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본향을 찾아 가는 인생

작성자김요한목사|작성시간21.02.12|조회수202 목록 댓글 0


본향을 찾아 가는 인생

히브리서 11:13~16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4:7~11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어느 나라든지 사람이 사는 곳에는 고유한 명절이 있습니다. 명절은 하나의 축제입니다. 축제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함께 즐기는 행사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이 축제입니다. 특히 우리는 날마다 예배드리는 것이 명절이요 축제입니다.

어떤 종교는 늘 초상집과 같아 늘 제사지내는 일을 주로 하는 종교가 있고 어떤 종교는 세상과 떨어져 심산유곡에서 조용히 지내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늘 축제와 같은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노래인 찬송이 있고, 감사가 있고, 사랑의 떡을 떼는 교제가 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찾는 풍속이 있습니다.

지난 추석때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대 이동을 하였습니다. 고향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고 많은 시간이 걸려도 기를 쓰고 고향을 찾아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모든 인간이 잃어버린 낙원 즉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듯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아무리 낙후된 시골이요 오지라도 고향에 가면 포근함과 옛날의 따스한 정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어머니 품은 언제나 그리운 것과 같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6.25전쟁이후 남북의 분단으로 인하여 많은 실향민들이 살아생전 고향 땅을 가보려나 하는 기대 속에 살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타계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옛말에 “서럽다 서럽다 타향살이, 처가살이보다 서러울까?”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자성어에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우도 죽을 때는 제가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향하여 죽는다는 말입니다. 짐승도 그러한데 사람이야 더할 나위가 있느냐는 의미로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에 나가 돈을 벌고 평생을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죽으면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와 묻히는 것을 봅니다. 모천을 떠난 연어가 수백 만 키로를 돌아서 다시 모천으로 돌아옵니다. 귀소본능입니다. 낙엽귀근이라고 낙엽도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1.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태어나 자라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고향을 다른 말로는 본향(本鄕)이라고 합니다. 즉 “본디 태어난 곳”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에게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있습니다. “네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 즉 당신은 어디서 온 사람입니까? 라는 뜻입니다. 즉 사람은 어디서 태어나고 온 곳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육신의 고향이 있는 것처럼 영혼의 고향이 있고 마음의 고향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원래의 고향은 두 곳이 있습니다.

즉 육신의 고향과 영혼의 고향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육신은 흙으로 만드셨고 영혼은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사람을 아담이라고 하는데 아담이라는 말의 뜻이 “사람”이고 또한 “흙”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육신은 본래의 고향인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땅에다 장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하관식을 하면서 선고를 합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고 선고를 하고 땅에다 장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영혼은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즉 옛날 집 또는 본래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것은 영원한 고향을 찾는 연습과 같고 고향을 찾아 가면서 인생의 근본적인 교훈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든 사람들이 본향 즉 고향을 찾는 자라는 것입니다. 명절을 보내면서 고향을 찾는 자신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에게는 본래의 고향이 있음을 알고 이 땅에만 연연하지 말고 영원한 본향을 그리워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우리는 나그네 인생으로 삽니다.

13절에 보면 먼저 간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사라나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따라 죽고 기업을 받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외국인으로 살다가 갔다는 말씀입니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국적이 이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이 자기의 영원한 고향이 아니고 본향에서 온 외국인으로 살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한 평생은 나그네 인생길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11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거류민”이란 영어로 alien(엘리언)인데 그 뜻은 외국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그네를 우리말 사전에 보면 “고향을 떠나 객지에 있거나 여행 중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나그네라고 합니다. 단어의 뜻은 타향살이, 유배생활, 유랑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용어로는 순례자라는 뜻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본향인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그네를 헬라어로는 “파로이쿠스”라고 하는데 그 뜻은 “일시적으로 외국에 체류하면서 생활하는 거류민 또는 길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 외국인으로 나그네 인생을 살다가 본향인 저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이 세상이 영원한 본국인줄 알고 세상에만 연연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죽어 땅에 장사지낸 사람은 자기 무덤의 비에 무엇이라 써있는지 알지 못하며, 한 사람도 무덤에서 나와 자기 비석을 읽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 세상에서의 인생은 거류민이요 나그네인생 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애굽으로 피난을 와 애굽의 왕 바로 앞에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바로가 물었습니다. “네 나이가 얼마뇨?” 옛날 번역에는 “네 연세가 얼마뇨?”라고 했습니다.

그 때 야곱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 이니이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파란만장한 일생을 산 야곱은 자기의 살아 온 인생길이 “나그네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나이가 얼마입니까? 우리는 나이를 물을 때 “몇 살입니까?” 또는 “몇 살 먹었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여기 “살”이란 말은 “삶”을 뜻합니다. 그래서 타향살이, 머슴살이, 더부살이, 셋방살이, 처가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삶을 말할 때 “살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도 참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먹는다.”라는 말은 몸 밖에 있는 것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즉 나의 것으로 소유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기의 것으로 소유한다는 뜻입니다.


3. 본향을 사모하며 삽시다.

본문 16절에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다시 본향을 향하여 달려가는 존재입니다. 마치 자동차나 비행기가 가는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길도 마지막 종착지인 본향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본향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더 나은 본향”입니다. 이 세상과 비교가 안 되는 더 나은 본향입니다. 그래서 더 나은 본향은 즉 더 나은 나라라는 뜻입니다. 나그네살이를 하는 이 세상과 비교가 안 되는 더 나은 본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으로 아벨에서 시작하여 모세까지 16명의 믿음의 장부들의 신앙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결 같이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본문 16절 하반절에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였느니라”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을 위하여 장차 거할 한 성을 예비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5:1절에도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는 아주 좋은 집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예비한 하늘나라에 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80-90년 사는 이 땅에서는 넓고 많은 땅을 가지고 있고 집도 여러 채가 있고 아주 저택에서 산다고 하여도 영원히 살아야 할 하늘나라에는 집이 없다면 이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시편 90:9절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瞬息間)에 지나갔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짧습니다. 언제나 본향을 그리워하며 준비 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저는 그 해답이 벧전 4:7-11절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답을 주신 말씀입니다.

첫째, 7절 말씀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인생 헛되게 살지 말고 신앙적인 바른 정신을 차리고 삼가 모든 일에 근신해야 합니다. 교만하여 꺼덕거리지 말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진지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8절 말씀 “무엇보다도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이 식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 간에 가족과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 뜨겁게 사랑하라는 말의 원문의 뜻을 아주 깊이있게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셋째, 10절 말씀대로 “은사를 받은 대로 청지기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지나친 욕심이나 인색함을 조심해야 합니다. 청지기가 되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인 말씀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