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정이철
질문> “(0:10초부터)방언을 하는 사람은 통역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하세요. 집사님 한 분이 저에게 카톡 보내셨어요. 이번 주 간에 통변의 은사를 받았다고 대게 좋아하시더라구요. 방언이 무슨 말인지 몰랐었는데, 해석이 되지 얼마나 기쁘겠어요. 축하할 일이지요. 각양 은사들이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시면 됩니다. 주여! 세번 부르시고 ...” (안ㅇㅇ 목사).
답변>
안 목사가 방언기도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마이크 잡고 시연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또한 이단적인 신앙인지에 대해 이전에 설명드렸습니다. 보지 못하신 분들은 하단의 관련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안이 거짓 방언을 받은 사람들에게 거짓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구하라고 격려하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더욱 이단적이고 또한 사이비적인 내용입니다. 안이 거짓 방언을 받아서 사용하는 어떤 분이 자신의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받았다고 좋아하며 자신에게 보낸 카톡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그 더럽고 심각한 귀신의 장난질을 분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축하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이 쓰시는 목회자로서 자질이 그에게 1도 갖추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마이너스 상태라는 불행한 사실을 설명하겠습니다.
방언 통역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한국이 배출한 대표적인 사이비 목사가 예배 중에 스스로 방언을하고, 또한 그것을 스스로 통역하는 모습을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리피야 라사기파테 리시야다 로야로 바칸나기 리키키고 니카치 라시 카파타리 니미카키야 아파타 카카야 시키키고 바야 ....” (조ㅇㅇ의 방언).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너희는 내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구만리 장천 멀리 있다고 생각하느냐? 땅 끝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땅을 파야 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내가 너희 속에 들어와 있고 ...” (조ㅇㅇ의 자가 통변).
조ㅇㅇ의 방언과 그의 자가 통역하는 모습이 성경에 나오는 방언과 통변의 은사와 전혀 일치점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조ㅇㅇ처럼 속이는 영에게 잡혀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고전 14:27, 28).
방언 통역에 대한 말씀을 보면, 자기가 방언하고 자기가 통역하라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교회에서 두어 사람이 성령이 주시는 방언을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이 그들의 방언을 통역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일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 14:13).
그러나 거짓 방언에 빠진 사람들은 위 구절을 근거로 스스로 방언하고 스스로 통역하는 은사를 구하고 있고, 하나님이 그런 은사를 주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방언을 말하는(λαλέω, 랄레오) 자”에게 통역할 수 있기를 기도하라고 했지, "천국 언어" 또는 "천사의 언어"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통역하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의 “말하는”(λαλέω, 랄레오)이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9장 33절에서도 쓰였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λαλέω, 랄레오)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마 9:33).
벙어리였던 사람에게서 벙어리되게 만든 귀신이 추방됨으로 일상의 실제 언어의 기능이 회복되어 말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상황에서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이 가르치는 방언은 인간의 실제 언어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배운적이 없는 다른 나라의 말로 복음을 설명하는 은사가 주어진 사람은 그 언어를 통역하여 뜻도 함께 알 수 있게되기를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조ㅇㅇ처럼 자기가 방언하고 자기가 통역하면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오늘 날에도 방언과 통역을 통해 교회에 직통계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조용기의 저 모습이 바로 직통계시를 전파하는 이단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신앙의 절대적 기존이고 표준인 성경 66권의 위치가 흔들리게 됩니다. 조용기처럼, 누구나 방언과 통역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계시)을 받아내면, 모두 조용기처럼 “계시받는 자”입니다. 계시받는 자는 결국 이단입니다. 모든 이단 종교들은 계시받는 자를 통해 일어납니다.
방언, 통변 등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다는 사상은 이미 이단으로 규정된 신사도주의자들의 신앙입니다. 대표적인 신사도주의 거짓 사도 피터 와그너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예언, 방언, 방언 통역의 은사는 자연적으로 한 그룹으로 모아진다. 왜냐하면 다른 은사들과는 달리 이 은사들은 계시적인 은사로 불리우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정보(information)들이 계시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인간에게 직접 전달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련의 계시들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피터 와그너).
피터 와그너의 이단 신앙처럼, 오늘 날 방언을 하고 스스로 통역하게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받는 이단입니다. 계시받으면서 이단이 아니고 정통신앙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방언과 통역을 권장하는 안목사 한번 말해 보기 바랍니다. 방언을 권장하고, 방언통역까지 하라고 신자들을 격려하는 안은 심각한 일을 하는 이단입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자신만 이단이 아니라 또 다른 이단을 육성하는 "이단사육사"의 길을 가는 불쌍하고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올바른 신자들은 피터 와그너처럼 하나님께서 지금도 방언, 통변 등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직접 계시를 주신다는 이단들의 신앙 이론을 지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계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는 방식은 다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손상되지 않고 가감되지 않도록 그들의 마음에 성경의 감동하심을 베푸시어 말씀을 받아서 기록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가 임할 때, 다양한 수단들이 동반되었습니다. 꿈, 환상, 음성 등이 많이 동반되었습니다. 신약의 초기에는 구약에 없었던 계시적인 은사였던 방언, 다시 말해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신이 사는 곳에서 배우거나 경험하지 못한 이방인의 언어로 하나님이 시키시는 복음의 말을 전하는 특별한 방언이 나타났습니다.
신약의 초기의 방언은 선민이라 자부하던 이스라엘의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자들을 버리시고, 대신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을 자기 백성으로 받으신다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선포하는 표적으로서 은사였습니다. 이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는 신약의 교회가 확고하게 설립된 후 신약의 방언이 다시 타났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 다음에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도저히 당시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자를 치료하는 특별한 이적도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포함됩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치병자를 고치는 이적이 왜 하나님의 특별계시였을까요? 제자들이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창조주이심을 드러내는 특별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계시의 완성” 또는 “예언의 종결”이라는 개념은 구원받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교회에 주어졌고 충분하게 기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는 신약 성경 27권이 교회에 주어짐으로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영혼들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말씀이 완성되었습니다.
구약 성경 39권과 신약 성경 27권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완성된 후 더 이상의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조용기 식의 방언, 통변 ... 그 외의 다른 어떤 형태로든 성경 66권에 기록된 말씀 외에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다른 말씀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것이 “계시의 종결” 또는 “계시의 완성” 개념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1,2).
위 내용은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인류에게 전해졌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인류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전해졌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 성경을 기록하는데 사용된 구약의 모든 특별한 사람들이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계시를 주시는데 사용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이 주어졌는데, 율법도 하나님의 특별계시입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죄지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합당한 형벌을 내리신다는 사실, 그리고 죄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죄용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계시되었습니다.
모세의 율법 이후에는 이사야, 에스겔, 예례미야 ... 등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가 이어졌습니다. 그 선지자들을 통해 주어진 계시의 주된 내용은 먼저 모세를 통해 보내신 율법을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신앙에 적용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이후의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배교 행위를 먼저 온 모세의 율법 계시와 비교하시며,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모두 외국으로 잡혀가 노예살이하게 만들겠다고 예언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에게 끌려가서 종살이하고, 남쪽 유대 백성들은 바벨론에 끌려가서 종살이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선지자들에게 또 다른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영원히 저주받아야 마땅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와 모든 허물을 대신 지시고 저주 받으심으로 아무 자격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분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은혜의 날이 온다는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사야 53장의 예언입니다.
다시 히브리서 1장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이고 최종적인 계시이고 완전한 계시이며, 더 이상의 다른 계시는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인류에게 구원을 위해 주신 마지막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역사의 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류에게 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신약 성경 27권으로 기록됨으로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계시의 완성” “계시의 종결” 개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계시가 주어졌었고, 이 모든 마지막 날, 하나님의 말세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지막으로 주어짐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을 통해 기록되어진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은 완전하고, 더 보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전에 계시가 계속 주어질 때 사용되었던 하나님의 특별한 방식들은 더 이상 교회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방언이나, 예언이나, 환상이나, 꿈이나, 음성이나,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 등의 성령의 특별계시 역사는 이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교회에 주어질 때 하나님이 사용했던 방법들입니다. 오늘 날 기도의 응답으로서 병고침의 역사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미 주어진 그리스도의 복음이 충분하고 완전하고, 더 이상 계시를 교회에 보충하거나 추가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방언, 예언, 환상, 꿈, 음성 등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 계시가 온다는 신앙을 Practice(실천)하는 안 같은 사람은 이단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교회의 2천년 역사에서 이와 합치되는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의 2천년 역사 속에서 실제로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방언, 통역, 환상, 꿈 등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받았고, 그것으로 교회를 더 은혜스럽게 도었다면, 저는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난 2천년 교회사에서 방언하고 통역하고 환상보고 꿈꾸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게시를 받았던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가 올바른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경했던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혹 정통교회가 이단으로 여기고 멀리했던 거짓 교회들 속에서 그런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대략 사도행전 시대 또는 요한계시록 이후부터 방언하고 통역하고 꿈꾸고 환상보는 사람은 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방언과 통변과 환상과 꿈과 영서와 성령춤 등은 미국의 이단들이 일으킨 1906년의 아주사 거짓 부흥으로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것입니다. 방언을 권장하고 특히 통변까지 권장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통변계시를 추천하는 안ㅇㅇ은 이단이므로 경계하셔야 합니다. 혹시 안ㅇㅇ이 방언과 통변으로 얻어지는 말을 무시하고 단지 소리를 즐기자는 차원에서 방언과 통변을 격려한다면, 굳이 이단이라고 할 것이 아니고, "어리석다"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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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위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0 지금도 금요기도회라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사람 한사람 머리에 안수하면서 방언과 통변으로
"지금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사기를 치는 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거 하면 사람들이 모여드니까 이런 사기가 통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종교 기술자들만 욕할 게 아니라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시장 논리에 따라 목사가 교인들 좋아하는 거 준 것인데 그 배후엔 복음의 광채를 가리려는 악한 마귀의 궤계가 있다는 것을 정작 당사자들이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 교회를 망친 두 가지가 기복주의 와 신비주의인데 이 두 가지는 결국 하나로 모아집니다. 인본주의 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인 교회는 찾아 보기 어렵고 전부 사람 이름 교회 이름으로 모인 종교 놀이터가 되어버린 것이 이 악한 세대입니다. 그래서 오고 오는 세대의 성도들을 향해 사도는 지혜 있는 자 같이 세월을 아끼라고 합니다. "때가 악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