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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산책(283)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8)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3.04.22|조회수77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산책(283)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8)

 

악과가 주는 정보는 자아 중심의 정보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정상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나면 선악과가 주는 세계관에 가두어져 버립니다. 선악과가 주는 세계관은 자아 중심의 세계입니다.

 

이러면 선악과를 먹은 그 사람의 시각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립니다.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면 자기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모두가 심판권을 행사하는 하나님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각자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가진 것입니다.

 

선악의 법 아래 있는 세상에서는 선과 악이 정형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다릅니다. 내게 선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악이 됩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유익을 기준으로 삼아서 선이다 악이다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내 편을 들어주면 선이고, 반대하면 악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말이 곧 자기 중심에서 자기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심판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좋다고 하는데 자기 입장에서 좋지 않으면 악이라고 심판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았다고 하는데도 자기하고 다르다고 아니라고 정죄해 버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충고하면서 자신이 본을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자기가 고기 먹는 것 때문에 실족한다면 자기는 평생 고기 안 먹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연약한 형제가 넘어질 것이라면 앞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6절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나는 모든 것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만, 행여 믿음이 약한 형제가 나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고 실족하면 안 되니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양심은 우리 것이 아니고 형제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살면 되지”라는 것은 말은 맞는데 교회 안에서는 금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이 다 같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채소를 먹고 어떤 사람은 고기 먹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 먹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일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못 지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행함으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앉고 일어서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하시니 두고 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할 것은 잘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다리고 참아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도록 두지 않고 자기가 나서서 자기가 심판하느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나서서 심판한다는 것은 자기가 정한 기준에 못 미덥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온전하고 다가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려가는 것은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들 기준으로 세리와 창기는 지옥에 간다고 확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리새인을 지옥에 보내고 세리와 창기를 천국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 판단이 바리새인의 판단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것입니다.

 

나는 옳다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다 쫓아내고 잘라 냈는데 그들이 먼저 천국에 갈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발 하나님의 일하심을 자신의 시각에 자기 세계관에 가두지 마십시오. 신앙이란 내 세계관을 버리고 하나님 세계관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관은 정죄함이 없는 세계관입니다.

 

하나님의 세계관으로 들어가면 내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준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내게 가두지 말고 내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야 나와 다름도 용인 할 수가 있어집니다. 내가 심판권을 행사하지 않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의 신앙을 사람의 성장에 비유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초보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장성한 분량까지 자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알아간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말하는 사랑은 주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말해줍니다. “내가 어린아이일 때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모든 것이 어린아이 같은 행사를 하는데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 때 일을 다 버린다.”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실수가 많고, 모든게 미숙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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