화가 난 적이 없습니까?이적과 기적으로 만 가지 은혜를 베풀어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고 함께해 주셨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생각을 안 해 봤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영의 눈이 열리고 나면, 내가 바로 구약 이스라엘이고, 내가 바로 가짜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바로 유대인들처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만 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께 저주받아야 할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약의 성도라고 해서 다른 신(神)을 섬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다른 신(神)을 거부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세상 신(神)을 사모합니다. 세상 신(神)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세상 신(神)은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는 광야에 사십일을 주리시던 주 예수님도 유혹합니다. 이것은 전부 우리가 사모하는 것들입니다. 부자 만들어 주겠다고 하고, 세상에서 성공시켜 주겠다고 하고, 세상에서 영웅 만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인간들이 일평생 얻기 위해서 달음질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은 그 누구도 이런 마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신(神)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다른 신(神)이야말로 인간의 뜻을 들어주고,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일평생 몸뚱어리에 매여 사는 인간은 이 육신의 유혹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속셈을 잘 아는 마귀는 배고픈 자에게 찾아와 떡을 주겠다고 하고, 병든 자를 찾아와 치료해 주겠다고 하고, 사업에 실패한 자에게 찾아와 성공을 주겠다고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주겠다고 합니다. 몸뚱이 중심으로 사는 인간이라면 이런 마귀를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몸뚱이 중심으로 사는 인간이라면, 주 예수님을 바로 믿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3장에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성령님께서 편지를 보내십니다. 모두가 책망하는 말입니다. 책망한다는 것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란 온 세상의 교회란 말입니다.
온 교회가 틀렸다는 말입니다. 처음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라고 합니다. 처음 사랑이란, 주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 신앙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받았던 예수의 피입니다. 그런데 처음 것을 버렸다고 합니다. 처음 것을 버렸다는 것은, 처음 입력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변질했다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가르쳐준 예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경계시키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던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이 알려준 하나님이 아니고 다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이런 일이 반복하여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외식으로 흐르게 됩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인간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을 주고 가르쳐 주어도 안 됩니다.
결코, 인간은 하나님 뜻대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에 사는 성도가 깨달아야 할 것은, “역시나 우리도 안 된다.”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 사람들은 실패했지만, 나는 안 그럴 것이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구약 사람들의 범주를 머리털만큼도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과 똑같은 죄라는 유전자(遺傳子)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도 처음엔 하나님을 진짜 잘 섬기겠다고 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땅에서 몸뚱어리 끌어안고 산다는 것이, 하나님만 바라보고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따로, 삶 따로 가 되고 만 것입니다.
마음 따로 행동 따로 각각 따로 놀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이런 것을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사랑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왜, 인간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마음은 멀어질 수밖에 없는가를 알아야합니다.
우리도 처음에 은혜를 받고선 주님만 섬기고 살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아골 골짝 어디라도 복음 들고 가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 가졌던 그 열정은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모두가 이 핑계 저 핑계 핑계뿐입니다. 결국, 내 몸뚱어리가 예수보다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처음 오순절 성령을 받고 모두가 은혜에 취하여 재산을 교회에다 내어놓았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