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벌레 먹은 만나

작성자박건우(밴쿠버)|작성시간22.04.23|조회수155 목록 댓글 4

벌레 먹은 만나
                      엄상익 변호사

친구와 통화중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이번에 내가 가지고 있던 땅을 팔아 버렸어.”

그가 눈물겹게 번 돈으로 산 땅이었다. 소아마비라 어려서부터 목발을 짚고 다녔던 그는 대학시절 버스비가 없어 여러 정거장을 걸어 집으로 가기도 했었다. 불편한 몸으로 고통스런 인생길을 걸으면서 한푼 한푼 모은 돈으로 산 땅이었다. 그는 그 땅에 집을 지어 아버지를 모신 효자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그는 거기서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있었다.

“그래 잘했다. 이제 칠십노인인데 그 돈으로 여생을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평생 고생이 많았는데 하고 싶은 걸 이제는 다 해 보는 게 어떨까?”

“아니야 수명이 백세시대가 되고 이제는 일도 할 수 없는데 잘못해서 오래 살다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 고정수익을 얻을 다가구 주택을 알아보고 있어.”

내일의 일을 염려하는 게 우리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을 준다는 걸 입으로 말하면서 믿지 않는다. 굶어 죽을 두려움에 잡혀 대부분 번 돈을 쓰지 못한 채 죽는다. 나도 그렇다.

내 기억의 언저리에서 우연히 들었던 얘기가 하나 떠오른다. 며느리가 싫어해서 아들집을 나와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평생 일하면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모은 돈으로 산 작은 아파트가 한 채 있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그 아파트를 팔아 현금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학교 다니는 손주들이 올 때마다 꼭꼭 오만원씩을 주었다. 학원가기 바쁘다면서 안오던 손주들이 할머니한테 자주 들렸다. 할머니는 며느리나 아들이 올 때마다 백만원씩을 주었다. 며느리가 밑반찬을 해서 자주 찾아왔다.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서도 돈을 쓰기 시작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비싼 콜택시를 불러서 정중한 대우를 받으면서 갔다. 가끔 아들 내외와 손주를 불러 고급호텔의 레스트랑에 가서 젊은 시절 먹어보지 못했던 스테이크를 함께 먹기도 했다. 할머니는 주변에도 조금씩 사랑을 베풀기 시작했다. 단골 지압사에게 의료용 의자를 한 대 선물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그 할머니의 돈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을 했다. 그러던 할머니가 죽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할머니의 은행통장에 남은 돈을 확인했다. 통장에는 아직도 이억 칠천만원 정도의 돈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가 번 돈을 다 쓰고 죽으려고 계획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돈이 남아 있었다. 전해들은 그 얘기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게 던져 주었다. 며칠 전 나의 블로그에 독특한 댓글이 하나 떴다. 열심히 벌었으면 이제는 계획을 잘 세워 남김없이 잘 쓰고 가라는 충고였다. 이상하게 그 말이 강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여러 형태로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돈이란 무엇일까. 죽겠다고 모아 그걸 쓰지 못하고 죽는다면 하나님의 선물의 남용이고 그걸 썩히는 건 아닐까. 하나님은 매일 아침 신선한 만나를 그들 위에 내리셨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그 은혜를 믿을 수 없어 만나를 저축해두려고 했다. 그 만나는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만나를 돈의 형태로 지식의 형태로 신앙의 형태로 내려주셨다고 믿는다. 나는 필요하면 그때그때 주신다는 그 분의 말을 믿을 수 없어 돈을 저축해 두기도 했다. 필요이상의 돈이 있을 때 억울하게 그 돈을 빼앗기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변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선한 일에 썼으면 후회나 없을 걸 하고 반성했다.

그분이 내리는 만나를 저축하면 생기는 일 같았다. 지식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배운 전문지식도 나누어주기 아까운 때가 있었다. 힘들게 공부했는데 그냥 주기 싫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다 쓸모없는 낡은쓰레기가 되어버렸다. 신앙도 그랬다. 혼자 성인같이 되고 싶었다. 은밀한 곳에서 영혼의 양식을 나만 먹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 신앙은 결국 종교오락이 되어 자기자신조차도 구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쌓아두고 싶은 욕심의 결과는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은 거울 속에서 늙은 나를 발견한다. 머리 뿐만 아니라 눈썹에도 하얗게 눈이 내렸다.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인색한 적이 많았다. 찾아와 손을 내미는 친척 동생의 손을 뿌리친 일이 기억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반성한다. 인간적인 의무위반이었다. 가지고 있는 약간의 돈을 남김없이 잘 쓰고 가고 싶다. 하나님이 물질을 주신 것은 그걸 가지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니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송경희 (서울) | 작성시간 22.04.23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박건우(밴쿠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23 감사합니다. 늘 기쁘신 날 되십시요.
  • 작성자윤길순 (TX) | 작성시간 22.04.24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박건우(밴쿠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24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