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아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을 의역하면 이런 말이에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아야 되는 거지요? 먹으면 안되는 거예요. 먹지 말아야 한다라는것을 그걸 먹고 죽어서 깨달아라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여기의 죽음이 무트에요, 말씀의 완성 , 그런데 그 말씀은 어떻게 완성이 돼요?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내가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그러잖아요. 선악과, 율법이 완성이 되려면 무트, 죽음이 전제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걸 먹어야지요. 먹어라. 먹고 죽어서 먹지 말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생명나무 실과라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생명나무 실과, 열매는 그 열매가 맺힐때 먹어라 그래요. 그러면 창세기에서는 아직 안 맺힌 거네요. 근데 어떻게 먹냐구 그거를. 어디서 맺혀요. 그걸 진리로 가지고 있는 그 사람들의 입에서 맺혀요. 그러면 그거 먹으면 돼요. 예수님이 그 진리의 영으로, 말로 오셔서 그분이 하신 그 일이 뭔지를 가르쳐 주시면 그게 생명나무 실과에요. 그래서 그 분을 첫 열매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도 그 열매를 맺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러지요. 예수인 나보다 그 진리를 깨달은 너희들이 나보다 더 큰일 할꺼야 왜? 나는 지금 아무도 못 구원하고 간다. 내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와야 그 일이 일어날 거거든. 너희는 그 영을 받고 이 역사를 살꺼기 때문에 나보다 더 큰일 할 거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일을 할 거거든요. 그 열매를 맺을 거거든요.
여기서 아담과 하와는 그게 뭔지를 깨닫는 자로 등장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호지 않은, 바느질하지 않은 옷을 입히는 거예요. 처음에 그는 바느질하여 엮은 치마를 입었다 그러지요. 그거는 인간이 노력하여 만든 것으로 부끄러움을 가렸다는 뜻이에요. 율법이잖아요. 근데 하나님께서 준 그 치마는 그런 말이 없어요. 호지 않은 옷을 제사장들이 그거 입었잖아요. 호지 않은 옷을 하나님이 그냥 입혀 주는 거예요, 거저. 어떻게? 아들의 피로 만든, 아들의 희생으로 만든, 무죄한 제물의 가죽으로 만든, 첫 번째 제사는 하나님이 드린 제사에요. 그리고 모든 제사는 바로 이 제사라는 걸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뭔지를 완료 시키는 게 십자가고. 그러니까 제사는 우리것이 아니라니까요. 그렇게 선악과를 먹고 우리는 은혜 앞에서 죽으면 되는 거예요. 아니군요! 하나님이 입혀주셔야 되는 거군요 이렇게! 그러면 그 은혜가 그 죽음을 감싸서 참 생명으로 일으켜 세우는 거예요.
근데 4장에는 거기에 실패한 인물이 나옵니다 누굽니까? 가인이지요? 제가 지금 순서대로 설명해 드리고 있는거에요 창세기 1장에서 일곱 말이 주어지고 2장과 3장에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 선악과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건 이 말은 너희들의 힘과 노력으로 따 먹을 수 있는 말이 아니야. 진리, 일곱 약속, 언약이라는 건 너희들의 노력으로 절대 따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야를 가르쳐준 거잖아요. 근데 아담과 하와가 따 먹어 보겠다고 먹었는데 잘못 먹은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거 아니지! 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그들이 올바른 옷을 입게 만들어 주는 것이 2장 3장 이란 말이에요. 근데 4장에서는 여전히 그걸 따먹고 이게 뭘 초월하고 절대 굽히지 않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가 가인인 거예요. 가인은 동생 아벨을 때려죽이죠? 왜 죽여요? 자기 제사를 지키기 위해 죽입니다. 그게 뭐예요? 율법이에요. 성전을 지키겠다는 거예요. 내 제사 지키겠다는 거예요. 이 제사를 가치없다 안 받아 주냐는 거지요. 이 율법, 이렇게 날 희생하여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데 왜 내 것을 가치없이 여겨요, 왜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그러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들을 죽여요 형제를 죽인다니까요. 그럼 그게 뭡니까? 역시 선악과를 먹은 거잖아요 그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받아 버린 거니까. 율법으로 먹은 거니까. 근데 그 헤벨이라는 이름이 텅 빈, 공허한, 덧없는 뜻이라고 했지요. 그걸 추적해서 올라가면 제물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헤벨이라는 존재는 텅 빈, 공허한 재물로 온 어떤 존재네요. 죽기 위해 온 아들이에요. 헤벨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러면 마땅히 죽어야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오신 분입니다. 그 분이 마땅히 죽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율법으로 그 구원을 성취할뻔했어요. 그분이 죽고 은혜로 그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는 바람에 우리는 선물로 그 생명을 받은 거 아닙니까. 그럼 헤벨이라는 그 제물은 마땅히 죽어야 되네요. 그런데 내가 내 제사를 지키기 위해 그 아들을 내 손으로 죽여 버리면, 내 행위로 죽여 버리면, 그게 멸망이요 저주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들이 선악의 주체가 되어보겠다고 그것을 먹어버린 그 사건이 뭐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초개처럼 죽여버린 거지요 그거요. 근데 말씀은 누구라 그래요? 요한복음에서, 아들이라 그래요. 그들도 아들을 죽여버린 거래니까요. 그래서 말씀이 아들로 나타나는 거예요. 가인도 아들을 죽였어요. 그럼 둘이 똑같은 짓을 한 거예요 근데 어떤 이들은 호지 않은 그 옷, 무죄한 짐승의 피로 만든 그 옷을 은혜로 입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그게 뭔지를 모른다니까요. 그러니까 가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욕을 먹은건 그가 한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그래 마땅히 그 아들은 너에 의해 죽어야 돼 왜? 그게 니 한계거든. 근데 니가, 그 아들이, 그리고 니가 한 그일이 뭔지 아니?라고 물어보세요. 네 아우가 어딨느냐? 이렇게 번역이 돼 있는데 그 말이 아니라. 니 형제 아벨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세요. 아벨이 죽었더니. 그랬더니 가인이 모릅니다 그래요. 니가 죽인 그 아들이, 그 헤벨이, 그 제물이 뭐니?라고 물어요.
너 나에게 니 제사 지키겠다고 지금 니 동생 때려죽였다. 그럼 니 제물. 니가 나에게 드린다는 그 제물이 도대체 뭐야? 니가 때려죽인 그 제물, 그게 뭐야? 니 제물 지키겠다고 죽인 그 제물이 뭐냐고 물은 거예요. 근데 가인이 모르는데요 그랬다니까. 그래 그러면 너는 동쪽. 동쪽은 하나님의 대적 자에요. 그 땅이. 케뎀이라는 단어 자체가 대적하다 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아이 헤벨 아흐 이렇게 물어 보시거든요. 헤벨이 무엇이냐?
가인이 '로 아다' 이렇게 대답해요. 야다, 알다 라는 뜻이지요. 난 몰라요. 그러면 죽는 겁니다. 그 아들의 죽음, 그 말씀, 그 진리가 뭔지 모르면 죽는 거예요. 아들을 죽여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도 유대인들, 이방인들 그건 전 인류에요.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예수 죽인 그 아들 죽인 자들이잖아요. 내가 예수 죽인 자 맞잖아요. 아닌 거예요? 그러면 그걸로 벌을 하신다면은 우리는 다 죽어야 돼요. 근데 이렇게 살아났잖아요. 죽였다며요? 그게 뭔질 알아서 살아난 거 아니에요? 그러면 가인도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이게 창세기 2장과 3장에 아담과 하와, 그리고 창세기 4장에 가인의 차이점인 거예요. 행위로만 보면 둘이 똑같은 짓을 한 거예요. 그 말씀 그 아들을 죽인 거라니까요. 그게 구약, 십계명의 위의 5개란 말이에요. 그것으로는 우리는 이거 못하는 거네요를 깨달으라고 줬더니 그거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하는 게 가인이라니까요. 해보겠다는 게. 근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게 뭔지를 깨닫고 그 아들의 희생이 만들어준 옷을 입는 거고 가인은 끝까지 자신의 제사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무화과나무 이파리를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다가 망하는 거예요. 그 둘을 나누는 분수령 같은 구절이 3장 22절부터 24절까지예요. 사실 요걸 한 장으로 나눠 버려야 돼요. 그래야 앞뒤가 명확히 갈라지는 건데. 한번 보세요.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선악을 분별하는, 선악의 주체로 우리가 되겠다고 이렇게 되었다. 그게 선악 구조속에 있는 인간들입니다.)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자 이게 뭔지를 알면 앞의 아담과 하와가 되는 거고 자칼, 네케바가 되는 거고,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면 4장에 가인이 되는 거예요. 손을 야드 밖으로 뻗어 솨라흐, 열매 생명 열매를 획득하려 하는게 ,그게 무엇인지를 알고 그건 안되는구나 하고 나에 대하여 죽어버리면 그게 아담과 하와고. 끝까지 손을 뻗어 내가 그 생명나무 실과를 내 손으로 바느질하여 쟁취하겠다고 하는게 가인인 거예요. 이렇게 나누어지는 거예요 창세기 가요. 근데 요거를 제가 전에도 설명드렸는데, 손을 뻗어 그 나무 열매를 내 손으로 쟁취하겠다 라는 걸 한마디로 말하면 이사야에서 찾아 드렸는데, '베짜' 탐심이라는 단어에요 그게요.
그래서 바울이 그러는 거지요, 내가 율법이 탐심이 죄라는 걸 말해 주지 않았다면 내가 계속 탐심 할뻔했다. 이야기 한단 말이지요. 바로 그거 하지 말라 라는게 율법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십계명의 마지막도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이 전체는 그 이야기야! 그거는 너희들 힘으로 안되는 거야. 이렇게. 그러니까 자기의 손을 뻗어서 부정하게 열매를 획득하여 생명에 이르려 하는 모든 시도를 탐심이라고 하는 거고 그게 율법이고 죄인 거고, 그것을 성공한 자가 가인이에요. 잠시의 성공이지만. 착각이지만, 그러나 그것에 실패하고 아- 이건 아닌 거구나! 무트 타무트 죽고 죽어, 하나님 은혜 앞에 널브러져 있는게 아담과 하와 였다는 거예요. 그를 은혜의 옷으로 입혀 주는 겁니다. 그래서 동쪽으로 쫓겨나서 거기에 정착해 버린 가인의 후예들의 족보는 전부 승승장구죠? 정치, 경제, 문화, 농업, 예술, 거기에 대장들이 되지요. 가인의 후예들의 족보. 그게 4장 말미죠.
5장에서 아담의 후예들은?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었더라,,,, 다 무트에요. 와우 계속형.
그의 시간 속에서 계속 죽던데! 이런 말이에요. 무트 . 그게 바울이 쓴 날마다 죽노라의 의미에요. 계속 죽던데? 가인의 후예들은 계속 살아나, 왜? 손을 뻗어 따 먹어야 되니까.
그러니까 문명이 발전하고 있는 거는요 진짜 죽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한번 보세요 예전에 다석 유영모 선생이 이런 말 했었어요. 대한민국은 티브이와 신문 때문에 망할 거라고.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아마, 그걸 뺀 거 같은데, 돌아가셨어요. 여러분 요즈음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게 뭐예요? 티브이에요. 마누라들이 남편 말은 안 들어도 티브이에서 어떤 박사가 나와서 얘기하면 다 듣습니다. 목사도 그 티브이 보고 와서 설교합니다. 근데 대부분에 어떤이가 그랬다고 그랬지요. 거기서 정설이라고 얘기하는 90% 이상이 음모라고 그랬습니다. 얼마 전에 40대 의사가 coming out 했잖아요. 여러분 의사 말 듣지 마세요. 아유 죄송합니다. 여기 의학 박사들 많이 계신데. 교수님들도 계신데. 의사들은 약을 권하고 수술을 권하지만 자기들은 정작 수술 안하고 약 안먹는다는 거지요. 근데 뭐가 좋다고 하면 전부~~, 뭐가 나쁘다고 하면 전부~~. 그리고는 그 바보상자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가는거에요. 운명의 실체지요 그거는.
아담과 하와의 얘기 속에서도 아들이신 말씀이 죽은 겁니다. 그 아들의 죽음이 가죽옷이 되어 입혀져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율법, 어기라고 준거에요. 선악과 먹으라고 준 거예요. 그게 뭔지 알면 의의 흰옷 입으면 되는 거예요. 그게 아들을 죽인 자가 아들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가인의 이야기 속에서도 똑같이 아들이 죽어요. 근데 그 아들의 피는 땅속에서 신원하는 복수의 피가 되었어요. 의의 생수로 들어오지 못했어요, 진리의 겉옷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땅속에서 복수의 신원하는 피가 돼 버렸어요. 그게 뭔지 모르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어린양이라는 아들의 대표, 장자의 예표지요? 어린양이. 예표가 죽는 유월절 사건과 애굽의 장자들도 모조리 죽습니다. 거기도 아들이 죽고, 이스라엘도 아들의 죽음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애굽의 장자들의 죽음은 스스로 자기들을 죽여, 율법으로 자기들을 희생하여, 나를 죽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율법의 죽음이고, 이스라엘의 죽음은 아들의 죽음이 바로 나의 죽음이네요!라고 그 은혜 앞에 넓적 엎드리는 자기 부정의 죽음이에요. 둘 다 아들이 죽는다니까요. 그런데 애굽에서의 그 장자가 죽으면 하나님의 장자가 될 그 진짜 내가 죽는거고, 나를 살릴 그 진짜 아들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그게 율법주의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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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동억. 작성시간 19.01.17 참 소중한 말씀이네요...
이 글을 다른 사람이 썼다면 난 어떻게 반응 했을까???
아마 혼자만 숨겨두고 나혼자 읽고 탐독했을겁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 한테는 전하고 나누지 못할것 같습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할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진리는 알면 알수록 깊고 넓다는것을 새삼 느낌니다
여기에서 말씀으로 섬기는 여러 목사님들이 이글을 읽어면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요?
하여튼 저에게는 귀한 말씀으로 남에게 주지는 못하고 숨겨서 꼭꼭 씹어 먹고 싶은 말씀입니다^^ -
작성자가브리엘 작성시간 19.01.17 소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듣기는 여러번들었는데 글로 보니
은혜가 더해지네요 말씀속 진리를
눈으로 훤히보여지는듯 하네요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