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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산책(272) 정죄함이 없는 세계(7)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3.04.10|조회수46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산책(272)

 

정죄함이 없는 세계(7)

 

신약식으로 말하면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마다 주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보면 주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떠올라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주님이 대신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말씀을 지키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두 번째 돌 판을 주신 의미를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을 대적한 자로 간주가 되어서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볼 때 “그래 한번 지켜볼꺼야!”라고 접근하면 안 됩니다. “내가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주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셨구나!”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사는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안 지킨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계약이 깨어져 파기됐기 때문입니다. 돌판은 언약을 상징합니다. 깨어진 두 돌 판을 옛 언약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주어진 두 돌 판은 새 언약을 상징합니다. 옛 언약을 붙잡으면 다 죽습니다. 두 번째 언약인 새 언약을 붙잡아야 삽니다. 새 언약은 긍휼이 여겨 주셔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지, 율법대로 살아서 하나님께 자랑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율법을 주신 목적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율법을 가지고 간음한 여자를 고소하는 바리새인들이 큰 착각을 한 것입니다. 여자를 고소하던 그 율법이 도리어 자기를 고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을 잡으려다가 자기가 걸려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과 율법을 못 지키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상관없이 모세의 생명을 담보로 구원해 주었는데,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의로워지려고 한 것입니다.

 

의(義)는 모세의 생명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켜서 의(義)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식이 아버지에게 “내가 공부 잘하면 아들 시켜 주실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들이라는 신분은 공부 잘하고 못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유대인이 그 짓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자기 행위로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행위로 천국 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들이 만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만약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지금 간음하는 여인을 잡아 와서 주 예수님을 시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폐기 된 언약으로 주님께 따집니다.

 

이미 폐기된 언약으로 “죽여야 합니까?”, “살려야 합니까?”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죄용서 받은 영역에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 “용서해 주실래요!” 그럽니까? 그래서 주 예수님은 과거 하나님이 모세에게 손수 돌 판에 글씨를 써 주셨듯이 지금 바리새인들에게 글씨를 써주고 계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땅에 글씨를 두 번 쓰시면서 “너희들이 이 여자를 정죄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너희들이 말하는 율법대로라면 너희도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법대로 하자고 하는 것은 난 죄인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똑같은 죄인이 죄인을 정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스라엘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모세의 목숨을 담보로 주신 은혜 때문이지 그들의 행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니 행함을 근거로 나오면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해야 정답입니다.

 

옛 언약이란, 인간의 행위를 담보로 맺은 언약이지만, 새 언약이란, 주 예수님이 대신 죽음으로 맺은 언약입니다. 그러니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는 정죄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이 대신 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주 예수님 안은 정죄가 없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선악 아래 있으니 정죄함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이 이 세상과 다른 정죄함이 없는 세상을 몰고 오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몰고 오신 세계가 “이런 곳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들은 알아먹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주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함이 없는 세계에 있습니다. 인간의 행함 때문에 참소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단독으로 대하지 않고 주 예수님 안에서 대하십니다. 주 예수님 안에서 대한다는 것은 우리를 보지 않기에 주 예수님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주 예수님 안에 있으면 주 예수님도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주 예수님이 만약 우리를 보고 “너 왜, 간음 했어! 그러니 천국은 취소야!”라고 하시면 우리는 “아니 우리 행위와 상관없이 구원해 준다고 했잖아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령님이라는 보증으로 준 계약서를 내 밀어야 합니다.

 

“보세요! 우리 행위와 상관없이 예수의 피로 구원해 준다고 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물론 지은 죄는 예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하고 주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신서에서 무려 164번이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라고 강조합니다.

 

지금 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도 정죄함이 없는 세계 안에 있다.”라고 알려 주고 계십니다. “나도 너희를 정죄하지 않으니 너희도 남을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정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은 지금 자신이 정죄의 세계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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