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금지된 장난

작성자최택만|작성시간21.02.27|조회수83 목록 댓글 1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가 유네스코지정 무슨 학교였던가 그랬었는데, 그와 관련해서 무슨 학예회같은 행사가 있었다. 날은 수업을 중단하고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앉아서 음악연주니 연극이니 하는 다양한 행사를 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른 행사내용들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유독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 나보다 학년 위인 선배가 나와서 멋진 솜씨로 기타를 연주하였는데, 시월의 청명한 하늘처럼 맑은 기타선율이 귀를 때리는 순간 나는 감전된 듯한 전율을 느끼며 아름다움에 빨려들어갔다. 어디선가 번쯤 들어본 청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수에 젖은 듯한 멜로디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곡이 바로 영화 금지된 장난 주제곡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스페인 전래곡 사랑의 로망스였다. 아마도 기타연주곡중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사랑받는 곡일 것이다.

 

그렇잖아도 젊은 가수들이 통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만 보면 가슴이 뛰던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였던 나는 이후 기타를 너무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형편으로는 감히 꿈도 없는 일이었다. 기타를 장만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한창 대학시험준비에 열을 올려야 고등학생이 기타나 잡고 띵땅거린다는 그야말로 금지된 장난 하나였다.

 

당시 우리들에게 금지된 장난 속하는 일들은 비단 기타 치고 노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세상에 하나씩 눈을 떠가며 호기심 많고 혈기방자했던 시절 우리들에게는 해보고 싶은 너무나 많았지만, 대부분이 금지된 장난 속했다. 머리를 길러도 되고, 시커먼 교복과 군복같은 교련복외에 색깔있는 사복을 입어서도 되고, 여학생을 만나도 되고, 담배를 피워도 되고, 술을 마셔도 되고, 유행가를 불러도 되고, 영화도 재미없는 건전영화 봐야 되고, 만화를 봐도 되고, 당구를 쳐도 되고 ……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은 모두 금지된 놀이였다. 

 

그렇게 반감옥같은 금지된 것들속을 용케 견뎌내고 대학에 들어갔을 많던 금지된 것들이 갑자기 모두 허용되는 해방감이라니.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길거리에서 담배도 버젓이 피우고, 술집에도 호기롭게 당당히 들어가고, 다방에서 커피도 마시고(당시엔 다방에서 커피뿐 아니라 위스키도 마셨다.), 머리도 치렁치렁 기르고, 청바지도 입고, 여학생도 만나고물론 꿈에 그리던 기타도 하나 장만했다.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신입생 환영회와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기가 무섭게 당시 대학생들이라면 숙명처럼 참여했던 반정부대모에 뛰어들어 독재의 압박에서 조국을 해방시키겠노라고 젊음을 불태웠다. 것이야말로 엄격하고 철저하게 금지된 놀이란 사실을 깨닫는데는 불과 달도 걸리지 않았다. 3월이 가기도 전에 최루가스 자욱하던 학교에는 탱크가 밀고 들어왔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지나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을 우리는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없었다. 때부터 차츰 사실이지만, 모든 허용되는 알았던 대학생들에게도 금지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이런 책은 읽어서는 되고, 저런 말은 해서는 되고, 그런 써클활동은 불법이고……

 

영화 금지된 장난 태양은 가득히’,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프랑스 감독 르네 끌레망이 직접 대본을 쓰고 감독하여 1952년에 발표한 영화이다.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난길에 비행기 기총소사로 졸지에 부모를 잃어 고아가 폴레트는 부모가 돌아가신 와중에도 데리고 다니던 강아지가 죽은 안타까워 죽은 장아지를 가슴에 안고 놓지 않을 만큼 철없고 순진한 꼬마이다. 죽은 강아지를 안고 시골 마을을 서성이던 폴레트는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미쉘을 만나 근처마을에 있는 미쉘의 대가족이 사는 집으로 따라가 같이 살게 된다.

 

강아지를 정성껏 묻고 십자가를 세워준 폴레트는 죽은 새나 짐승들을 모아 강아지 무덤주위에 묻어주기 시작하면서 죽은 동물들의 묘지를 만드는 일에 점점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다. 심지어 무덤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벌레를 죽이기까지 한다. 이런 폴레트를 위해 미쉘은 공동묘지의 십자가들을 계속 훔쳐와 버려진 물방앗간에다 동물들의 묘지를 만드는 둘만의 은밀한 놀이를 이어간다. 미쉘의 십자가훔치기는 점점 대담해져 나중에는 죽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자기 형의 무덤에서까지 십자가를 훔쳐와 마을에서는 소동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교회 제단의 십자가까지 넘보게 되는데 이런 와중에 폴레트는 아동보호기관에서 나온 사람을 따라 다시 파리의 고아원으로 끌려가던 감시가 소홀한 틈을 애타게 미쉘!” 엄마!’ 외치면서 군중속으로 사라진다.

 

어른들이 벌이는 살벌한 살육의 전쟁 한가운데서 천사같이 순진무구해 보이는 꼬마가 천연덕스럽게 엮어가는 죽은 생명들 장례치르기 놀이 일견 반전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이 읽히기도 하지만, 앙증맞다고 정도로 앳되고 티없어 보이는 다섯살 소녀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그런 폴레트를 만족시키는 일이라면 어떤 금지된 것들도, 심지어 하느님의 집인 교회에서 상징인 십자가를 훔치는 일조차도 서슴치 않는 미쉘의 모습은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금단의 열매 서슴없이 따먹고야 마는 이브와 아담의 원죄의 모습 겹쳐지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양심, 도덕율, 사회규범, 계율, 등의  이름으로 금지된 것들 대한 유혹과 끊임없이 싸우며 고뇌하고, 갈등하고, 타협하고, 후회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지닌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금지된 장난 주제곡 '사랑의 로망스'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aLfvSAQ1n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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