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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영작문

작성자장성숙|작성시간22.08.25|조회수94 목록 댓글 4

 

 

어린아이의 영작문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나를 찾아온 젊은 여성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였다. 오랫동안 유학하면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귀국했는데,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틈틈이 활동하는 동안 그녀는 부업으로 취학 전 어린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런데 수입이 꽤 괜찮았고, 그러면서 무게 비중이 점점 영어지도로 쏠리자 그녀는 혼란스러워했다. 전공 분야에 열중하자니 경제적 자립이 어려울 게 뻔하고, 영어지도를 하며 지내기에는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여성에게 이것을 택하느냐 아니면 저것을 택하느냐 하는 것을 두고 고민하기보다 모두 다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도록 하였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는 어느 정도 경제적 지원이 받쳐주어야 하므로 영어지도로 버는 돈이 필요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흡족해하며 그와 같은 고민 외에 다른 것도 상의하고 싶다며 상담을 지속하였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강남 어머니들의 요구가 도를 넘는다며 하소연했다. 아이는 영어 공부하기를 싫어하는데, 어머니들은 어떻게든 구겨 넣는 식으로라도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단다. 좋은 유치원에 입학하려면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데 그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말에 기막혀했다. 좋은 영어 유치원 입학을 위해 그 어린 나이에 아이들이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니…. 내가 어이없어하자, 그녀는 더 놀라운 일이 있다며 아이들이 영어로 작문한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꼬불꼬불한 글씨로 쓰인 영작문인데 문장 구성이 제법 갖춰져 있다. 한국말로 작문을 해도 놀라울 판인데 영어로 그렇게 쓰다니! 나는 놀라고 말았다. 내가 처음으로 영어를 접했던 것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인데 요즈음엔 초등학교를 입학도 하기 전에 아이들이 영작문을 짓다니!

 

   조카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어린 아들이 그곳에서 몇 년 지냈다. 언제가 내가 조카에게 아들이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조카는 자기 아들이 영어를 제법 하지만 그만큼 한국어는 서투른 것 같다고 하였다. 상세히 살펴보면 말할 때 약간 주춤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 시기에 두 언어를 배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단다.

   모국어를 충분히 익힌 다음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느니, 사춘기를 맞이하기 전에 외국어를 배워야 효율적이라니 하는 논쟁이 한동안 활발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논의는 쑥 들어갔고, 어쨌든 일찍이 영어를 배워 남보다 앞서는 게 중요하다는 게 오늘날의 대세다. 국어를 익히기도 전에 외국어를 배우려면 심리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부모들이 자녀가 겪는 그런 고충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칫하다가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데도 뒤처질 수는 없다는 식이니, 보기에 따라 잔인한 태도라고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썼다는 영작문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나는 그 젊은 여성에게 그 정도로 잘 따라오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10명 중 1명 정도는 놀라울 정도의 실력을 발휘하고, 2명 정도는 억지로 따라오는 편이며, 나머지 애들은 울고불고 떼나 쓰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많은 부모가 막무가내로 자녀들에게 영어 학습을 시킨단다. 즉 한두 명의 아이를 위해 나머지 아이들은 바탕이나 깔아주고 만단다.

   이러한 말을 듣고 나는 오늘날 많은 학부모가 자녀의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 아래 엄청나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하기 어려웠다.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에 비해 자녀 교육비로 너무 많은 돈이 지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두드러진 성과를 내는 확률에 끼이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다소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많은 어머니가 좀 더 현실적으로 되었으면 한다. 남이 장에 간다고 나도 장에 가는 식으로 자녀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는 식으로 돈을 쏟아붓다가는 가정의 경제가 위태로워질 것 같아서다. 그뿐만 아니라 과도한 학업은 아이에게 지겨움을 남겨 도리어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설사 실력을 갖출지라도 억지로 하는 과정에서 의욕을 잃는다면 큰 손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자녀가 마냥 찧고 까불도록 허용하며 크게 탈선하지 않도록 방지나 해주는 부모가 자녀에게는 좋은 부모이지 않을까 한다. 다소 실력은 떨어지더라도 기가 살아있으면 어디서든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다른 무엇보다 긍정적인 성격 형성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금 강조하는데,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 사람들이 우르르 우르르 정신없이 좇는 대세를 따르기보다 그것을 거스를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아이의 영어 실력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보다 밝고 쾌활하게 자라도록 좋은 토양이나 울타리를 마련해주는 게 으뜸가는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가 자기만 뒤처졌다는 식의 불안에 떨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녀의 행복은 부모의 강건함과 비례한다고 말해도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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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윤길순 (TX) | 작성시간 22.08.25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장성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8.27 오늘부터 한국의 날씨는 가을 같습니다. 밤새 비가 잠시 지나간 후 쾌청하고 서늘한 날씨랍니다. 미국에서도 좋은 기후를 맞이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윤길순 (TX) | 작성시간 22.08.27 장성숙 네, 감사합니다..

    오늘 97도F 온도이네요.
    대학생 ,대학원생 7만명정도가 개학을 하니 온타운이 복잡하네요.
    바이러스 문제도 심각하구요.^^
  • 답댓글 작성자장성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9.01 윤길순 (TX) 한국에는 다시 코로나 감염이 유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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