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산책(93강)
병 고침 표적의 의미(4)
만물이 다 주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먹는데 유독 인간만이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물을 가지고 주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사용하십니다. 만물이 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간들에게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리는 시청각 교재로 사용됩니다.
이처럼 만물이 주 예수님께 순종하는 모습은 인간들 눈에는 기적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여도 그 기적에 관심을 두면 안 되고, 그 기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추적하여야 합니다. 기적만 보고 그 기적이 인도하는 주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헛다리 짚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기적 자체만 보았지, 그 기적으로 주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주 예수님이 하나님을 뜻을 온전히 이루려고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기적을 신기해할 뿐이지 그 기적으로 주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를 못하면서 예수 믿는다고 큰소리치고, 지금도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악다구니를 씁니다. 이것을 소경이라 합니다. 기적을 일으켜 주면 기적만 홀라당 따먹고 나면 또다시 와서 “기적을 주세요.”라고 합니다. 악다구니를 쓰는 그 인간에게 바람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고 성도들의 바른 도리는 주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주 예수님께서 왜, 이런 기적을 일어나게 하셨는가를 탐사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인가를 살펴봅니다. 한 번은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리 가나를 지나가십니다.
그런데 그 옆 동네에 왕의 신하가 살고 있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권세 있는 집안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그 집에 아들이 병이 들어서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가나는 주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곳입니다. 이런 곳에 주 예수님께서 출행을 하셨으니 온 동네가 시끌벅적한 것입니다.
금 새 소문이 이웃에 있는 가버나움이라는 동네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갈릴리에서 가버나움까지 걸어서 약 4시간 거리인데도 왕의 신하는 주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이 사람이 주 예수님을 찾아간 것은 일전에 가난 혼인 잔칫집에서 기적을 일으킨 것을 듣고 기억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분이라면 자기 아들 병 정도는 고쳐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아침 일찍 채비하고 떠나 어찌하여 오후 1시쯤에야 주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곤 자신은 왕의 신하라고 신분을 밝힙니다. 왕의 신하라면 지금 식으로 말하면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시는 청와대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주 예수님도 거절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리고는 우리 아이가 지금 고열로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빨리 가셔서 좀 고쳐 달라고 주 예수님에게 간청을 합니다. 너무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 직접 이렇게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뜬금없이 너희들은 도무지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날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 예수님은 따라갈 생각은 하지 않고 아들이 다 나았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것을 왕의 신하보고 믿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 신하는 믿고 갔더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이튿날 집으로 돌아가다가 종들을 만나서 아들이 낫게 된 것을 알게 됩니다. 아마도 종들이 밤새도록 기다려도 주인이 오지 않으니 아들이 나은 것을 기별하려고 올라온 모양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오직 단 [하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도대체 누구냐?]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병 고침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느냐?]입니다. 병 고쳐주신 것하고 주 예수님하고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앙은 주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를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주 예수님을 세상에 복을 주는 분으로 알면 그 사람은 일평생 주 예수님 앞에 나와서 복을 달라고 할 것입니다. 병을 고쳐주는 분으로 알면 병을 고쳐 달라고 할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마다 교인마다 신앙의 모습들이 각양각색으로 나타나는 것은 모두가 주 예수님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같은데 그 뚜껑을 열어보면 다 다릅니다. 다 다른 예수입니다. 왜 그런 것이냐면, 이는 각자가 주 예수님에 대하여 다르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많은데 성경에서 제대로 말하고 있는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참된 주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바로 아는 이것은 교회에 충성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해서 이 백성이 망한다고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호세아 4:6절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