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2:19-22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흔히 에베소서를 교회론 서신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아주 핵심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예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뿐 아니라 3장에서 6장까지에 걸쳐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에 관하여 신학적이며 복음적인 서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 에베소서 역시 교회를 하기 위한 어떤 지침서나 교회의 존재 목적만을 적어놓은 책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서신의 핵심과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이에요.
제가 강론 처음부터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 에베소서를 가지고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를 하자는 것에 써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교회 하는 데 도움 되는 책이 아니에요. 주객이 바뀐 거란 말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연결해서 읽게 되면 성경은 교회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중심이에요. 이 말은 본문 22절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의 처소로서의 교회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도한 4장에서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처소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 바로 교회의 기준이에요.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는가 없는가가 그 기준입니다.
‘교회는 당연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대한예수교○○교회와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서울에 몇만 명씩 모이는 그 교회에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그럼, 누구와 함께하십니까? 하나님이 피로 사신 성도들과 함께하십니다. 그들만 교회예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처소로서 그리스도의 몸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방금 말씀드린 대로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 것들, 즉 하나님의 피로 사신 성도가 아닌 자들은 그냥 종교 놀이 집단입니다. 인간은 놀이 하는 동물인데, 종교 놀이가 그 놀이 중 가장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예요. 종교 놀이, 정치 놀이, 돈 놀이 등.. 그런 종교 놀이를 하는 집단은 친목 단체라고 해야지 눈에 보이는 대한예수교, 침례교, 감리교 이런 것을 교회라고 우기면 안 됩니다. 이 말은 교회의 발생과 유지, 성장 이 모든 것에서 인간은 빠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교회를 세울 수도, 유지할 수도, 확장할 수도 없어요. 교회는 인간 손을 벗어난 교회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해요. 흔히들 말하길 교회를 개척한다, 부흥시킨다 등의 말을 하는데 그거 아니란 말입니다. 교회는 창세 전에 이미 확정되어 있어요. 십사만 사천이에요. 거기서 한 명도 더할 수도, 뺄 수도 없어요. 그래서 교회는 사람의 손을 떠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성전이잖아요. 주 안,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란 말입니다. 또 22절에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이 다시 나오죠?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함께’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 믿고 내가 구원받는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의 구원이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의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각자로서의 나를 상대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리스도의 몸은 어떻게 완성됩니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완성됩니까? 십자가죠. 그러니까 교회는 십자가 사건으로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발생한단 말입니다. 교회는 그 십자가라는 사건이 마치 폭죽처럼 팡팡 터지는 현장으로서 교회입니다. 그게 참 재미있는 표현인데요, 이것을 발생론적 교회라고 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한 번 교회는 영원한 교회인 줄 아는데, 그런 건 해병대나 있지 교회는 없습니다. 큰 교회들을 보면 우리 교회는 역사가 육십 년, 팔십 년, 백 년이라고 하고, 아예 이름이 백 주 년인 교회도 있어요. 그러나 교회는 그런 게 아니에요. 모일 때마다 새로운 교회예요. 지난주에 모였던 교회와 오늘 모인 이 교회는 다른 교회예요. 그것을 좀 어려운 말로 말씀 사건으로서 교회라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도 완성도 창세 전에 정하신 언약의 피로 발생하는 교회예요. 그래서 우리가 에베소서 1장에서 본 것처럼 모든 하나님 창조의 중심에는 예수가 있고,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재통일 되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이라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묶여 있어요. 한 마디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신 그 일에 온 우주가, 모든 피조물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결과물로 나타나는 게 교회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에요.
이 일을 위해서 첫 창조는 이제 그 용도를 다한 게 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고 한 것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어떻게 천지 만물과 연관성을 가지는지를 설명한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이제 첫 창조에 속한 것들은 사라져야 합니다.
여기서 첫 창조에 속한 것이란 이 천지 만물뿐만 아니라 세상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을 말하며, 이것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유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창세 전 언약에 종속되었다, 그 십자가 사건에 종속되어 있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의 결과물로서 참된 교회는 세상 모든 현상, 사건들이 그 교회에 해석당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밖에 나가면 천지 삐깔이어서인지(경상도 사투리) 사람들이 교회를 너무 만만하게 봐요. 예전에 제가 부천에서 잠깐 살았는데, 그 경기도 부천이 세계에서 교회 밀집도가 가장 큰 곳이에요. 내가 살던 아파트를 나가면 양옆으로 우리나라 모든 교단의 교회가 다 있었어요. 이바닥엔 장사 윤리도 없어요.
십자가를 걸어놓았다고 눈에 보이는 교회가 교회 아니에요.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교회는 이미 이스라엘에도 있던 유대교 교회나 다를 게 없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부정하면서 나타나는 교회가 진짜 교회예요.
다시 말하지만 모든 세상 역사는 교회, 곧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해석당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 것이나 트럼프가 관세율을 25% 때린다는 것이나 시진핑이 원탑에서 내려오는 것이나 한국 경제가 바닥을 헤매는 것이나 이 모든 것은 이 땅에 아직 남아 있는 매우 소수의 성도인 교회에 해석당하기 위한 사건들입니다. 다들 안 믿기는 표정인데, 제가 지금 진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신문 기사를 믿습니까? 말씀을 믿어야지요. 유튜브 믿는 거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 역사는 처음부터 폐기될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있어요.
(히 1장)
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여기 보면 영존하시는 주를 위해서 하늘도 땅도 낡아지고 폐기된다고 하잖아요. 그런 모든 과정이 있어야 하는 건 저와 여러분 같은 하나님의 피로 사신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늘과 땅을 잠시 배치하시고 모든 사건과 역사를 진행하고 계신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마지막 성도 한 사람의 목에 베어져서 그리스도의 몸이 완성되면..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우리의 머리는 그리스도 예수 한 분이잖아요. 우린 그분의 몸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우리 머리를 다들 가지고 있죠? 이게 베어져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완성되면 그때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과 모든 물질이 불태워 없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 하늘과 옛 땅이 그대로 있다는 말은 아직 이 세상에 소수의 성도가 남아 있다는 뜻이에요. 아직 여러분들이 있어서 하늘도 땅도 제자리에 있다니까요.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기가 찰 말이지만 이게 현실이에요. 또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 사건으로서 교회가 아직은 지상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세상 건축자들이 내다 버린 예수라는 돌을 모퉁잇돌로 해서 그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 지어져 가는 하나님의 처소 성전이 바로 너희들이라는 말을 사도가 에베소에 보낸 편지를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거예요. 아주 은밀하게, 비밀스럽게 하나님의 교회에만 전해지는 그런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엡 1장)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이 때가 찬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경륜이 세상에는 감추어졌지만, 저와 여러분에게는 열려 있어요. 열어서 보여준다는 의미로 ‘계시’입니다. 어떻게? 성령으로. 여러분 모두 성령 받았잖아요.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이제 하나님과의 사이에 어떤 벽도 없어졌다는 뜻이에요. 하나님 것이 다 우리 것이란 말입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는 바울의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에요.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간격도 없고, 또 막힌 것 없이 다 열려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그 비밀한 것들을 하나씩 알려주십니다. 어떻게요? 완성된 성경 말씀 안에서.
누구나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다 알수있는 게 아닙니다. 성경 안에 감추어진 것들을 알아내려고 이천 년간 교회가 신학이란 걸 만들었잖아요. 조직신학, 성경신학, 목회신학, 역사신학 등 별의별 게 다 있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신학 하는 사람들에게 열어 보여주시는 게 아니에요. 신학이 그 문을 못 열어요.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증거합니다
-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는 그 관계성은 성령 안에서만 가능해요. 성경을 모르면서 백독하고 필서하면 뭐합니까? 그냥 문자일 뿐인데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힌 교회요 하나님의 피에 잠겼다가 끄집어냄을 당한 거룩한 성도들이에요.
여러분은 그런 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는 어떤 조그만 흠도 티도 더러움도 없어요. 아들의 피로 덮였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하나님의 모든 게 여러분에게는 열려 있어요.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신비롭고 엄청난 존재입니다. 만물이 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이 여러분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탄식하면서 기다린다고 하잖아요.
(롬 8장)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게 보여야 해요. 보이는 모든 사물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들이 바라는 것들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야 해요.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그것을 바라고 있어요. 빨리 이 세상이 끝나고 하나님 아들들의 세계가 오기를 기다린단 말이에요.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본질로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완성되면 모든 게 변화됩니다. 아까 읽은 히브리서처럼 낡은 옷은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피조물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사야서에도 나와요. 하나의 상징이요 비유일 수 있는데..
(사 11장)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게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이에요.
오래전에 봤던 영화 중에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로빈 윌리엄스’ 주연 영화가 있어요. 주인공이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생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가장 먼저 달려 나와요. 그걸 보면서 저도 제가 키우던 강아지 생각이 났어요. 우리 짱아 뿌꾸 다 만날라나
하여튼 성경은 우리가 살게 될 천국 삶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는가 하면 모든 성도가 왕처럼 다스린다고 합니다. 다스릴 대상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잠시 후면 만나게 될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을 살게 되는 그 천국을 여러분들은 지금 이 땅에서부터 살아내야 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여기서 거룩이란 주님의 피로 씻음을 받은 성도의 거룩이면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을 말합니다. 세상 종교인들이 다 ‘예’라고 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그게 거룩이에요. 여러분들은 그런 거룩한 교회예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은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이천 억짜리 예배당도 불타 없어지고, 스페인에서 백 년 동안 짓고 있다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영존하는 건 말씀뿐이에요. 그래서 말씀으로 채워져서 말씀이 된 여러분들이 영존합니다. 계시록에서 성도를 말씀이라고 하잖아요. 우리 각자 각자를 성경이 말씀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여러분이 인생을 사는 목적은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사는 데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채워져 가는 인생을 지금 여기서부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새 창조, 새 피조물 그들만 하나님의 처소로 교회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작업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죽은 흙이에요. 아담의 죽은 몸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여러분은 이 세대의 거짓 교사들, 교회인들을 향해서 ‘그건 생명 아닙니다. 그건 진리 아닙니다. 십자가만 진리입니다. 예수만 진리입니다. 생명은 예수 안에만 있습니다. 십자가 피가 생명입니다.’를 증거해야 합니다. 그들을 전투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 안 하면 세상에 미움받을 일도 없고 세상과 싸울 일도 없어요. 제가 10년 동안 ‘아니오’를 하다 보니 다음 카카오에서 영구 제명되었어요. 세상 종교인들의 고발이 누적되자 저를 아예 제명해 버렸어요. 그러나 이것을 하라고 성도의 인생이 있어요. 우리는 그 전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그 십자가의 승리, 그 승리의 영광을 배웁니다. 이것을 배우기 위해서 영적 전투가 있는 거에요. 여러분은 다 그런 전사들이에요.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그 복음의 전사들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담대하고 정직하게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하라고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주셨단 말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알아듣게 하셨어요. 들을 귀를 주시고 볼 수 있는 눈을 주셨단 말이에요. 세상 종교인과 다른 게 바로 그런 점들이에요. 산자와 죽은 자의 차이입니다.
이 땅의 교회는 하나님의 원수 된 역할을 잘 마치고 사라져야 합니다. 세상 교회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이야기죠.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땅의 것밖에 모르고 자기 배만 섬기는 자들을 가리켜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잖아요 (빌3:18-19) 오늘날 세상 교회가 섬기는 게 뭐예요? 하나님을 섬깁니까? 맘몬을 섬기잖아요. 교회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자기라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그래서 그들 하나님의 원수 된 역할을 마치면 땅의 모든 지상 교회는 사라져야 하는 거예요. 구원은 교회에 있지 않아요. 교회가 구원을 주는 게 아니라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구원인 것을 여러분들이 외쳐야 합니다. 누구에게? 세상 종교인들에게요. 오늘날 처럼 교회 하려고 이천 년 동안 교회가 신학을 생산했습니다. 교회를 지키려고 세상 힘을 끌어모으고 세상 권력과 타협한 게 교회사예요. 그렇게 교회를 키우려고 맘몬에게 절하는 자들을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며칠 전에 인천에 사시는 어떤 권사님이 전화하셨는데,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통 있는 교회랍니다. 담임목사도 여러분이 이름만 들어도 잘 아는 주○○ 목사의 아들이에요. 그런데 그 교회가 완전히 가톨릭화 되어버렸대요. 절기마다 목사가 가운을 바꾸어 입는답니다.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리고 예배 전에 각자 한 주간 지었던 죄를 참회하고 고백하는 시간이 있답니다. 고해성사죠. 게다가 걸핏하면 성령을 동네 개 부르듯이 부른답니다. 임파테이션이니 세컨 블레싱이니 해서.. 그러니까 기복주의 신비주의 율법주의가 짬뽕이 되어서 일 년 내내 복음적인 설교는 들어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이게 개혁 교회인지 성당인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다가 구역예배 시간에 교인들을 만나서 그게 아니라고 말하면 찍힙니다. 전교인 접근금지죠.
이게 오늘날 종교화되어 버린 기독교예요. 비단 그 교회뿐 아니라 세상 대부분 교회가 종교 개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어요. 개혁주의는 무슨 개뿔.. 저는 그래서 저는 개혁주의가 아니라 개 가죽주의라고 하거든요. 대한유대교 개가죽 주의.. 한 마디로 이건 교회가 아니라 사탄의 회당이에요. 하나님의 처소가 아니라 귀신들의 처소가 되어버린 대한 유대교.
세상 끝 날까지 이 땅의 교회들이 어떤 상태로 갈 것인지를 계시록에서 미리 보여줍니다.
(계 18장)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래서 세상 교회는 없어지기 위해서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교회가 없어져야 한다는 증거로써 십자가 사건이 현실화되는 그 현장이 바로 참된 교회, 성도들에 의해 발생되고 또 그들에게만 그 현실이 보이는 거예요. 십자가냐 교회냐 하는 그 현실입니다. 이천 년 교회사가 그 싸움을 해왔어요. 그러니까 그 교회는 인간의 탐심으로서의 교회예요. 내가 확대되고 투사된 우상으로서 교회, 생명 열매를 향해서 손을 뻗치는 탐심들이 모여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다 대고 ‘그거 아니고 십자가입니다’를 외치는 사람마다 그 큰 성에서 쫓겨납니다. 큰 성 바벨론에서 쫓겨나서 길가에 있습니다. 그들이 두 증인이에요. 두 사람이 짝지어서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있다고 두 증인이에요. 그들이 교회란 말입니다.
그렇게 십자가라는 완료된 묵시의 현실을 사는 성도는 본의 아니게 세상 속에서 세상과 분리되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어요. 세상이 알아서 세상 밖으로 밀쳐내 준다니까요. 귀신들이 귀신같이 알아요. 귀신들은 누구 속에 말씀이 있고 십자가가 있고 피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사도행전에 보면 귀신이 스게와 아들에게 그러잖아요. 내가 바울도 알고 예수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고.
그렇게 이 세상과 분리되는 고난 가운데, 큰 성 바벨론에서 쫓겨나서 길가에 세워지는 두 증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그들만 주님의 신부 된 교회입니다. 에클레시아입니다. 신약에 나오는 교회 에클레시아예요. 에클레시아는 주님의 신부로 여성 명사입니다. 그 신부 된 교회는 반드시 신랑이 챙깁니다. 빈틈없이 챙겨요. 우리에게 혼인 증표로 주신 것들이 있다니까요. 그게 뭡니까? 믿음이에요.
지금도 모퉁잇돌인 예수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서 지어져 가는 그 교회는 세상과의 찢어짐, 분리, 균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교회이기에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교회예요. 잠들려고 하면, 세상에 취하려고 하면 그 찢어짐이 또 발생해요. 그게 아파요. 그런데 그게 없으면 우리는 그냥 세상에 취해서 잠들게 돼요. 그러나 주께서 흔드시기에 우리는 음녀의 섞은 술에 취할 수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구원과 영생이라는 속임수에 속지 않아요. 교회가 가르치는 구원의 방법론들이 십자가의 승리와 영광을 어떻게 모욕하고 있는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런 성도들, 그리스도의 마음 곧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멸망을 선포하는 자들, 심판을 선포하는 자들로서 교회입니다.
그래서 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직하게 전하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돌이 날아와야 정상이에요. 단일교회로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교회가 서울에 있는데, 그런 게 있을 수 없다니까요. 세상이 돌을 들고 와서 스데반 집사처럼 말씀 전하는 자들을 돌로 쳐 죽여야 정상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는 이 세상 모든 인간을 부정하기 때문에 그런데 서울만 해도 수만 수십만의 대형교회들이 그렇게 많다는 말은 복음을 정직하게 전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아니 아예 십자가 복음에 관심이 없어요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로 했다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다 예수 십자가의 증인이에요 “합심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너희들은 하나님의 원수야. 너희들은 심판받아 마땅해.” “그럼 심판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방법 없어.” “회개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회개 안 돼. 너희들이 하는 건 모두 반성이야.” “그럼, 뭔데요?” “하나님에 의해서 찾아진 자들이 따로 있어.”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회개에 대해서 뭐라고 하십니까?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어버린 양, 집 나간 탕자.. 그들이 스스로 찾아올 능력이 있습니까? 동전이 무슨 재주로 주인을 찾아갑니까? 양들은 눈이 나빠서 길을 잃으면 계속 그 길로 가요.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와서 안고 가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니까요. 그걸 회개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자꾸 하나님과 사이가 좋아지는 방법들을 개발하는 게 오늘날 교회들입니다. 단언하지만 십자가외에는 어떤 방법도 없어요.
저도 예전에 젊었을 때 한 십년 매일 새벽 기도 갔는데, 새벽 기도에 가면 어렸을 때부터 잘못한 것 다 찾아내서 고백하곤 하죠. 그렇게 고백한다고 죄 용서받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영단번의 제사 그 십자가에서 우리가 함께 하나님께 드려졌단 말입니다. 그걸 믿는 게 하나님과 화목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로 옮겨놓으시기 전에는 어떤 구도의 길을 찾아도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방법이 없습니다, 안 됩니다.’를 말해야 해요. 그게 복음의 시작이에요. 모든 설교에서 왜 십자가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니까요. 아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 말고 왜 꼭 아들의의 죽음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지, 왜 십자가인지, 왜 피인지.. 어떤 목사 책 제목처럼 다니면서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야 해요. ‘십자가를 아십니까’.. 그거 외에는 없어요.
그렇게 구원받지 못할 자는 구원받지 못하도록 밀쳐내는 것, 다시 말해서 정직한 복음을 전하므로 해서 듣는 자들이 귀를 막고 이를 갈면서 돌을 던지는 것까지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여러분의 책무예요. 세상에게 좋은 소리 들을 기대를 하지 말란 말입니다. 가족이라도 마찬가지에요 너희 원수가 집안 식구이리라고 하셨으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에요.
(계 22장)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오늘날 교회에서 이런 말씀이 수긍될까요?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게 되면 자연히 갈라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그들을 설득하고 가르치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교회(에클레시아)는 신랑 예수의 죽음이 나누어진 자들로서 교회란 말예요. 그 십자가 죽음은 내가 참여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창세전의 그 죽음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로서, 성전으로서 지어져 가는 신비와 역설을 모르면 교회가 아니에요. 그렇게 날마다 죽고 날마다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가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이 죽음과 이 생명이 역사함으로 교회는 날마다 새로운 교회예요. 이 죽음과 이 생명이 역사함으로 교회는 교회로서 생겨나는 거예요. 그렇게 모일 때마다 새로운 교회 유기적 교회로 자라난단 말이에요. 그들을 유기적 한 몸으로서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 생명 현상이 없으면 죽은 거죠. 그런데 그 죽음과 생명은 세상 교회가 줄 수 없어요. 그냥 지식은 줄 수 있겠죠. 그래서 세상 교회에 등록했다고 해서 한몸 된 교회가 될 수 없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어떤 관계도 만들 수 없음을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그 자신이 교회입니다. 설교자는 그렇게 성경적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정직하게 전해야 해요. 그래야 예수 믿고 천당 가려는 자들을 교회 밖으로 밀쳐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시작하지 않고 나 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모든 종교인의 탐심을 향해서 아니요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를 부정하는 존재에 대한 살해 의지가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솟아나게 되어 있어요. 선악과 따먹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가인의 살인 의지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난 후에 처음으로 낳은 아들이 가인과 아벨이잖아요. 온 천지에 그들밖에 없었다니까요. 그런데 가인은 동생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동생을 돌로 쳐 죽입니까? 그 살해 의지가 어디에서 나온 거예요? 선악과 따먹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하나님 살해 의지란 말에요. ‘내 제사를 안 받아줘? 하나님 당신이 나를 부정했어? 내가 여기 이렇게 있는데 왜 나를 부정하는 거야? 나를 부정하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누구라도 죽이고 말 거야.’ 이게 가인의 살해 의지예요. 그게 라멕으로 이어지지요 (창4:23)
오늘날도 마찬가지예요. 복음을 정직하게 전하면 듣는 자들이 거품 물고 이를 갈면서 돌을 드는 게 정상이에요. 만약 그렇지 않고 ‘그게 진리 맞네요. 당신이 전하는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네요.’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죽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기적이에요. 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거의 없다고.
그래서 어떤 방법도 없고 어떤 구도의 길도 없어요. 오직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믿음이에요.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 하나님을 마침내 사랑하게 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요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하나잖아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죠. 우리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계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요 10장)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하나님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와 함께 하세요. 그들 외에는 누구도 하나님을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것 자체가 심판이라고 하지요. 아담에게서 난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단 말이에요. 부정한 죄인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어요. 그냥 각자 자기가 원하는 신을 조작할 뿐입니다. 그런 인간의 몸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에게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것을 탐심이라고 하고 성경은 그 탐심을 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평생 열심히 교회 다니고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지옥 가는 거예요. 그렇게 심판의 당위성을 보여주기 위해 세상 교회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안 속으세요. 우리 속에 들어있는 것을 다 아세요. ‘네가 네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나왔구나. 네 노림수가 따로 있구나’. 사람은 속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안 속으세요.
그래서 아담에게서 받은 이 몸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가 없어요. 한 마디로 왜 구원받을 수 없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몸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몸은 죽어야 사는 몸이에요.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간은 사망 권세 아래 있는 몸입니다. 죽음이 예정된 몸이라는 뜻이에요. 죽음 안에서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서 살아가는 몸이에요. 그런데도 어떻게 해서든 종교적 방법론으로 영생을 탐하는 자들이 오늘날 세상 교회입니다. 그런 탐심을 지적하신 예수님을 살해한 유대교인들..
그들에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해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 심판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늘에 빛이 없어지고 땅이 갈라지고 무덤이 터졌죠. 마지막 날 심판을 미리 보여주신 거예요.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을 말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끝.
그때로부터 세상은 끝난 세상이에요. 이제 예수님의 부활의 영에 의해서, 십자가의 영에 의해서 찾아짐을 당한 이들만 이 불타는 지옥에서 건짐을 받게 됩니다. 구원은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을 불타는 지옥으로 볼 수 있는 자들에게만 구원이 있어요. 그들에게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엑시트 탈출구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만 예수님의 십자가가 현실이 되어서 작동하고 있고 그들만 산자들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묵시의 완료된 현실을 담고 오신 성령이 그 교회를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어떤 개선과 발전이 필요 없는 교회입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가나안 교인들(교회 안 나가는 교인들)이 수십만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들이 왜 교회에 가지 않습니까? 교회가 썩었다는 거예요. 그들은 건강한 교회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더 건강하고 덜 건강하고가 없습니다. 창세 이래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한 번도 타락한 적이 없습니다. 머리가 그리스도인데 어떻게 그 몸이 타락합니까? 결국 그들 종교인들이 모여서 세상 윤리 도덕을 벗어나지 않는 상식적인 교회를 하자는 겁니다. 교회가 얼마나 개판이면 세상이 보기에 상식에도 못 미치는 겁니다. 오죽하면 개독교라고 합니까? 그들의 불평이 교회 안에 계급이 있고 권위주의적이고 목사가 돈만 밝히고 바람피우고 개판이고.. 제가 그런 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런 깨끗한 윤리 도덕적인 목사 보려고 교회 왔으면 잘못 찾아 오신 거에요 성당이나 절로 가야지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냥 죄인이 아니라 예수피로 용서받은 죄인들 그러니까 좋은 교회 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직 피가 무엇인지 십자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란 말이지요, 제가 분명히 말하지만 교회는 인간이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든지 발전의 여지가 있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미 묵시 안에 완성된 영원한 교회이기 때문에 자기 역사라는 게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모일 때마다 새로운 교회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보면 몇 명 안 되는 교회지만, 전부 다 모이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모인 여러분들이 또 새로운 교회예요. 대구 서머나교회는 역사를 가질 수 없는 교회예요. 자기 역사가 없습니다. 왜? 영원 속에 이미 완성된 교회이기 때문에 역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 십 년이 넘었잖아요. 그러나 모일 때마다 새로운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서 세상 정의가 아니라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의, 그리고 그 은혜의 영광만 서로 증언해주는 교회, 그렇게 이미 완료된 것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지 우리 열심으로 기도합시다, 우리 열심으로 전도해서 교회 부흥되게 합시다, 건축 헌금 많이 해서 보란 듯이 번듯한 예배당 하나 지읍시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 자들은 교회가 아니에요. 교회는 쉼이 있는 자들의 교회란 말입니다. 자기 일을 쉬는 자들이 모이면 교회가 돼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한 게 인간이잖아요. 그러나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히 4장)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분명하죠? 이렇게 자기 일을 쉬는 자들이 교회예요. 이미 완료된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되어서 그 하나님을 우리가 서로 나누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처소로서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13절 말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으면 그 십자가만 자랑하는 것이 교회의 본무이자 정체성이에요. 그 피가 거룩이고 영생이라는 증거물로써 존재하는 게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시 한번 마음판에 새기면서 에베소서 4장을 같이 읽고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엡 4장)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그 죽으심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교회로 지어졌는지, 이 신비와 이 역설을 더 깊이 더 크게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이 그 죽음 같은 사랑이 우리 심령 깊숙이 옹이처럼 박혀서 무엇에든지 그 믿음과 그 사랑으로 하게 되는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위에 날로 굳건하게 세워져 가는 우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