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자식들
이순신은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方震)의 딸 방씨(方氏)와 결혼하여 회·열·면 등 3형제와 서자로 훈(薰)과 신(藎), 그리고 2명의 서녀를 두었다.이 중 셋째인 면은 정유재란이 일어나던 해인 16세 때 아산 본가에서 왜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면은 다섯 아들 중에서도 담력과 총기가 출중하여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으며, 이순신도 면의 장래를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어머니의 부고를 접할 당시와 비슷하게도 이순신은 꿈을 통하여 미리 예감했던 것이다
아들 면을 잃은 이순신의 슬픔과 상심은 매우 컸다. 《난중일기》에는 아들의 죽음을 접하는 모습과 그에 대한 감정의 표현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희신의 둘째 아들 분(芬)은 왜란 당시 성천(成川)으로 피난 가 그곳 부사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막하로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으며 광해군 즉위년(1608)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정랑을 지냈다. 넷째아들 완(莞) 역시 이순신의 막하에서 활약했는데 그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끝까지 독전하여 승리를 이끌어냈다. 왜란 후 무과에 급제하여 충청병사와 의주부윤을 거쳤으며 정묘호란 중에 종제 신(藎)과 함께 전사하였다. 후세에 이순신과 그의 아들, 조카 등의 전적을 기리기 위해 충남 아산 배암골에 정려비를 세웠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