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 동네(10월 답사 후기-전은주)

작성자박윤미|작성시간04.02.13|조회수42 목록 댓글 0
아침에 햇살을 받으려 베란다 버티컬을 활짝 열어젖혔더니,
앞 뜰에 가을색이 잔뜩 묻어있었어요.
나무마다 이파리들이 물감을 잔뜩 머금고 있었어요.
단풍이 무르익고 있었어요.

두 아이를 학교로, 유치원으로 떠밀어 보내고
서둘러 갑천에 나갔습니다.
여기 저기 얼굴 내밀면 늘 맞부딪히는
마당발 아줌마들이 또 작당을 했거든요.
산으로 들로 들쑤시고 다니며
자연이 어쩌구 환경이 어쩌구 떠들어대는 걸로 성이 안차
이 참에 아예 정기적으로 날 잡아놓고
대전 근방을 헤쳐 보기로 했다지요.

오늘은 그 첫번째 소풍으로
우리 동네 근방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소감을 우선 한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겁니다.

자전거 타고 하이킹하며,
때로는 강변 둔치 잔디에서 삼겹살 지글지글 구워먹으며
늘 무심히 보아왔던 <탑립돌보>.
그저 하찮은 돌덩이들이
강 한가운데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는걸로만 봐넘겨 왔건만,
용수 확보를 위해 인공으로 조성한지
불과 10년도 안된거라는 사실도 놀라왔지만,
그 무심해 보이는 돌들이
갑천 하류의 생물들에겐 더할 수 없이 훌륭한
환경이 돼주고 있다는 사실도 무척 반가왔답니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친환경적인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로
어깨가 으쓱해졌지요.

호남 고속도로를 경계로
전민동과 이웃하고 있는 <탑립동>.
남편의 사무실이 이 근처에 있어서
참 많이 지나던 동네인데요.
그렇게 많이 지나는 동안 왜 내 눈엔 안 보였을까?
<탑립>이란 이름이 유래하게 한 동네 어귀의 돌탑,
장승처럼 떡 버티고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
갓바로 지붕을 덮어 가까스로 세월을 넘기고 있는 초가집이...

그것 뿐 아니예요.
구즉동 묵마을이 유명하다는 소문은 어디서 들어가지고,
그저 묵 한번 먹기 위해 가봤던 그 동네에,
무지무지 큰 느티나무가 있다는 사실도,
오솔길을 한참 들어가면
어른 둘이 팔을 활짝 벌려야 감쌀 수 있는 두께의
소나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았답니다.

새삼 깨달은 사실은,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사랑한 만큼 보이기도 한다는 거지요.
내 눈앞에 보이는 대상에
따뜻한 애정 없이는 그것이 가진 생명력과 문화와 감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는건 힘든 일일테니까요.

대전에 이사온지 만 2년이 됐어요.
가끔 지인들이 대전에 놀러와서,
"대전 구경좀 시켜줘"하면
그저 엑스포과학공원이나, 국립과학관에 데려가고
유성온천 한번 시켜주는 걸로 떼우고는
"대전에 볼건 별루 없다우"하며 머쓱해하곤 했지요.
나의 이런 손님대접이 얼마나 무식했는지,
오늘의 소풍으로 발가벗져지고 말았답니다.

오늘은 내가 사는 동네 근방을 한바퀴 돌았고,
다음엔 내가 사는 고장의 이곳 저곳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갈 테고,
그러면 나는 우리 동네에 대해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한,
조금은 유식한(?) 아줌마가 되겠지요.

아, 앞으로 우리 집에 놀러 오는 타지역의 지인들,
어쩌면 조금 피곤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대전의 훌륭하고 멋진 곳 구경시켜줄께!"
하고 여기 저기 질질 끌고 다닐지도 모를테니까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