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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산책(268) 정죄함이 없는 세계(3)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3.04.08|조회수63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산책(268)

 

정죄함이 없는 세계(3)

 

사람이 자기 눈에 보인 대로 심판자가 되어서 이러쿵, 저러쿵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서 가짜 하나님 행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노릇을 하고 하나님 행세를 하는 자가 그 누구라 할지라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긍휼이 없는 심판을 베푸십니다.

 

에스겔 9:10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가짜 하나님 노릇 하다가 긍휼이 없는 심판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십니다. 가짜 하나님 노릇하는 자기 백성들의 모든 허물과 죄를 보듬고 주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죽게 하십니다. 예수의 피로 자기 백성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제 예수 안에 사는 자들은 어떤 정죄함도 받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몸 된 자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더는 선과 악이라는 법으로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심판자가 되어 살아간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 것입니다.

 

로마서 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빌립보서 3:18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눈이 밝아 가짜 하나님 노릇을 하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십자가에서 다 끝장을 내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짜 하나님 행세를 한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합니다. 그 무서운 결과는 멸망이라고 19절에 말합니다.

 

빌립보서 3:19절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판단하고 살지 않습니다. 정죄하는 심판자가 되어서 형제들을 심판하며 살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두 한 형제가 되었고, 한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13~14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주 예수님의 은혜로 살기에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 안에 있으면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 예수님 안이냐!”, “주 예수님 밖이냐!”로만 판단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으로 죄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예수 안이냐!”, “예수 밖이냐!”로 판단하십니다.

 

“너의 소속이 어디냐?”로 판단하십니다. 주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 어떤 것으로도 정죄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 밖에 있으면 그 어떤 선행도 정죄의 대상일 뿐입니다. 주 예수님 안은 무조건 용서이고, 주 예수님 밖은 무조건 죽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십니다.

 

이 세상은 선악의 법으로 다스려집니다. 선악의 법이란, 반드시 선이냐 악이냐 심판성을 행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인간의 자기 몸 중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세상에 모든 인간마다 자기 몸 중심의 선악의 기준으로 다스려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두가 법이 다르니 동일성이 없습니다. 똑같은 일을 가지고도 자기 유익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선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악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공동의 유익을 위한 법을 만든 것입니다. 인간들이 모여서 국가를 만듭니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 통치합니다.

 

그런데 국민 개개인이 다 판단하는 것이 다르다니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사회중심, 국가 중심의 법을 만들어서 통치합니다. 국가에 유익을 주면 선한 사람이라고 해서 혜택을 주고 국가에 악을 끼쳤을 때는 벌을 가합니다. 사람들 공동체에서는 타인에게 이로움을 주면 선이 되고 해를 주면 악이 됩니다.

 

이것을 사회적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규범(規範)은 도덕(道德)이라고 하고 사람과 사람들 간의 규범(規範)은 윤리(倫理)라고 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는 세상이 정한 법에 따라서 선을 행하면 상을 받고, 악을 행하면 죄로 규정해서 사회로부터 격리해서 징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가짜 하나님 노릇을 하고 가짜 하나님 행세를 하는 죄에서 건지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서 죽는 방식으로 처리를 하십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서로 물고 뜯는 것을 해결하려고 법을 만들어서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던 여인을 잡아 와서 주 예수님 앞에 세웠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먼저 자신들의 법으로 처리법을 알려 줍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율법에 보면 간음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주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처리할 것입니까?” 바리새인들이 지금 주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 예수님은 “난 정죄하지 않겠다.”라고 하십니다.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따지지도 않고 은혜로 용서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난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 선이다, 악이다 판단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과 주 예수님은 똑같은 사건을 가지고도 처리 방법이 다릅니다. 하나는 죽이고자 하고, 다른 하나는 살리고자 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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