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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산책(277)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2)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3.04.22|조회수87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산책(277)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2)

 

“내가 했다”라는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의로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바라본 율법 관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대로 산 것을 의로 여겼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율법 안에는 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당초 율법 안에 의를 담아 놓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의를 만들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인간 속에 죄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율법을 준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 외에 다른 의(義)라고 말합니다.

 

율법 외에 다른 의(義)는 바로 주 예수님의 의(義)라고 합니다. 그러면 율법이 어떻게, 왜, 주어졌습니까? 율법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율법과 상관없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율법은 아브라함이 죽고 난 430년 후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 3:17~18절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아브라함에게 먼저 언약이 주어지고 난 후 430년 후에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먼저 주신 언약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복에 조상 만들어 주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조건을 보고서 네가 앞으로 이렇게 하면 복에 조상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냥 무조건으로 일방적으로 했습니다.

 

이게 미리 정하신 약속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하나님 마음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일방적인 약속을 하나님 자신이 지켜내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에 조상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아브라함은 멀뚱히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에게 한 약속을 지켜내는지 구경하면 됩니다.

 

이게 자기 능력으로는 도무지 생산할 수가 없는 아들을 낳는 사건으로 보여주십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불가능 속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러니 이삭은 아브라함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 아들입니다. 이 이삭이 신약에서 주 예수님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이삭은 장차 오실 메시야의 예표적인 인물입니다.

 

아무튼지 위의 말씀에서 율법이 앞에 주어진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는 율법을 어긴다고 하여도 약속은 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도 구원이 취소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율법을 지키든지 안 지키든지와 상관없이 유지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에 근원으로 삼은 것은 율법과 상관없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율법으로 아브라함이 받은 은혜 언약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이 율법대로 안 산다고 할지라도 은혜로 주신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그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광의적인 의미에서 아브라함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과 상관없이 이미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과 상관없이 이미 하나님 백성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 지키면 탈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러니 성도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든 안 지키든 상관없이 구원은 확정된 것입니다. “너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구원이 취소될 거야! 그따위로 예수 믿어서 천국에 가겠느냐!”라는 것은 종교인들이 만든 거짓말입니다.

 

구원의 문은 인간의 행함을 떠난 은혜 아래 있기에 “그따위로 믿어서”라는 말이 성립이 안 됩니다. 은혜로 구원이 되었으면 그따위로 믿어도 구원을 불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게으름을 합리화하거나 죄를 조장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혹여 이런 자들이 있을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건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가 있다고 경고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의 순종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구원은 확정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 흔들림이 없어야 성도입니다. 만약에 자기 행함으로 인하여 구원이 흔들린다면 그는 성령님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罪)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이미 그는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은 이미 거듭난 성도에게는 과거시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은 절대로 ‘안전’합니다. 구원의 과거 시제인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은 의롭게 됨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매 순간 죄의 세력과 죄의 법과 싸워야 할 죄의 능력으로부터 이겨야 하는 구원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성도는 죄의 습관과 죄의 지배에서 ‘구원받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해 죽으셨지만, 죄 자체를 없애 버리시거나 그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가 우리에 대하여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은 존재이고(롬 6:6-11), 율법에 대하여 죽은 존재이고(롬 7장),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존재입니다(갈 6:14).

 

성령님을 따라 살지 않고 육신적으로 살면 죄를 짓고 징계를 받습니다. 성도가 매일의 삶을 살면서 범죄 할 때마다 자백함으로써 죄의 능력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에 힘입어 죄를 씻을 수가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시제는 자백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현재시제인 죄의 능력으로부터의 구원은 성화(聖化)와 관련이 있습니다. 죄(罪)의 임재로부터의 구원(미래시제)은 몸이 구속받는 순간 영원히 죄의 몸으로부터 구원을 말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는다는 의미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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