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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점검 메시지

[신앙점검 칼럼-17] “뱀이 미혹하는 방법”

작성자김요한목사1112|작성시간25.01.26|조회수74 목록 댓글 0

[신앙점검 칼럼-17]

뱀이 미혹하는 방법

 

사람이 죽는 것은 생명과를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뱀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뱀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과로부터 관심을 멀어지게 하는 작전을 폅니다. 그래서 뱀은 선악과로 여자에게 접근합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여자의 관심사를 선악과에 붙잡아 두고자 함입니다.

 

창세기 3: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여자는 선악과를 보는 순간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움에 푹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는 선악과 속에는 인간의 눈을 사로잡아 두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와 생명과는 신약적인 의미로 보면 두 부류의 ()두 부류의 언약(言約)을 말합니다. 선악과율법의 의()옛 언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생명과주 예수님의 의()새 언약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언약이 있습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이 있습니다.

 

옛 언약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새 언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뱀은 옛 언약으로 새 언약을 가리는 방식으로 미혹합니다. 뱀은 율법의 의로 인간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율법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눈이 율법에 고정되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붙잡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말씀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쪽으로 과녁이 옮겨지게 됩니다. 뱀은 에덴동산에서처럼 먹으면 죽을 것에 인간의 관심을 붙잡아 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먹으면 죽을 것이 인간의 눈에 매력적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옛 언약은 인간에게 영광을 주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의는 인간의 가치를 상승시켜 줌으로써 인간들 눈에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선악과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율법 신앙을 선호하게 됩니다. 십자가 도는 인간을 부정하지만, 율법 신앙은 인간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 사람들이 십자가 도를 싫어하고 율법을 좋아합니까?

 

그것은 그 속에 자기 자랑과 자기 영광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은 말씀을 지키는 주체의 문제로 남게 됩니다. 새 언약은 말씀을 지킬 주체를 주 예수님에게 둡니다. 그러나 옛 언약은 말씀을 지켜야 할 주체를 인간에게 둡니다. 옛 언약 신앙은 인간이 영광을 차지하게 됩니다.

 

율법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항변합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귀는 사람들에게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적질하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도적질한 영혼에게 번민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착하게 사는 영혼들을 칭찬하고 권면하며 신앙인의 표본처럼 떠받들게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선악 구도가 선악과에서 나온 선과 악으로 나누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도적질를 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도적질을 한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담이 수치를 가리려고 무화과나무로 치마를 해 입은 것과 같습니다. 수치는 아담이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가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흠 없는 제물을 죽여서 그 가죽옷으로 가려주셔야지만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화과나무로 치마를 만들어 입도록 합니다.

 

그것이 자기 행위로 인하여 웃고 울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의 미혹에 빠지면 착하게 산 사람은 그 의로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반면에 나쁜 짓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숨게 됩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죄이고 불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법 아래서 살지 말고 은혜 아래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말씀을 지키는 법의 세계에서 나와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는 은혜의 세계 안에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선악과를 먹느냐 안 먹느냐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삶의 주소를 선악과라는 동네에 붙잡아 두면 그것으로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어느 자리에 있느냐의 싸움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화두(話頭)를 던진 것은 곧 여자의 관심사를 뱀의 세계인 선악과에 묶어 두고자 함입니다. 선악과라는 동네에 살면 생명과라는 동네에는 자연히 발길을 끊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뱀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율법을 어기도록 부추기지 않습니다.

 

선악과라는 동네에 주소를 두고 살면 뱀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뱀은 다만 우리를 율법에 묶어 두고 율법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도록 할 뿐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뱀의 통치를 받고 사느냐, 주 예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느냐싸움입니다. 내가 어느 자리에서 누구의 통치를 받고 사느냐의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와 접촉해서 누구의 공급으로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선약과를 선택하면 마귀와 접촉하여 마귀를 공급받고 마귀로 살게 됩니다. 하지만 생명과를 선택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공급받아 주 그리스도로 살게 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율법이라는 동네에서 은혜의 동네로 이사를 하여서 율법과 상관없이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악의 법 아래 있는 자는 말씀대로 사는 것을 신앙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반면에 생명의 법 아래 있는 사람은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는 것을 신앙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이 시대 경건주의를 표방하면서 성도의 눈길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멀어지게 하는 성화주의 뱀의 말을 조심하십시오. 뱀은 미혹한 놈입니다. 뱀은 사망으로 이끌고 가는 놈입니다. 뱀의 간사한 혀는 하와가 속아 넘어가기에 탁월합니다. 이놈한테 걸리면 결국은 멸망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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