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연못 모네의 작품 <수련 연못>1917-1919 ⓒ Claude Monet/위키피디아 | Public Domain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8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지베르니를 찾는 관광객은 매해 50만 명. 저마다 국적도 다르지만 모두 클로드 모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귀스타브 제프루아는 미술비평가이자 작가이며 모네와 로댕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모네 생존 당시에 지베르니의 정원을 보았고 귀하게도 그 감회를 생생하게 글로 남겼습니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이상 가기 힘듭니다. 그러나 한겨울을 제외하고 모네의 정원에는 꽃이 지는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모네는 왜 그토록 정원을 가꾸는 데 몰두했을까요? 모네를 두고 ‘빛의 화가’라고 하지만 빛을 캔버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색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모네는 그 가르침을 꽃에게 구했습니다. 한쪽에는 보색을 이루는 꽃밭을, 다른 쪽에는 비슷한 색채로 구성된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자신의 정원에서 색을 공부했습니다. 모네의 미술을 향한 이런 눈물겨운 노력을 간파한 작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였습니다. 그는 지베르니의 정원을 돌아본 후에 이런 예찬을 남겼습니다. 이 정원은 한낱 그림의 소재를 넘어서서, 그 자체로 이미 예술의 대체물이다. 위대한 화가의 눈에 비친 자연으로 다시 태어나 완성된 정원이기 때문이다. 모네의 이 정원은 이미 조화를 이루는 색조들로 준비된 색상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스케치이자 살아 있는 스케치다.그러나 말년에 모네는 그토록 평생에 걸쳐 이해하려 했던 색채를 더 이상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실제 19세기 말부터 세부 묘사를 눈에 띄게 줄이면서 물체를 흐릿하고 불명확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그의 눈에 정말로 그렇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백내장 때문이었습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투명함을 잃고 뿌옇게 얼룩지는 현상으로 흔히 백태가 끼었다고 표현하며 주로 노인에게 나타납니다. 모네는 1912년 일흔두 살 때 백내장 진단을 받았고, 1918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시력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빛을 전처럼 정밀하게 그릴 수가 없습니다. 이젠 빨간색이 흐릿하게 보이고, 분홍색이 생기 없게 보여요. 그뿐 아니라 중간색이나 옅은 색은 전혀 보이지가 않습니다.” 모네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져 빛은 감지하지만 색이나 형태를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1923년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백내장 수술은 수정체에 낀 백태를 깎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의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수정체를 적출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수정체는 얇아지고 두꺼워지는 등의 변화로 빛의 굴절률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수정체가 없어도 보는 데는 지장 없지만 빛의 굴절을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하지요. 그래서 수정체가 없으면 심한 원시가 되고, 세상이 파란색과 보라색 계열로 보입니다. 모네가 백내장 수술을 두고 얼마나 극심하게 갈등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받지 않는다면 심봉사처럼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으니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모네는 두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았는데 그 결과 파란색이 너무 생생하게 보여서 노란색이 가미된 안경을 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필생의 대작이자 미술사의 걸작이 탄생합니다. 바로 〈수련 연못〉 연작 여덟 점입니다. 1916년부터 〈수련 연못〉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백내장도 백내장이지만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아내 알리스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1914년에 큰 아들 장이 스물일곱이라는 한창 나이에 망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지요. 그러자 블랑슈가 지베르니로 돌아왔습니다. 블랑슈는 알리스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입니다. 모네의 첫 번째 아내인 카미유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과 결혼해 모네에게는 의붓딸이자 며느리였습니다. 블랑슈는 어렸을 때 했던 것처럼 매일 아침 해가 뜰 무렵이면 모네의 화구를 수레에 싣고 정원으로 나가 모네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었고, 지베르니의 넓은 정원도 관리했습니다. 모네는 세상을 떠난 해인 1926년까지 〈수련 연못〉에 몰두했습니다. 11년에 걸쳐 완성된 여덟 점의 〈수련 연못〉은 빛의 화가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연이어 잃고, 더 이상 육체의 눈으로 정밀하고 선명하게 빛을 볼 수 없게 돼버렸을 때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빛은 곧 색채라는 화가로서의 신념을 더 이상 캔버스에 구현할 수 없었습니다. 백내장을 앓을 때는 먼지가 많은 날에 노을이 더 붉게 보이는 것처럼 사물이 붉은 색과 노란색 계열로 흐릿하게 보였고, 수정체를 적출하는 수술을 받은 후에는 사물이 파장이 짧은 파란색과 보라색 계열로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빛을 담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은 형태를 잃었지만 연못에 담은 빛이 관람객의 가슴을 또 하나의 연못으로 만들며 그대로 비쳐 들어옵니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가 국가에 기증한 여덟 점의 〈수련 연못〉을 보관,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술관입니다. 모네는 1927년에 개장한 이 미술관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1층에 긴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전시실에 들어서면 벽면 전체에 배치된 〈수련 연못〉이 자연광 아래 펼쳐집니다. 가운데 마련된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련에, 연못에, 빛에, 그리고 모네의 일생 앞에 눈물이 납니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8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지베르니를 찾는 관광객은 매해 50만 명. 저마다 국적도 다르지만 모두 클로드 모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귀스타브 제프루아는 미술비평가이자 작가이며 모네와 로댕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모네 생존 당시에 지베르니의 정원을 보았고 귀하게도 그 감회를 생생하게 글로 남겼습니다. 지베르니에 하나밖에 없는 대로로 난 출입문을 안으로 밀자마자, 시기가 어느 계절이든 간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온 것으로 착각한다. 꽃의 향기와 빛깔로 뒤덮인 왕국. 라일락과 아이리스에서 국화와 연꽃까지, 꽃들은 매달 옷을 갈아입는다. 진달래, 수국, 디기탈리스, 접시꽃, 물망초, 제비꽃 등 화려한 꽃과 보잘 것 없는 꽃이 섞여 언제나 준비된 대지에서 잇달아 피어오른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대가의 안목은 노련한 정원사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이상 가기 힘듭니다. 그러나 한겨울을 제외하고 모네의 정원에는 꽃이 지는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모네는 왜 그토록 정원을 가꾸는 데 몰두했을까요? 모네를 두고 ‘빛의 화가’라고 하지만 빛을 캔버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색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모네는 그 가르침을 꽃에게 구했습니다. 한쪽에는 보색을 이루는 꽃밭을, 다른 쪽에는 비슷한 색채로 구성된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자신의 정원에서 색을 공부했습니다. 모네의 미술을 향한 이런 눈물겨운 노력을 간파한 작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였습니다. 그는 지베르니의 정원을 돌아본 후에 이런 예찬을 남겼습니다. 이 정원은 한낱 그림의 소재를 넘어서서, 그 자체로 이미 예술의 대체물이다. 위대한 화가의 눈에 비친 자연으로 다시 태어나 완성된 정원이기 때문이다. 모네의 이 정원은 이미 조화를 이루는 색조들로 준비된 색상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스케치이자 살아 있는 스케치다. 그러나 말년에 모네는 그토록 평생에 걸쳐 이해하려 했던 색채를 더 이상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실제 19세기 말부터 세부 묘사를 눈에 띄게 줄이면서 물체를 흐릿하고 불명확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그의 눈에 정말로 그렇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백내장 때문이었습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투명함을 잃고 뿌옇게 얼룩지는 현상으로 흔히 백태가 끼었다고 표현하며 주로 노인에게 나타납니다. 모네는 1912년 일흔두 살 때 백내장 진단을 받았고, 1918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시력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빛을 전처럼 정밀하게 그릴 수가 없습니다. 이젠 빨간색이 흐릿하게 보이고, 분홍색이 생기 없게 보여요. 그뿐 아니라 중간색이나 옅은 색은 전혀 보이지가 않습니다.” 모네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져 빛은 감지하지만 색이나 형태를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1923년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백내장 수술은 수정체에 낀 백태를 깎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의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수정체를 적출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수정체는 얇아지고 두꺼워지는 등의 변화로 빛의 굴절률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수정체가 없어도 보는 데는 지장 없지만 빛의 굴절을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하지요. 그래서 수정체가 없으면 심한 원시가 되고, 세상이 파란색과 보라색 계열로 보입니다. 모네가 백내장 수술을 두고 얼마나 극심하게 갈등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받지 않는다면 심봉사처럼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으니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모네는 두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았는데 그 결과 파란색이 너무 생생하게 보여서 노란색이 가미된 안경을 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필생의 대작이자 미술사의 걸작이 탄생합니다. 바로 〈수련 연못〉 연작 여덟 점입니다. 1916년부터 〈수련 연못〉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백내장도 백내장이지만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아내 알리스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1914년에 큰 아들 장이 스물일곱이라는 한창 나이에 망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지요. 그러자 블랑슈가 지베르니로 돌아왔습니다. 블랑슈는 알리스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입니다. 모네의 첫 번째 아내인 카미유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과 결혼해 모네에게는 의붓딸이자 며느리였습니다. 블랑슈는 어렸을 때 했던 것처럼 매일 아침 해가 뜰 무렵이면 모네의 화구를 수레에 싣고 정원으로 나가 모네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었고, 지베르니의 넓은 정원도 관리했습니다. 모네는 세상을 떠난 해인 1926년까지 〈수련 연못〉에 몰두했습니다. 11년에 걸쳐 완성된 여덟 점의 〈수련 연못〉은 빛의 화가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연이어 잃고, 더 이상 육체의 눈으로 정밀하고 선명하게 빛을 볼 수 없게 돼버렸을 때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빛은 곧 색채라는 화가로서의 신념을 더 이상 캔버스에 구현할 수 없었습니다. 백내장을 앓을 때는 먼지가 많은 날에 노을이 더 붉게 보이는 것처럼 사물이 붉은 색과 노란색 계열로 흐릿하게 보였고, 수정체를 적출하는 수술을 받은 후에는 사물이 파장이 짧은 파란색과 보라색 계열로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빛을 담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은 형태를 잃었지만 연못에 담은 빛이 관람객의 가슴을 또 하나의 연못으로 만들며 그대로 비쳐 들어옵니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가 국가에 기증한 여덟 점의 〈수련 연못〉을 보관,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술관입니다. 모네는 1927년에 개장한 이 미술관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1층에 긴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전시실에 들어서면 벽면 전체에 배치된 〈수련 연못〉이 자연광 아래 펼쳐집니다. 가운데 마련된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련에, 연못에, 빛에, 그리고 모네의 일생 앞에 눈물이 납니다. 수련 연못모네의 작품 < 수련연못 > 1920-1926 ⓒ Claude Monet/위키피디아 | Public Dom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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