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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산책(282)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7)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3.04.22|조회수46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산책(282)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7)

 

그렇다면 한다면 그게 어찌 한 성령을 마시고 예수 안에 한 몸이라고 말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어떤 형제가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데 말로만 생각하는 척하면 무엇 하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삶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형제가 나와 한 몸이라고 여겨진다면 그냥 모른 척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형제 속에 주 예수님이 보이면 어떻게 외면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와 같은 이런 말씀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도 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비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양들이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대한 것을 주 예수님에게 대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은 복음 전하는 자들을 한 몸으로 보았기에 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에서 지극히 작은 형제그 당시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당시 복음 증거 자들이 모습이 헐벗었습니다.

 

굶주리고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유린당했습니다.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험한 꼴을 복음 증거 자들은 당한 것입니다. 양들은 그런 자들을 주 예수님 안에서 한 몸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조건 없이 그들을 보살핀 것입니다. 그러나 염소들을 그들이 한 몸으로 안 보이니 염소들은 조건을 보고 따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내 형제들아 너희가 진정으로 믿음 안에 있다고 한다면 다른 말로 주님 안에 있다고 한다면 가난한 형제를 보고 한 몸처럼 대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야고보 사도는 우리더러 행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없는 것을 노력해서 만들어 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2:14~20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 아니고 너희 안에 이런 형제 사랑이 있는지 보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 안에 이런 형제 사랑이 만약에 없다면 그건 죽은 믿음이고 귀신의 믿음이다.”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들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풀어져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함은 분리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런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율법이 되어서 우리 신앙의 허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서면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여지없이 고발당합니다. 이 말씀이 율법처럼 너 왜, 주 예수님의 몸으로 너 좋은 쪽으로 살고 있느냐?”라고 고발합니다.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 점점 썩어가고 산 나무에 물을 주면 시절을 좇아서 생명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화합을 이루는 사람은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알아가기에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풍성해져 갑니다. 그 여유롭고 풍성한 것들이 삶으로 표현됩니다. 인간들이 잘나고 못남이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무가치하다는 것을 아니까 무덤덤해집니다.

 

하지만 믿음이 지식으로 쌓이게 되면 말씀을 법으로 만들어서 스스로 자기가 만든 법에 가두어져 옴짝달싹 못하고 메말라 갑니다. 지식은 반드시 옳으냐?”, 그르냐?”판단하게 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지식으로 말씀을 듣느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수록 심령이 강퍅해져갑니다. 법관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성도는 법에서 이미 해방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법에서 해방 되었다는 것은 법으로 판단 받지도 않고 법으로 가둘 수 없다는 말입니다. 법으로 판단 받지도 않고 법으로 가둘 수 없는 세계정죄함이 없는 세계라고 합니다. 주 예수님이 이런 세계를 우리에게 몰고 오셨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남을 그 어떤 것을 가지고도 옳다 그르다 법적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비록 자기 신앙과 다르다고 해서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법에 맞지 않기에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똑같은 사건을 가지고도 남은 전혀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만 문제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만 옳고,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다 틀린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런 것은 그 사람 안에 선악의 법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같이 넌 옳고! 넌 틀렸어!”라고 상대를 심판해 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선악과는 심판의 기능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선악과가 규정하는 심판을 행사하게 됩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선악과 속에 가두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선악과가 주는 정보로 하여금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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