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은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또는 풍류를 가지고 흥을 돕는 것을 업으로 삼는 계집, 곧 기녀를 말한다. 그러나 조선조의 기생은 오늘날의 몸을 파는 술집 작부와는 차원이 다른 예기(藝妓)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송도의 기녀 황진이와 같이 아무리 고관대작이라 할지라도 예와 인격이 모자라면 몸을 허락하지 않았던 특수집단이었다.
한양에는 궁궐이 있어서 궁중 안의 연희 봉사자 노릇을 하는 관기가 있는데, 그들은 18세기부터 산업이 발달하면서 일부의 관기들이 조금씩 궁궐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궁중의 기생들이 민간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면서 지금의 탑골공원 뒤편과 마포지역, 그리고 남대문 바깥 등지로 색주가가 형성되었다. 색주가의 위치는 기생들의 주된 일터인 관청과 가까운 곳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궁중 기생들은 활발한 상업으로 거액의 돈을 쥐게 된 신흥 졸부들에게 춤과 노래와 웃음을 팔았다. 이것은 훗날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관기제도가 폐지되어 관기들이 기생집에 취업을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경우로 해석된다. 즉 공무 수행용 차가 은근슬쩍 민간 영업을 하듯이 궁중 밖에서 비공식적으로 접대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색주가가 형성될 당시 "서울의 쇠고기와 어물의 절반 이상을 안주로 소비하는 바람에 서울 시민의 찬거리 값이 폭등하는가 하면 젊은이들은 기생의 치마폭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일들이 허다했다"는 기록도 있다.
구한말 조선왕조가 멸망하면서 관기들은 정식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되엇다. 생존의 위기에 몰려 궁궐 밖으로 나온 기생들은 자신들의 서비스 내용에 따라 일패, 이패, 삼패로 나뉘어 경쟁을 벌였다. 쉽게 말해 이런 구분의 기준은 기생이 얼마나 품격을 갖췄느냐, 남자 손님에게 성적 서비스를 어디까지 제공하느냐에 따른 것이었다. 일패는 전통적인 조선 관기의 풍속 그대로 임금님 앞에서 가무를 선보엿던 품격있는 일급 기생이며, 이패는 재상집등에 출입했던 기생들인데 은밀히 매음도 했다고 하여 은군자에 빗댄 은근짜라고 불렀다. 가장 천박한 기생은 삼패인데 춤과 노래 같은 기예에는 능하지 못한 채 잡가나 부르고, 몸을 파는 작부들을 이른다. 그 중 관기 출신인 일패들은 당시 고급 요릿집 1호로 태어난 명월관 등의 기생집에서 민간인들의 술시중을 들며 전에 없었던 새로운 밤문화를 꽃 피운다.
이러한 기생에 대한 기록이 전하는 책들이 이능화 선생의 명저 <조선해어화사>와 청류강태랑(靑柳綱太郞)의 <조선미인보감> 등이다. 한편 <조선해어화사>는 동문선에서 번역본이 나왔고, <조선미인보감>은 민속원에서 영인본을 간행하며 해제를 붙였다.r그리고 성균관대 국문과 연구 교수로 있는 성무경의 <晉州敎坊 船樂 배따라기>(보고사, 2008, 119면, 7천원)와 <교방가요>(정현석 저,성무경 역주, 2002)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