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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 싸이월드(/anticboy)에 스크랩했던 글인데,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여기에 또 올립니다. 유쾌, 명쾌한 답변은 아니지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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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 <관악> 2001 겨울호-스누포와 신포니에타
작성자 최영규 (mouse101)
작성일 2004-09-03 오전 11:12:46
다음은 서울대학교의 교지인 <<관악>>의 2001년 겨울호 중 <학내공연자 - 공연을 대하는 몇가지 자세>의 일부인 "학내공연자2 - 스누포와 신포니에타"의 기사 전문입니다.
단과대학 내 오케스트라인 의대 오케스트라(SNUMO)와 치대 오케스트라(SNUDO)를 제외한, 교내의 두 단체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사 전문을 게재합니다.
기사는 서문과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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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공연이 어떠해야 하는가, 한 가지의 대답도 쉬운 대답도 나오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대학교 신포니에타(Seoul National University Sinfonietta)가 공연에 대한 다른 상을 가지고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스누포(Seoul National University Philharmonic Orchestra)로부터 독립을 한 사실은 그 어려운 질문과 대답에 관해 자신들의 입장을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을 공연자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일이었다.
스누포에서 분리한 신포니에타는 스스로를 전문적인 연주 집단으로 표방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제 3자의 입장을 전제할 수는 없겠지만. 질적으로 고차원의 연주를 하고 소규모의 걸러진 단원들로 구성하겠다는 시도는 대학문화의 프로화 경향을 드러내는 일종의 현상으로 생각되었다. 스누포와 신포니에타가 생각하는 학교 내의 공연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 차이가 나길래 분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학교 내의 공연이 가지는 최대의 목표 지점이 관객과의 소통이라면 어떤 방식에서 그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까. 각각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지금 학교 내의 공연이 어떠한 상태에 있고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일이 될 것이었다. 물론 클래식을 연주한다는 점에서는 관객과의 거리가 조금 다르게 계산되어야할 필요도 없지 않았다. 학교 내에서의 공연과, 연주회와, 아마추어의 음악과 클래식에 대해서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걱정스럽고 때로는 벌써부터 즐거운 공연을 보는 듯한 그런 대화를 가졌다. 한 동아리에서 다른 동아리가 분리되는 과정은 그 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지향점이라든지 일정한 신념 따위 이상의 충돌을 동반하는 일일 수 있다. 스누포와 신포니에타와의 이야기 속에서 학내 공연의 음악이라든지 또는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과는 다른 차원의 주제들도 많이 다루어졌다. 나이브한 편집위원은 학교 내 음악 공연자들의 순수하고 진지한 음악에 대한 성토와 온전하게 음악적인 의견의 충돌만을 보고 싶어했으나 그 이전에 거쳐야할 과정과 세세한 관계들은 공연 하나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공연에 대해 그리는 밑그림 외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아주 소소한 과정이나 절차들, 예를 들어 오디션의 선발기준이나 자세한 인원 수까지 별다른 편집 없이 그대로 싣는 것은 읽는 사람을 약간은 불편하게 할지는 몰라도, 두 단체를 이해하는 데에 적절한 배려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하고 싶은 음악이 있고 뿐만 아니라 무대를 높이고 그 위에 서서 연주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스누포와 신포니에타는 서로 다른 도착지점을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관객이라고 해서 절대적인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설정되어 있는 뚜렷한 상이 먼저 있고 그런 다음에야 무대에 올라오는 공연 단체들을 만나는 것은 분명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학교 내의 공연에 갈 때 들을 귀만 가지고 가지 않기 위해서, 공연자를 이해하는 관객으로서의 예의를 다하고 싶은 소망으로 대화가 가득찬다.
신포니에타의 창단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한다면
스누포) 신포니에타라는 단체가 생긴 것은 2000년 겨울 스누포 18회 정기 연주회 당시다. 동아리가 아예 새로 만들어졌다고 봐야한다. 스누포 내에서도 신포니에타의 분리를 보는 입장이 사람마다 다르다. 완전히 대치되는 입장에서부터 이해하는 사람까지. 신포니에타가 분리되어 나간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우선 신포니에타는 기존 스누포의 수석진과 임원진의 대부분이 만든 단체이다. 스누포는 사람이 많은 동아리이다. 동아리 연합회에 등록된 동아리 중에서 사람 수가 제일 많다. 따라서 운영 체계가 양분이 되어 있는데 수석진은 음악 쪽에서, 임원진은 실무 쪽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이 많은 만큼 할 일도 많은데 책임과 부담을 맡고 있었던 만큼 의사결정권도 거의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 연주회의 곡목 선정도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투표권은 수석들에게만 있었고 선곡 과정에서 다른 구성원들이 원하는 의도가 반영되지 못했다. 지나치게 어려운 곡들이 선정되는 등 의견이 계속 충돌했다. 18회 연주회 이전부터도 계속 존재했던 마찰들이 그런 계기로 해서 표면화가 되고 두 개의 오케스트라로 완전히 정리가 되기까지 혼란이 있었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여건이 되지 못해서 분리가 되었다고 본다. 공연을 꾸리는데 있어서도 신포니에타와 스누포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신포니에타가 함께 했던 스누포 17회 연주회에서는 클라리넷을 하는 신입생이 여러 명이었는데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신입생은 아예 단원으로 선발하지 않았고, 기존에 있던 1명의 단원만이 무대에 서고 나머지는 음악대학과 외부에서 객원 주자를 썼다. 관악기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프로 오케스트라에서도 곡마다 주자를 다르게 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플루트의 경우는 한 사람이 무리를 해서 세 곡을 다 연주하기도 했다.
연주회란 어떠해야 하는가, 아마추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쟁이 심했다. 그러다가 스누포의 핵심 세력들이 결국 나가서 동아리를 하나 만든 셈이다. 상존하던 갈등과 문제들이 민주적으로 해결되지 못했던 것이다.
신포니에타) 신포니에타의 창단 기념일은 2001년 1월 3일이다. 창단 발기인 11인으로 해서 정기 연주회를 3월과 9월, 특별 연주회를 5월과 11월에 개최하였다. 5월의 특별 연주회는 '신입생 환영 연주회', 11월에는 '해설이 있는 실내악 음악회'였고 9월에는 서울대에서 초청한 본 대학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 '콜레기움 뮤지쿰'과 합동으로 연주회를 했다. 우리가 스누포로부터 분리한 이유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스누포는 처음부터 두 가지의 내부적인 의견을 안고 꾸려지고 있었다. 처음에 생겼을 때는 음악 살롱을 위해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음악 듣고 연주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그 외에도 음악을 연주해야하는 연주 집단으로서의 의미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이런 구조에서 내부적인 갈등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말이다. 스누포 전체적으로 보면 뚜렷한 지향점이 불분명했던 것이다. 물론 어느 한 쪽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제는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신포니에타가 가지는 문제의식은 그렇게 출발했다고 보면 된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열심히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생각에서였던 것이다.
스누포) 지금의 스누포에게 있어 아마추어리즘이란 어떤 것인가. 명쾌한 해답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아마추어리즘을 '좋아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결국 '못 해도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게다가 확대 해석까지해서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보면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신포니에타가 갈라질 당시에 동아리 내에서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말을 놓고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아마추어리즘이라는 게 뭐냐, 그럼 하겠다는 사람을 다 받아주는 것이 아마추어리즘이냐', '하고 싶다는 사람을 자르고 객원으로 채우는 것이 아마추어리즘이냐', 하는 식의 이야기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서로의 극단적인 면만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입장은 이렇다. 함께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비중이 작더라도 한 곡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준다. 가능성을 틀어막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신입생을 받아봐서 알지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6개월 정도 연습하면 10년 넘게 열심히 한 주자들만큼 할 수는 없어도 무대에 서서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일단 연주회에 설 생각을 하고 나면, 합숙 훈련에 가서도 스스로 밤을 새워가며 연습한다. 신포니에타가 일단 잘 하는 것을 상당한 고려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열심히 하는 노력을 무엇보다도 높이 산다.
수준 높고 잘하는 연주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기 때문에 무대에 세운다. 누구나 하고 싶다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아마추어리즘 아닌가. 학교 내의 공연에서 '아마추어'가 '열심히' 한다는 의미는, 적어도 스누포에서는 이렇다.
신포니에타) 짧은 시간에 다 설명하기가 힘들다. 신포니에타에 동참한 사람들은 이미 취미로 하는 연주를 떠나서 그야말로 처절한 노력으로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다. 이와는 달리 좀더 부담없이 음악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두 생각이 많은 충돌을 빚었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우리도 스누포 내에서의 창조가 아닌 개조를 위해서 애썼지만 심한 반발이 드러나기도 하고 차이를 좁히지 못해서 결국 독립하게 되었다.
신포니에타가 또 다른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는 것인지, 아마추어를 떠난 프로화를 향해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스누포에 비해서는 '애호가'의 차원을 확실히 떠난 것 같지만 신포니에타의 구성상 프로화 그 자체를 위한 프로페셔널리즘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추어라는 입장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을 것이고 다만 스누포와 신포니에타는 관객을 대하는 자세가 다른 것 같다. 스누포의 경우에는 관객과의 관계를 자신들의 연주를 듣는 대상으로서만 설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순수한 그 이유에서 찾아오는 관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스누포의 연주를 듣고 관객들도 얼마든지 함께 즐길 수 있고 아마추어로서 그렇게 연주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주는 일, 스누포의 아마추어리즘이 그런 방식이라면 신포니에타의 경우에는 퍼포머 performer의 성격이 확연한 것 같다. 스누포와 신포니에타가 관객을 보는 눈은 각각 어떤가?
스누포)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고 했는데 한 쪽이 링에서 내려가 버린 게 되었으니 확실히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다만 현재의 스누포 수석진과 임원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참여, 즉 동아리 내의 사람들이 서로 연주회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다 같이 일하는 것, 소수를 중심으로 동아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 누구든지 동아리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유, 즉 동아리의 운영보다 공연에 대한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을 하고 있는 우리끼리 음악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아마추어니까 '아, 나도 저렇게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관객들이 가질 수도 있고, 우리끼리 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불러와 당신들도 우리와 함께 이런 음악을 즐겨달라는 의미에서의 음악과 연주를 말하는 것이다.
신포니에타)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바로 퍼포머의 입장이다. 공연이라고 하는 것 자체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달려있는 문제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공연이라는 것은 관객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만한 무언가를 보여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연주하는 사람들도 물론 중요하다. 자기들이 뭔가를 즐기면서 한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다. 연주회를 연다면 적어도 연주회다워야 하지 아마추어라고 해서 달라질 게 별로 없다고 봐야한다. 이런 의도로 기획된 공연이 지난 11월초에 열린 '해설이 있는 실내악 연주회'였다. 관객을 최대 100명에서 150명 정도로 예상하고 팜플렛도 150장을 만들었는데 실제로는 2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왔다. 관객의 수뿐만이 아니라 분포도 놀라운 것이었는데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250명 온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관객들이 홍보를 보고, 소문을 듣고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늙은 사람들이라 학교에서 부를 만한 사람들이 없었다.(웃음) 이 현상이 무엇을 말해준다고 봐야하는가, 신포니에타가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공연자 대(對) 관객으로서의 역할 설정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말이다.
학내 공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관객의 자리를 공연자가 직접 채우는 일은 학교 밖의 클래식 공연에서 특히 씁쓸한 관행이다. 연주자가 좌석표를 사서 '초대'하는 형식 말이다. 공연다운 공연을 방해하는 그런 현상이 학교 내에서도 재현되는데 게다가 학교 내의 클래식 공연이라면 음악을 들으러오는 관객 수를 늘이는 일이 더욱 힘들 것이다. 신포니에타의 <해설이 있는 연주회>의 성공적인 관객 동원을 그래서 자꾸 이야기하게될 것 같은데 클래식 관객의 저변이 없는 상황에서 기획 의도가 잘 들어맞은 경우라고 본다. 그런 식의 관객으로의 접근은 신포니에타의 방향 설정을 성공적으로 완결시키는 기제일 것이고 신포니에타가 배타적인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비판지점을 벗어나기 위한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진정한 공연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그 역할을 가능하게 해 주는 공연의 기획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공연에 대한 신포니에타 내부의 평가는 어떠했는가?
신포니에타) 그 공연은 우리가 공연의 그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도 그 연주회의 성과는 스스로 아주 좋게 평가하고 있다. 이번 연주회에는 예상이나 목표를 훨씬 상회하는 많은 수의 관객이 찾아와 주었다. 신포니에타 단원들과 일면식도 없는 관객이 많이 와서, 단원들과 안면이 있는 '얼굴 도장 찍으러 온 관객'의 비율은 매우 낮았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자녀들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에서부터 유학생으로 보이는 외국인까지. 신포니에타 내부적으로는 "대박이 터졌다"며 단원들은 기뻐하며 만족해 했고 대단한 자신감을 얻었다. 단지 관객 동원이 양적으로 성공한 것뿐만이 아니다. 객석에서도 때로는 재미난 해설에 웃음도 터져 나오고, 또 때로는 연주자의 진지한 모습에 숨을 죽이고, 각 곡이 끝나고 나오는 박수도 우렁차고 길었다. 내용적으로도 관객과 연주자간에 많은 교감이 있었던 큰 의의를 갖는 연주였다는 것이 자체 평가다.
우리의 창단 취지는 오케스트라의 원리를 따르면서 진지하게 열심히 연주하고, 그런 사람들이 인정받고 그 속에서 단체가 커 가는 것이다. 창단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객들의 저변을 늘리고 관심을 갖게 하고 공연에 오게 하는 그런 시도가 많아질 것이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서, 상대적으로 더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치뤄지는 정기 연주회보다, 오붓한 공간에서 좀 더 편안하고 친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부담 없는 이야기도 곁들인 음악회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학내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을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관객들로부터 이해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직접 판단해갈 것이다. 오히려 프로들이 할 수 없는 영역으로 다가가는 일이 관객들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특히 신포니에타의 존재 기반은 관객에 있다. 사람을 위해서 음악이 있지 음악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게다가 아마추어라면 그저 연주자가 즐길 수 있는 연주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는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연주를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집단의 존재의의는 어디까지나 관객이라는 거다.
관객에 대한 이야기는 또, 한참 해야하는 부분인 것 같다. 관객의 수를 양적으로만 비교하고 공연의 성공을 평가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 같고. 관객들에 대해 미묘하게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스누포의 경우에도 관객들과의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그 것이 스누포가 생각하는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는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클래식 연주라는 점에서 특별한 노력이 역시 필요할 것 같다.
스누포) 신포니에타가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을 통해 관객과의 공감을 얻어냈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연주회 자체가 관객과 공감하는 자리라고 말하고 싶다. 실내악 규모의 공연은 '솔로이스트 앙상블'이라는 이름으로 스누포에서 매년 여름과 겨울, 종강 후에 주최되는 행사로, 올해 겨울로 16회가 된다. 이 무대에서는 단순한 실내악 규모의 클래식 곡뿐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러 곡들이, 종종 스누포 주자들의 편곡을 거쳐서 올라온다. 겨울 앙상블때는 캐롤이 연주되고, 실내악 규모로 하기 좋은 대중가요등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다. 사실 신포니에타가 분리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연주회는 우리들만의 연주회였고, 거의 외부의 관객을 들이지 않았지만, 지난 겨울부터 학교 내에 홍보도 하고, 타대 오케스트라에게 교환공연을 부탁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것들이 이러한 노력은 정기연주회에서도 이어지는데, 19회 연주회에는 '베르디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서 관객들의 호응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리골레토'의 아리아를 공연했고, 20회 연주회에는 그동안 스누포의 걸어온 길을 조명하고 관객과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기획들을 음악적으로, 그리고 음악 외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정기 연주를 일년에 두 번 하는 것만도 사실 보통 일이 아니지만, 내년부터는 좀더 학내 청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교내 순회 연주를 계획하고 있는데, 스트링 앙상블이나 목관 앙상블의 형태로 사범대, 공대 같은 곳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연주할까 한다. 스누포 내의 교육을 위한 준비 단계로 오리엔테이션이나 전반적인 클래식 악기 설명 등을 하는데 이런 것 클래식에 대한 강의들을 관객들을 상대로 하는 것 등을 생각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스누포가 생각하고 있는 아마추어리즘의 두 가지 측면의 정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겠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열심히 해야하는 것이 아마추어리즘이라면 스누포의 경우에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큰 숙제인데, 이런 식으로 계속 연습을 하고 악기를 놓지 않음으로써 연주회와 연주회 사이의 간격을 메우고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어쩌면 프로의 음악까지도 뛰어넘으려는 시도와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그 진정성을 높이 사야한다는 신포니에타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신포니에타의 지향점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신포니에타가 직업적인 기성 오케스트라만큼 연주를 잘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프로 오케스트라의 연주 대신 신포니에타를 들으러 오게 할만큼의 기회비용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마추어 내의 프로화 지향은 그래서 무의미하달 수도 있겠는데.
신포니에타) 우선, 신포니에타의 행보를 단순히 '프로화 지향' 이라는 말로 압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프로화'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마다 그 정의가 천차 만별이기 때문이다. 신포니에타에서는 '아마추어 vs 프로'의 개념틀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저, 신포니에타 단원들이 순수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으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우리의 연주를 상품화하는 행동을 추구하게 된다면 '프로화'되는 것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사실, 막상 신포니에타 단원들은 신포니에타의 행보가 제3자에 의해서 '아마추어리즘의 추구'라 명명되든, '프로화 지향'이라 명명되든 큰 관심이 없다. 여기서는 제3자들이 지칭하는 신포니에타의 '프로화 지향'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신포니에타의 목표 설정이나 지향점, 사고 및 행동 방식, 오디션을 비롯한 운영기제 등을 일컫는 것으로 상정하고 이야기하도록 한다. 따라서 이후로의 '프로화 지향'이라는 표현은 신포니에타 단원들 스스로가 프로화를 지향한다고 천명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가 편의상 신포니에타가 취하는 행보의 총체를 지칭하는 어떤 것임을 밝혀 둔다. 제3자들이 '아마추어 내의 프로화 지향'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그것이 무의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은 자신 있게 "아니다"이다. 그 '프로화 지향'은 우리에게 있어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첫째, 관객이 신포니에타를 찾고 안 찾고를 떠나서, 우리 단원들이 아마추어라는 이름 아래에서 나태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리는 데 있어서 소위 '프로화 지향'은 의미가 있다. "아마추어가 잘 해 보아야 얼마만큼이나 잘 하겠는가. 아무리 용써 보아야 기성 직업 오케스트라보다 잘 할 수는 없다" 라는 생각을 곱씹는 일종의 패배주의와 허무주의를 우리는 경계한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의 대부분은 장영주나 정경화 정도의 대가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더 잘해 보려는 대부분의 바이올린 전공생들에게 "네가 바이올린 잘 해 보아야 얼마나 잘 하겠는가. 아무리 용써 보아야 장영주만큼 될 수는 없다"는 식으로 그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장영주, 정경화 정도 되는 바이올린니스트들과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 콩쿠르를 생각한다면 국내의 소소한 콩쿨에서 바이올린부 2등 입상이냐 3등 입상이냐의 여부가 무의미한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더라도, 그 사소한 차이를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인생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음악 대학의 관악 합주단에 갖다 대 보면, 우승팀이나 꼴찌팀이나 그게 그거고 고만고만해 보이는 초등학교 밴드들의 경연 대회라도, 조금이라도 더 잘해서 우승컵을 차지하려는 초등학생들의 열망과 노력하는 자세는 순수한 것이며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둘째, 관객이 신포니에타를 찾아오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신포니에타에 있어서 프로화 지향은 의미가 있다. 아니, 의미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강력한 '프로화 지향'을 통해 수준 높은 공연의 질을 담보해 내는 것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하다고 믿고 열심히 할 뿐이다. 하버드 대학 오케스트라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아마추어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이 단체는 분명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이지만 그 연주력의 수준이 기성 직업 오케스트라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높다고 한다. 그들은 모교 내 공연뿐만 아니라 방학 때 세계 순회연주를 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관객들이 운집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례들을 접하며, "그냥 먼나라의 일"로 단정짓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가능성이나마 붙잡고 한계를 끝없이 극복해 나가려는 각오를 하게 되며, 그러한 것에 목표를 조준하여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를 일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신포니에타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로 우뚝 선다면, 객석이 비는 것을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내가 그 동아리의 멤버는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내가 다니는 모교의 오케스트라가, 합창단이, 풍물패가, 노래패가 각자의 공연 장르에 관한 한 한국의 대학교 동아리들 중 최고가 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얼마 전 전국의 대학교 내의 음악 활동을 하는 동아리들이 경연하는 대회에서 서울대학교 혼성 합창단이 대상을 수상했다는 감격적이고 자랑스런 소식을 접하였다. 서울대 학우들이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와 만나서 서로 모교의 자랑거리들에 대해 야기할 때 신포니에타가 그 중 한가지로 포함될 수 있을 정도로 신포니에타가 최고의 연주력을 갖추고 유명해 질 것을 열망하기에, 또 그렇게 되는 것이 관객들로 하여금 신포니에타를 들으러 오게 만들 수 있는 길이기에 신포니에타에게 있어서 '프로화 지향'은 의미가 있고 절실하다.
신포니에타가 지향점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겠는데 그 지향점의 성취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반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스누포의 연주나 음악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스누포가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거나 과정에 있어서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열심히 하고 목표를 위한 진지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만으로는 신포니에타의 차별화 되고 수준 높은 연주력이라든지 질 좋은 음악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다른 무엇이 있다면.
신포니에타) '열심히 연습을 한다'라든가 '진지하게 준비를 한다' 식의 말로는 두 단체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신포니에타에서 스스로 '열심히 음악 활동을 하는 단체' 라고는 하지만, 스누포에서도 스스로 '열심히 음악 활동을 하는 단체'라고 한다. '열심', '열정', '연습'이라는 단어 자체로는 차이를 알 수가 없다. 차이는 '열심', '열정', '연습'과 같은 말에 대한 기준과 관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차이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서로간에 추구하는 바의 주관적 차이를 의미하며, 상호간에 '틀렸다'기 보다는 '다르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지만 아마추어다' 가 아니라 아마추어이지만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다'라는 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기성 직업 오케스트라이건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이건 간에 오케스트라라면 오케스트라의 질서를 가지고 공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적인 것인지 취미로 하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의미에서는 모두 똑같은 오케스트라다. 관객을 모아 놓고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그 음악을 잘 만들기 위한 특별한 조치들을 가지고 있다. 학내 공연에서도 그러한 조치들이 존중되어야 하고 오케스트라다운 질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의 질을 위한 보편적인 장치들, 오디션이라든지 엄격한 수준 제한 등을 학교 내의 아마추어 공연에도 적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서 곡의 특성도 살리지 못하는 악기 편성을 가지고 연주회 여는 것이 아마추어 공연의 제대로 된 모습인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과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 현악 편성이나 관악 편성은 구체적으로 차이가 나야 한다. 곡에 맞는 오케스트라의 사이즈가 엄연히 있는데 맹목적인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한다면 오케스트라의 음악다운 음악을 얻기 힘들어질 것이다. 어느 파트는 지나치게 많이 편성되고 어느 쪽은 모자라게 편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제대로 된 음악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리해서라도 음대 객원 연주자를 써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축구 동아리에서 지원자가 많다고 해서 열 한 명의 엔트리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이다.
스누포) 객원 단원으로 인해서 연주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디션을 강화하면 신입생을 적게 받게 되고, 연주에 서는 사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음악을 점점 줄이고 남의 소리를 빌려서 쓰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연주의 역량으로는 객원주자들보다 서투르지만, 그 곡만 서너 달을 함께 연습했고, 그 동안 1년 2년씩 호흡을 맞추었기 때문에 서로의 음악을 잘 안다. 모차르트를 연주해야 할 때는 칼 같은 음정과 박자를 만들어내는 단원에게, 베토벤의 교향곡을 할 때에는 음악의 인토네이션을 잘 살릴 줄 아는 단원에게 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19회 연주회는 클라리넷과 플루트 단원이 모두 열명을 넘었고, 당연히 플루트과 클라리넷은 객원을 쓰지 않았다. 그 전까지만해도 한두명만이 연습실을 지키던 비올라도 일곱 명이나 무대에 섰다. 단적으로, 19회 연주회에서 25%대의 현 객원 비율은 17회 연주회의 현 객원의 비율이 40%에 가깝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이면서도, 19회 연주회는 많은 호평을 받았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열심히' 해서 함께 연주를 하는 것이야말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아니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만이 해낼 수 있는 음악적인 열매라고 본다.
신포니에타) 우리가 프로화를 지향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과만을 보고 연주의 질적인 수준을 재단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더 순수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열정과 노력으로 프로화 된 공연 원리의 틀을 따라서 제대로 된 공연을 관객에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의 프로화이다. 우리는 아마추어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를 인식하는 잣대가 다를 뿐이다.
스누포) 스누포는 누구나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는 곳이지 실력 없는 사람들이 연주하는 곳이 아니다. 스누포에서는 못 하는 사람이, 신포니에타에서는 잘 하는 사람이 연주를 한다는 인식은 정말 부당한 것이다. 20명이 연주하는 경우와 50명이 연주하는 경우에 어느 쪽이 더 어려운 연주를 하고 있겠는가? 당연히 사람이 많으면 앙상블을 위해 배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맞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잘하는 사람,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모두 끌어안고 좋은 연주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 선후배간에 서로 함께하는 음악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는 敎學相長을 우리는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한다. 좋은 연주, 완성되고 뛰어난 연주라는 것은 몇 명의 잘 하는 사람들의 음악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내는 음악이야말로, 아마추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추어리즘이 기본적으로 상업적인 기반이나 화폐, 금전적인 이해 관계를 떠나서 하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할 때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 신포니에타에서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사람을 엄격하게 가린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아마추어리즘 내에서의 다른 모색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좀 부피가 큰 것이다.
신포니에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음악을 위해서 하고 싶은 것이라면 음악을 음악답게, 음악적인 책임을 가지고 하는 내에서 해야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아마추어리즘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결과만 중요시하고 거기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결단코 부당한 비판이다. 목표 설정 자체가 다를 뿐이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을 우리는 최선의 것으로 중시한다. 결국에는 완벽한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다. 음악에 완벽이란 없지만 완벽을 지향하는 자세가 첫째이고 그러한 과정이 진짜 아마추어리즘의 의의이다. 전공자가 아니고 직업이 아니니까 수준 높은 연주에 메일 필요는 없다는 방식의 사고는 가지고 싶지 않다. 신포니에타가 아마추어리즘의 근본적인 정신에 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학자처럼 기자가 직접 겪어봐야 하는데. 말이다.(웃음) 관악은 어떻게 구성원을 모집하는가?
우리도 지원 자격이나 선발 시험에 대한 논의가 선배들로부터 지금까지 늘 있다. 우리는 엄격한 초기 선발 기준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지원과 승인 이후의 과정에서 편집실에 대한 태도나 생각, 책임감, 발전 정도 등을 중요하게 평가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은 교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문을 열 정도면 지원 승인은 문턱 없이 해줘야한다는 입장이다. 지원 자격을 갖춰 놓고 합/불합격을 판정할 필요성도 가끔 느끼지만 그것보다는 학우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단 지원한 사람이 편집실에 대해서, 책을 만드는 일에 관해서 정확한 인식을 하고 있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가가 중요하고 거의 대부분 자신이 알아서 판단하고, 따라오지 못할 것 같으면 활동을 접는 식이다. 편집실에서 해야할 역할은 그 책임감과 교지의 방향성을 제대로 일러주는 일이고 편집실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편집실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고도 계속 활동하고 있거나 편집실에 필요한 인자가 활동하고 있지 않다면 기존의 편집실에서 제대로 역할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격한 선발 기준은 따로 정해놓지 않는다. 다만 지원자들의 생각이나 구체적인 특성이나 색깔(?) 같은 것들을 면면히 파악할 기회가 아쉬워서 전원 시험 전원 합격 정도의 절차가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논의가 더 있어야겠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갈 것 같다.
신포니에타) 학내의 공연 단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관악에서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 정도라면 괜찮다' 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스누포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관악과는 달리 오케스트라는 공연 단체라는 특성상 적정 인원을 유지하지 않고 여러 가지 면에서 제한을 두지 않으면 결국에는 음악과 공연의 질적 수준 자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동아리 연합회의 연행예술 분과에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오디션을 통한 선발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물며 전문적인 훈련을 특히 필요로 하는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더욱 중요한 조치이다. 타 대학의 대부분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엄격한 오디션을 실시하여 신입 단원을 선발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고 해서 신포니에타에서 요구하는 오디션의 수준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지난 1학기에도 거의 악기를 처음 배운 수준의 바이올린 지원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합격하였다. 또한 오디션을 본다고 하더라도, 불합격이라고 다 같은 불합격이 아니다. 입단은 허용되지만 연주회 무대에 당장은 못서는 경우, 제한적으로 연주회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 아예 활동을 못하게 되는 경우 등등 각 단체의 사정과 여건을 고려하여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교지 편집실과 공연 단체를 똑같은 경우로 보기는 힘들겠지만 아주 동떨어진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교지 관악도 아마추어 언론이지만 준프로의 정신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디션을 강화했는데 언젠가는 신포니에타의 실력이 월등히 향상되어서 우리 같은 실력으로 오디션을 보면 합격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우리의 꿈이다.
연주할 곳이 없어지면 큰일 아닌가? (웃음)
신포니에타) 신포니에타의 실력이 월등히 향상되어서 현재 단원 같은 실력으로는 오디션을 보면 합격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오는 것이 우리의 꿈이지만, 현재 단원들의 각오나 정열을 본다면, 졸업하고도 꾸준히 악기를 가까이 하며 열심히 할 태세이기 때문에 새까만 후배들에게 호락호락 추월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만약 미래의 후배들이 우리를 훨씬 능가한다면,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연주할 곳이 없어지는 것을 기뻐할 것 같다. 아마추어로서의 즐거움은 있되 한계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연주를 준비하고 연습을 하고 음악을 대해야 음악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고 고민의식이 생기고 열심히 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평생 연주할 것이고 평생 치열한 아마추어로 음악을 지속할 것이다. 아마추어는 연주를 잘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연주를 위해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소통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비판도 많이 듣는데 우리는 오히려 평생 같이 연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서 더 잘 이해하고 대화한다. 저학년 때에 연주를 하다가 이제 조금 음악과 연주라는 것에 대해 눈이 뜨일 때쯤 해서 동아리라는 성격에 묻혀 그야말로 동아리 활동하듯이 그만두는, 쉽게 들어와서 쉽게 나가는 곳이 아니라 음악다운 음악과 공연다운 공연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말이다. 발전 가능성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지속 속에서 생겨난다고 믿는다. 우리는 2001년 올해의 1기 단원 모집 이후에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 멤버가 지금까지 연주를 같이 해오고 있다. 현악 파트에서 열 두 명이 필요하다면 저학년이 투입되어서 연주하다가 조금 연주력이 생기는 고학년이 되면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형태의 운영이 아니라 그 필요한 열두 명을 가장 실력이 좋은 열두 명으로 계속 꾸려가겠다는 것이다. 그게 신포니에타의 발전 가능성 아니겠는가.
스누포) 신포니에타가 분리되기 전의 스누포에서도, 고학년이 되면 연주회를 서지 못하게 되는 현상은 저학년들에게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고학년이 되면서 자신의 전공 공부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불가피하게 연주회를 계속하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동아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문제의 하나이며, 도리어 우리는 이번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노련한 고학번 선배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고, 권유하고 있다.
학교 내의 공연에 있어서 일정한 선 이상의 수준을 가진 연주 집단이 지속적으로 존재할 필요성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 지속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신포니에타에서 생각하는 그런 식의 수급, 질적인 수준의 양적인 충원이 앞으로도 가능하리라고 보는가.
신포니에타) 걱정하지 않는다. 현재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아마추어들의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연주와 공연의 지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내 공연에 있어서 지속적인 공연이 수준을 담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신포니에타의 신입 단원 오디션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전혀 높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 기준 이상 되는 사람은 매우 많을 것이다. 또한, 사실 신포니에타의 정기 연주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앙상블 능력을 당장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수준 높은 역량을 갖춘 신입생을 입단 오디션에서 발견하기란 매우 드문 일이다. 그 높지 않은 기준을 간신히 통과한, 그다지 역량이 빼어나지 않은 경우가 신입 단원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신포니에타의 선배들은 그런 후배들과 같이 연습하고, 레슨을 받고, 열심히 하면서, 실력을 쌓도록 도와준다. 배우고 연습하고 고민하는 과정 후에 무대에 적합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또한 신입단원의 대부분이 합주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신포니에타에서는 신입 단원 전원을 대상으로 13∼15시간에 이르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은 주로 선배들과 합주를 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연습을 하면서 혹은 연습 중간 중간에 기본적인 음악 지식에서부터 지휘 보는 법, 음정과 박자 맞추기, 다른 악기 소리를 듣는 훈련 등 오케스트라 활동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교육한다 또한, 신포니에타의 창단 정신과, 운영 원칙에 대한 교육도 잊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노력이 교육 기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입 단원들이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꾸준한 지도와 대화를 통해 마련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대다수의 신포니에타 단원들은 이런 노력들을 통해 양성되는 것이지, 결코 원래 잘하던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신포니에타 창단 멤버들 중에는 대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악기를 난생 처음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악기를 열심히 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원들도 많다. 지금 1기 단원들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레슨을 받으며 악기 실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연주자의 충원과 수급에 있어서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스누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중요한 점, 어떻게 보면 한계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중요한 점의 하나는 스누포가 '대학 오케스트라'라는 것이다. 스누포만이 아니라, 많은 대학 오케스트라는 필연적으로 같은 걱정거리, 즉 연속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잘하는 사람들이 연주를 계속하게 하는 방식으로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스누포의 역대 연주회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객원 비율의 증가와 같은 문제를 피할 수 없을뿐더러, 스누포가 추구해나가고자 하는 방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연주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뽑으려고 한다면 왜 굳이 서울대학교로 한정해서 오케스트라 단원을 받는가? 우리는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이지만,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이다. 연주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아리이지만, 그 연주를 준비하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점을 높이 산다. 이것은 서울대학교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써, 우리가 지켜야 하는 의무이자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관객의 입장이 되어서, 양쪽의 의견을 모두 긍정하고 싶다. 두 단체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풀어야 할 숙제 또한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노력'이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개인적인 노력뿐만이 아니라 학교 내 고연의 전반적인 문제와 흐름에 대해서도 늘 고민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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