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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자기기만에 빠진 자들)

작성자강구만|작성시간20.06.01|조회수326 목록 댓글 4

사람은 스스로를 속인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자신에게서 부족하거나 결핍된 것을 끝없이 채우고 싶은 욕망 때문인 듯하다. 뭔가를 채우면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보할 수 있다고 스스로가 믿어야 하고, 확신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 의하면 인간은 우연적 존재에 불과하기에 자신의 존재근거를 확보할 수 없다. 아무리 결핍을 채워도 자신의 존재근거를 마련할 수 없기에, 사람은 자신이 불안정하게 떠도는 유랑자가 아니라 어떤 고정된 실체라는 믿음을 갖고 싶어 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믿음이며, 이것이 자기기만이 된다.

자기기만은 어떤 면에서 본래의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를 사르트르는 잘못된 신념(mauvaise foi) 때문이라 본다. 잘못된 신념은 자기기만에 빠진 자기에 대한 문제가 된다. 타인을 속이는 거짓말과 달리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기에 사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된다. 자기기만은 거짓말과 다르다. 거짓말은 속이는 주체와 속는 대상이 다르다. 반면에 자기기만은 자기라는 하나의 통일된 의식 안에서 모순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거짓을 행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려는 자신의 의도와 거짓말의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거짓말의 의도와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면 있을수록, 거짓말이 목표하는 바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비해, 자기기만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이다. 자기가 자기를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것은 자기기만이 아닌 거짓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기기만은 모순된 형태로 나타난다. 자기기만이 자기 의지에 반하여 자기를 속이지만 정작 자신이 속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타인에게 거짓된 행위나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이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자기기만은 이런 거짓말을 사실이라 스스로 확신하여 믿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런 자기기만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끝없는 자기반성이나 자기성찰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가 선택의 자유를 의미하기에 선택을 올바르게 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 습관화된 자기기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어느 정도 자기기만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키르케고르가 "사람이 속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인 것을 사실로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듯이 우리는 반성적으로 끝없이 노력하는 과정에서도 어느 순간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속인다. 오히려 내면적으로뿐만 아니라 외양적으로도 더욱 세련되게 스스로를 속인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타인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한다.

이렇게 불치의 병인 자기기만에 휩싸여 있는 사람을 고쳐보겠다고, 자기기만에 휩싸인 다른 사람이 함부로 메스를 들이대는 자체가 무모한 행위가 된다.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반성적인 성찰과 묵상만이 통제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최소한의 길이 된다. 어제의 나의 행위의 모든 것을 되짚어 보고 반성적으로 보는 것이다. 낯 뜨겁고 수치스럽게 다가오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다. 자기기만에 대한 근본적인 극복은 안 되겠지만, 가능성을 모색할 수는 있지 않을까?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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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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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강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01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더이상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자기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도록 주님에 의해 거짓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고 털려나간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주가 계시지 않는 종교인들은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신이라는 대상에 자기를 투사해서 자기확장을 노리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아담에게서 난 모든 인간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름의 신이든 자기를 장식하기 위한 노리개 정도로 사유하다가 싫증이 나면 다른 신상을 찾게되는 것이 종교인들의 버릇입니다. 기독교에 수많은 종파,교단이 생겨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그런 인간들의 종교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신으로 규정한 러셀이나 니체같은 무신론자들은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보다 그런면에서 더 정확하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과정에 속한 하나님의 일이지 인간이 개입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윗글처럼 자기성찰이나 반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인간은 그분 앞에서 전적으로 피동적이며 피조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때가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죄와 사망이 등장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강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01 하나님처럼의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래로 비정상적인 몸을 가진 인간들이 찾는 신은 나를 위한 우상에 다름아닙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우상이 등장할 때는 항상 '나를 위하여'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에서 그 인간, '나'에 대한 연구가 철학과 종교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계속되어 왔지만 어느 누구도 답을 내어놓지 못하는 것은 연구하고 성찰하는 인간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주가되신 한분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아담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 그 자체를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드러내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있음입니다. 그것을 약속의 아들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해 죄와 사망을 아담을 통해 세상에 들어오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절대의존, 은혜의 필연성을 가르치시기 위한 장치로서 죄와 사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를 죄와 사망이 멸망받은 곳이라고 합니다. 종교인과 신자의 차이는 그런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약속)의 개입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강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01 그래서 그 약속이 실행되고 있는 신자(믿음 안에 있는자)는 히브리서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일을 쉬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된 것이 구원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라고 합니다. 이것이 새피조물의 구원관이며 자인식입니다. 무엇이든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고 듣게 된 진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판단하실 분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그분을 '주'라고 합니다. 죄인을 피로사신 그분을 아는 것이 구원이며 그러므로 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어떤 정죄함도 있을 수가 없고 그들의 어떤 행위도 하나님이 카운트하지 않으십니다. 어던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며 찬송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아들 예수 안에서 그들을 받으셨고 영원토록 사랑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성경이 은혜라고 하고 믿음, 사랑, 자비, 긍휼, 용서, 화평,온유 등등의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모두 다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강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02 그러므로 인간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인간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만 드러날 따름입니다. 그들이 내어놓을 답이란 '신은 죽었다'는 자기기만으로 자신들의 죽음을 가리는 작업 일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작업자체가 죽은 자에게서 나오는 죽은 행실입니다. 인간은 사고하는 것으로 자신을 존재화 할 수 없음을 스스로 부정할 능력이 없습니다.그래서 모든 사고와 행위를 통해 의미찾기를 하다 인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로부터 시작된 모든 것은 가짜입니다. 전도서 기자의 말대로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세상에 헛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으니 창조주를 아는 것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전12:1-2) 그러나 이런 지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찾아진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난자들입니다.세상에서는 약하고 미련한 자로 천한 자로 여김을 받지만 예수가 그들의 지혜와 의로움과 구원함이 된 산자들입니다.그들만 산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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