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05. 사도행전 강해

홀연히 하늘로부터 오는 큰 빛이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3.06.06|조회수8 목록 댓글 0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사도행전 22장 1-3절『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사도바울은 예루살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변론했다. 바울은 디아스포라였지만 히브리어를 말했다. 그의 첫 변론에서 바울은 분노한 예루살렘의 군중들 앞에 서 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쳤던 군중들을 연상케 한다. 바울의 앞에 있는 군중들은 모두 바울을 혐오하며 미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궁중 앞에 변론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군중 앞에서 그동안 유대인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자신은 모세의 율법을 어길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내용으로 자신을 변론하고 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 『나는 죄가 없으니 풀어달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세의 율법에 관해 누구보다 열심이던 자신은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감옥에 가두며 죽이기까지 하였던 자신의 지난 과오를 이야기한다. 가말리엘 문하라는 것은 가말리엘 이라는 학자의 제자였다는 말이다.

22장 4-5절『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군중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입장에서 바울을 죽이려 했다. 그들 앞에 바울은 자신도 이전에 군중 속에 한 사람이라 소개하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22장 6-8절『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다메섹에 가는 길에 바울은 하늘로부터 큰 빛에 둘린 채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가 누구인지를 묻었다. 그 음성은 예수님이셨다. 그 순간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예수님과 대면하는 그 체험 순간이 바로 바울에게 있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이유가 된다. 성경에서 교리적인 것보다 예수를 만나는 체험이 중요한 것이다. 체험은 성령을 받는 것과 같은 신비한 것들로서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하나, 오늘날에서는 어떤 것들은 이단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22장 9절『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빛은 물리적인 빛으로, 다른 사람들도 보았다는 것이다. 바울만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눈은 괜찮은데, 바울만 눈이 멀어진 것이다. 성경의 교리적으로 그리고 내가 믿습니다 라는 마음의 결단으로 하는 신앙보다 이런 체험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믿음의 강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독교의 신앙이 무조건 체험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대교 신앙은 하나님 음성을 듣거나 다른 표적과 기사를 강조한다.

22장 10-11절『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유대인들은 구약시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광채가 나면 얼굴을 가리거나 돌아서서 하나님과 말을 하는 것이다. 바울이 빛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신비한 체험을 했으며, 그도 역시 주님께 여쭈어보았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닌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들었다. 구약시대 대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를 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대부분 신도들이 일방적으로 기도하고 끝난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화를 했다고 한다.

22장 12-13절『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다메섹으로 들어가서 바울은 아나니아를 만나게 되고 눈을 다시 보게 된다.  

22장 14-15절『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주님은 바울에게 자신의 뜻을 알게 해주시고, 의인(예수 그리스도)을 보게 하시고, 음성을 듣게 하셨다는 말이다. 이 세가지가 중요한 핵심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바울의 지난 과거를 들춰내시거나 그 죄로 인한 어떠한 형벌도 내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주님은 바울을 만나주시면서 사역자로서 사명을 주신 것이다. 주님은 바울에게 사역자로서 첫발을 이러한 신비한 체험을 다른 사람에게 증언하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 주님께 영광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