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역시 성경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요5:39-40)
그러면 잠언은 예수님과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영생을 묻는 자에게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의 한 몸 된 교회에게 나누어지는 모든 생명의 은사로서 앎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역시 인생을 사는 교훈이나 방법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이 하실 일에 대해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계시하신 말씀인데 그 말씀을 자기 목적을 성취하는데 써먹으라고 가르치는 것이 오늘 세상 교회의 악한 행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잠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잠언에 나오는 지혜를 의인화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 지혜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는 처세술의 지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지혜입니다.
지혜의 말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지혜서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잠언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인류의 축적된 지식들의 모음을 잠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잠언은 여러 가지의 속담이나 격언으로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에도 교훈이 되고 경계가 되는 말들도 많습니다. 티끌모아 태산, 공든 탑이 무너지랴, 지성이면 감천이다 같은 많은 잠언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특별한 해석을 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잠언들이 한편 복음을 이해하는 일에는 방해가 되는 말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들은 결국 인생이란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는 인본주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경의 잠언은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겉으로만 보면 성경의 잠언도 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한 교훈과 경계가 되는 말들로 보입니다. 게으른 자들은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하는 내용이 잠언에 있습니다. 이런 내용만이 아니라 인생의 처세술과 같은 내용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서를 어떤 사람들은 세상 여러 나라의 지혜서들을 편집하여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혜의 말과 비슷한 내용들이 있다고 해도 세상의 잠언이라는 것과 성경의 잠언은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들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의 처음 자리가 어디인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우리의 처음자리가 어디입니까? 그리스도 안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가 바로 성전 짓는 일인 것입니다. 성전은 오실 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예표하는 것이잖아요. 한 예로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서 직접 찾아옵니다. 솔로몬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니 모르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과 그 신하들의 모습을 보면서 솔로몬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서 이런 지혜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신하들이 복이 있는 것은 이러한 지혜의 말씀을 듣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스바 여왕의 태도가 바로 여호와에 대한 경외입니다. 이것이 참된 지식이며 참된 지혜입니다. 오늘날도 잠언을 올바르게 이해하면 그 지혜를 주신 분 곧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하고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처세술이나 행복한 인생살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것입니다.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잠1:7) 예수님이 그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있지요 마태복음 12:42절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스바 여왕이 남쪽에서 왔기에 남방 여왕이라고 합니다. 이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하여 땅 끝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솔로몬에서 지혜를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그 시대의 사람들을 이 남방 여왕이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남방 여왕이 여호와를 경외한 궁극적인 목표점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서의 목적도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잠언은 시작부터 지혜와 훈계를 이야기 합니다. 잠1:1-2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잠언의 목적이 나옵니다.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지혜와 훈계라는 것은 잠언 자체에서도 말씀하고 있지만 성경 전체가 지혜와 훈계를 줍니다. 지혜와 훈계를 아는 것은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훈계가 아닙니다. 명철의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비유로도 말씀하고 직유로도 합니다. 지혜와 훈계가 명철의 말씀을 깨닫는 것과 평행구절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로우려면 매일 잠언 한 장씩 읽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달 동안 다 읽습니다. 그런 식으로 잠언 다 읽었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그분에 대한 지식, 그분과의 관계, 곧 믿음은 은사로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은 세상의 지혜를 뛰어넘습니다. 잠언의 지혜는 반드시 이땅을 다녀가신 여호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결론지어집니다.
어리석은 자는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 잠언입니다. 성경에서 어리석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시편 53:1~3절입니다.
“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그 결과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하게 됩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지 않은 자가 있는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살펴보시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모두 물러가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다 이 잠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시편의 이 말씀을 신약에서 인용합니다.
로마서 3:9~18절입니다. “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사도가 인용한 이 모든 말씀들은 다 구약의 말씀들입니다. 결국 어리석은 자는 그들의 눈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잠언서의 목적과 같은 말씀입니다. 여호와 경외가 없다는 것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자신이 최고 결정권자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죄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모습은 천상 천하 유아독존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살아가니 세상이 지옥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잠언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책망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주로 믿게 합니다.
요한복음 10:10절입니다. “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미 지혜가 있는 자는 학식이 더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자는 단지 생명만 얻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8절.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잠언의 지혜의 결론과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인 잠언서의 목적과 같은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자들은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들이 더 풍성하게 지혜와 지식의 완성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여호와 경외가 어떤 것인지 보겠습니디.
고린도전서 1:26~29절.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지혜나 지식은 썩어질 육체에 대한 자랑거리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부름을 받은 자의 모습은 그런 육체의 자랑이 아닙니다
30~31절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잠언의 목적은 여호와 경외입니다. 여호와 경외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피로사신 구속의 주님이신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예수님은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경외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믿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잠언이 가르치는 것은 구공두리 님이 말씀하신 그 목사의 말처럼 자기 목적을 위해 문자대로 지키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예수님의 주와 그리스도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